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너만 아는 한 가지 마음속 단어_14

부럽다

by 맑은날의 무지개

그래도 어른이라고 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최대한 미루고 한치 여유도 없는 시간에 한 번에 일어나야 하는

알람을 맞췄지만

다음 날이면 소풍날 아침처럼

알람 시간이 되기도 전에 눈이 떠진다.

왠지 아까운 기분이 들지만

그 아까운 기분으로 뭉그적거리다 보면

전철역까지 가는 길은 늘 숨이 차도록 속도를 내고 있다.


정확히 한 달 만에 전철을 타고 서울을 간다.

그래봐야 늘 가던 곳이고

고개를 살짝 숙이고 들릴까 말까 하는 목소리로 낮지만 힘 있게

"늘 마시던 걸로."

라고 할 곳도 없지만

늘 내리던 곳에서 내리고

늘 나가던 개찰구를 선택하고

늘 타던 곳에서 버스를 타면

늘 만나던 선생님을 만난다.


가끔씩 입원을 하는 경우가 생겨서

밤이 이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층마다 몇십 명의 사람이 누워있지만

마치

다른 세계로 들어온 것처럼

만나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라서

때로는 무서워지기까지 한다.


토요일도 약간은 그런 느낌이다.

밤의 공간이 18세 이상 관람이라면

토요일의 공간은 15세 이상 정도 느낌.


그러고 보니

10대에 살던 곳에는 동시상영을 하는 극장이 있었다.

그곳이 없어질 때까지 들어가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지만

지금의 영화표 가격으로는 꿈도 못 꿀만 한

넉넉한 인심뿐 아니라

동시상영 중 한 편은 보통 제대로 19세 영화라서

큰지 막하게 그려진 간판만 보고 얼굴이 빨개지기도 했다.

그 당시 15세 관람가는 가슴 노출 정도여서

고등학생이 돼서 당당히 관람한 영화에 옷보다 더 많은 살색이 나오면

역시나 어쩔 줄 모르고 얼굴이 빨개지기도 했다.

라고 쓰지만 아무리 30년은 지난 일이어도

그 정도로 순진하진 않았을 것 같기는 하다.


모처럼 올라간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려는 길,

그 익숙한 걸음이 새삼 야속하기도 했다.


출발하는 길에는 약간 쌀쌀하던 날씨가

걸음을 움직이면

땀이 나게 만들었다.

역사에 내려 집과 반대 출구로 나왔다.

점심을 거르고 돌아온 길에

점심으로는 부족하지만

오늘의 하루를 달게 만들어줄 것을

채워 넣고 싶어서.


오늘 동안 굳어있던 몸이

뜨끈한 햇살에 풀리고 나니

입안으로 들어오는 단내가

괜한 긴장감에서 날 녹여주고 있다.

다시 일어서

옆 가게에서 김밥 한 줄도 포장하고

집으로 걷는 길.


[부럽다],부러웠다.

지나는 길에 놀이터에서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둘 셋 만나 북적이며 식사를 하는 모습이

밀려드는 주문에 땀을 흘리는 점원이

부러웠다.

나의 하루는 단내를 입안가득 넣어야

그 달음을 알 수 있는데, 그들의 하루는

그 속을 모르고

달기만 할 것 같아서 부러웠다.


그러다 문득

땀이 날만큼

따스한 햇살에

먹을 것을 잔득 사들고 집으로 향하는 나도

부러웠다.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를 부러워했겠지.

내일의 나는 더 부러운 사람이라면 좋겠다.


한껏 몸을 풀고있는 길 양옆으로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며

봄이란 좋구나, 하는 생각이

아직 피지도 않은 꽃송이 자리를 보며

두근거려 본다.




#부럽다_남의 좋은 일이나 물건을 보고 나도 그러기를 바라는 마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너만 아는 한 가지 마음속 단어_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