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까지 일하고 병원을 그만 둘 예정이다.
어느 날 갑자기 내린 결정처럼 보이지만, 나는 사실 내가 언젠가 이 일을 그만두고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건 코로나 병동 간호 현장의 열악함을 나의 SNS에 올렸을 때, 병원에서 시간 외 수당을 주지 않아서 노조를 찾아갔을 때, 현장교육간호사 면접을 떨어졌을 때, 그리고 얼마 전 한겨레 신문에 칼럼을 썼을 때 느꼈다. 나처럼 조직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사람은 이곳을 언젠가 떠나야 한다는 것을. 나 조차도 이곳에서 나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았다. 환자를 실적으로 생각하는 이 시스템이 이해가 되질 않는다. 이곳에서 더 일할 수록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더 이해 못 할 일이 많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래도 내가 한 일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10년 전의 나’에게 늘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부당한 일을 겪어도 아무 말도 못 하고, 자신이 뭔가 부족한 사람인 줄 알고 도망치게 만들었던 나 자신에게 늘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번에 다시 병원으로 돌아와서 3년 반동안 일하면서 벌였던 여러 가지 일들은 겉으로는 보기에는 아무런 소득이 없었을지언정, 내가 가지고 있던 부채감과 죄책감을 조금은 벗어나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스스로에게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떠나게 되었지만, 내가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은 나의 동료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좋아했었기 때문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나는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꿈이다. 올해 소설 쓰기를 배우면서, 내 꿈을 이룰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글쓰기는 내 오래된 꿈이었다. 중학교 때 담임 선생님은 ‘이 친구는 나중에 작가가 될 거예요.’ 라며 다른 선생님들에게 나를 자랑스럽게 말씀하셨었다. 나도 나중에 안정적인 직장을 가지면 글을 쓰겠다고 생각하면서 살았었다. 3교대 간호사와 글쓰기를 함께하기에는 시간과 체력적으로 항상 무리가 있었다. 안정적인 수입은 든든했지만 여기에 의존하다 보면 오히려 글을 쓸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불안정한 세상으로 스스로 걸어서 들어간다. 불안정한 세상 속에서 인생과 세상을 더욱 깊이 탐구하고 글을 쓰며 살아갈 것이다. 나이가 더 들면 포기할 것들이 더 많아져서 이쯤에서 도전해 보기로 했다.
어떤 작가가 그랬다. 고장 난 시계도 하루에 2번은 맞는데, 세상의 흐름과 나의 글도 맞아떨어지는 시기가 있을 거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 글도 언젠가는 빛을 보겠지,라는 마음으로 새로운 세계에 무작정 뛰어 들어간다. 나는 3교대 간호사로 일하면서도 성실하게 책을 읽고 글을 썼다. 어느 직장에 다녀도 성실하게 일했고, 대학원에 다닐 때도 성실하게 공부했었다. 나는 내 몸에 배어있는 성실함을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병원을 그만둬도 뭐라도 되겠지. 아마 굶어 죽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