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부르는 과일
요즘에는 나의 의도에 상관없이 추억을 소환당하곤 한다. 페이스북에서는 ‘과거의 오늘’의 추억 알람이나 아이폰 사진첩의 ‘for you’를 통해서이다. 그 속의 사진이나 영상은 잠시 잊고 있었던 추억을 소환한다. 사진 속에는 그 시절 나의 모습도, 화려한 식사, 잊지 못할 연애의 한 장면, 누군가 떠오르는 공간 등이 다양하게 있다. 그리고 인생에서 중요했던 나의 경험들이 함께 담겨있다.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는 추억의 사진은 소중한 인연도 함께 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진은 시간에 희석되어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음에도 아련함을 불러일으키곤 한다.
사진 외에도 익숙한 향기, 그 시절 듣던 음악, 특별한 과일도 묻어두었던 추억을 소환하기도 한다. 특히 내게는 할머니를 소환하는 특별한 과일이 있다. 바로 홍시다. 나는 대학생 고모와 함께 할머니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과수원을 하시는 할머니 집 앞마당에는 큰 감나무가 있었다. 그곳은 할머니가 과수원 일 나가실 때면 나를 앉혀두는 곳이었다. 포도 한 알을 쥐여주는 날엔 그걸 가지고 놀았고, 홍시를 준 날에는 홍시를 먹고, 가지고 놀며 할머니가 일 끝나고 오실 때까지 울지도 않고 있었다고 한다. 어린 시절 과자보다 홍시를 맛있게 먹는 나의 모습을 기억하는 할머니는 늘 나를 위한 홍시를 따로 보관해놓으셨다. 연세가 드시고 기억이 흐릿해지셨을 때도 홍시를 보면 나를 찾으셨다.
20살 대학 입학과 함께 서울에 온 나는 한동안 서울의 맛집들을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새로운 맛의 세계에 빠졌고, 홍시의 맛은 자연스럽게 옅어졌다. 그러다 내가 스물아홉 살이 된 해 봄, 할머니는 오랜 병 투명 끝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이제, 제철의 홍시는 내게서 할머니를 소환하고 있다. 할머니의 부재에 상관없이 때가 되면 찾아오는 홍시는 내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은 추억의 과일이다.
여러분의 추억을 부르는 과일은 무엇인가요?
이미지 출처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