<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도시의 특징
“그렇습니다. 당신의 마음은 새로운 움직임을 원하고 또 필요로 해요. 하지만 당신의 의식은 아직 그 사실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란 그렇게 간단히 붙잡을 수 없는 것이라서. 봄날의 들판을 뛰노는 어린 토끼처럼. 의식의 느릿한 손으로 붙잡긴 힘들어요.”
“어두운 마음은 어딘가 먼 곳으로 보내져 결국 생명을 다하게 돼요.”
“슬픔, 망설임, 질투, 두려움, 고뇌, 절망, 의심, 미움, 곤혹, 오뇌, 회의, 자기연민……. 그리고 꿈, 사랑. 이 도시에서 그런 감정은 무용한 것. 오히려 해로운 것이죠. 이른바 역병의 씨앗 같은 겁니다.”
“제가 죽었을 때입니다. 그때 저는 그림자를 잃고 말았어요. 아마도 영원히.”
그건 시간을 알려주기 위한 시계가 아니다. 시간에 의미가 없음을 알려주기 위한 시계다. 시간은 멈춰 있진 않지만 의미를 상실했다. 그곳에서 시간은 의미가 없다. 계절이 순환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간 역시 순환한다.
“네, 시간이 없는 곳에는 축적도 없습니다. 축적처럼 보이는 현상은 현재가 던져주는 잠깐의 환영일 뿐이에요. 책장을 한 장씩 넘기는 광경을 상상해보세요. 책장이 넘어가는데 쪽 번호는 변하지 않는 겁니다. 뒷장과 앞장이 논리적으로 이어지지 않습니다. 주위 풍경이 바뀌어도 우리는 항상 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