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념치 않다
형편없는 소비습관이 있었다.
기준도 욕망도 없이 소비만 남아서 보이지 않는 돈으로
보이는 것을 사서 보이는 욕심에 또다시 소비만 남았다.
그중 하나는
온라인 서점과 음반점에서 챙겨주는 굿즈였다.
5만원이상을 사야 얻을 수 있는 것들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다양했고 이쁘기도 했다.
그렇게 매달
혹은 2주마다
보이지 않는 돈으로 보이는 것을 구했다.
그 당시 받았던 굿즈는 무엇인지 모르겠다.
잘 버리지 못하는 나에게도
"이거 다 싶은 것이 안 나타는 것 보니.."
대신 책이 남았다.
이십대 초반, 시니컬한 것인지 그저 우울한 것인지는 모르지만
대략 그런 느낌의 나는 다양한 책보다는
특정 작가의 책을 좋아했던 것 같다.
그중 한 명이 [요시모토 바나나]
본가에서 가져온 책이 5권이다. 산 기억은 있지만 읽은 기억은 없는
책에 두어권은 군대 있을 때 가져갔는지
통과 인증 도장이 찍혀있다.
희한한 것은 후임을 주었는지, 내 이름 선이 그어지고
후임 이름이 쓰여있는데 왜 책이 여기 있는지 모르겠다.
틈틈이 먼저 읽으려 하고 오늘 한 권이 끝났다.
다 읽으면 도서관 로비 책 교환대에 5권 다 놓고 올 거다.
굿즈를 받겠다고 사는 것이 즐거워서
매달 부지런히 책을 사기만 했던 청년은
아저씨가 되어서 가지고 있기보다 가지고 없기에
용을 써보려 한다.
잘 안되는 것은 사실이다.
아마도 용을 써봐서 그런 거 같다.
요즘 세상에 용이 어디 있겠는가..
산책길에 뱀은 가끔 만나는데
뱀을 써봐서 남은 책을 다 정리해야 하나 실은 마음에
미리 허전해 한다.
다시 읽기 시작한 그녀의 책은 낯설지만 재미있었다.
그리고
신기하게 읽었던 기억이 하나도 안 났다.
마치 많은 것을 잃어버린 20대 기억처럼.
언제나 그리웠지만
돌아갈 생각이 없는 20대처럼
책장에 꼽혀있는 책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고 나면
지금 내게 필요한 책이 무엇인지
더욱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내게 필요한 사람을 알았듯
지난날보다 지금의 나를 바라보자.
한 편의 추억을 잘라내는 것 같지만
살아가기엔 아직도 가진 것이 많고
살아가기엔 지금 가진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니 이제는 안녕, 바나나.
#괘념치 않다_마음에 두고 걱정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