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타깝다
차가 주차장에서 꼼짝없이 자리를 지키기를 8일째다.
평소라면 몇 분 거리라도 차를 타곤 했는데, 요 며칠은 가까운 곳은 걷다 보니
운전하는 법을 까먹을 것 같기도 하다.
며칠 가지고 오버한다고 생각한다면, 어제 점심에 뭐 먹었는지 정확하게
기억하는지 묻고 싶다.
거봐라~ 절대 오버 하는 거 아니다 ㅎㅎ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보기보다 어렵다.
몇 년 전에는 그걸 모르고 그리고 나를 모르고 뛰쳐나왔다가 겉돌고 있고
지금은 지킬 자리를 찾아서 겉돌고 있다 보니
꽃이 피는지 비가 오는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다.
오늘은 저녁 무렵부터 비가 내리고 있다.
산책길은 보통 멍이들이랑 다녀서 대부분 위보다는 땅을 보고 다니게 되는데
그래서인지
나무에 꽃이 피었는지 생각은 안 나지만
땅에서 새싹이 자라나는 것은 기억이 난다.
더불어 비닐봉지와 호미를 들고 다니시는 아주머니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면
봄이 오긴 오고 있긴 한 것 같은데,
오늘 밤 내리는 비에
내일이면 봄은 더욱 쑥쑥 자라나 있을 것을 생각하니
뜬금없이 썰렁해진 날씨도 성장통 앓고 있는 무릎처럼 꼭 필요한 것이겠구나 싶다.
봄이 오는 것은 좋지만
봄이 오는 만큼 시간이 지난 것은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단단하게 얼어있던 나무에
꼼짝없이 추위에 떨던 나무에
비집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새순과 꽃들이
나는 그대로 얼어있는데, 피어나는 꽃들이
나를 더욱 외면하게 만들곤 한다.
꽃이 피어나고
새싹이 올라오고
검은 땅에서 초록 잎이 퍼져가는 것을
온전히 기뻐하지 못하는 것이
나는 스스로가 [안타깝다.]
나무는 스스로에게 확신이 있었을까?
단단히 얼어버린 가지에서
새싹이 나올 거라는 것을
결국엔 꽃이 필 것이라는 것을
나무는 스스로에게 확신이 있었을까?
확신이 의심에 눌려
보이지 않는 지금, 봄을 기다리면
꽃이 필 것인지 궁금해진다.
봄은 다시 오고 있지만
겨울이 끝난 것 같지 않다.
#안타깝다_뜻대로 되지 아니하거나 보기에 딱하여 가슴 아프고 답답한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