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보다는 육아의유익??

육아....

결혼이라는 주제 아래서 불평불만한 하는 것은 결국 하수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평불만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이 바로 결혼이기도 한 것 같다. 난 결론적으로 하수다.)


내가 바꿀 수 없는 관심의 영역에 집중할수록 나의 에너지를 뺏기기 때문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리고 그 상황에 최선을 다하자가 요새의 나의 결혼과 육아의 방향성이다.


그러나 함께 더불어 살고 있기 때문에 이 역시도 쉽지는 않다.

눈에 안 보이면 차라리 속이라도 편하겠지... 싶은 생각과 울화통은 안터 지지한다.

그래서 주말부부가 3대의 덕이 필요하다고 한건 지도 모르겠다.

역시!!! 경험의 축적으로 얻어진 선배들의 주옥같은 조언이다.


육아에서 아마도 가장 나를 힘들게 만드는 건 억울함이다.

왜 나만!!!! 이 되는 것이 결혼과 육아에서의 핵심 키인 것 같다.

그래서 육아에 배분되는 에너지가 비슷한 부부들이 좀 더 관계가 원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억울함이 없이 각자 다른 육아 영역에서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


이러나저러나 아이들에겐 나는 엄마이기에 당연히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

배우자가 아빠 역할을 안 하니 나도 안 한다면 제로게임이 되는 것이다.(이 관점도 내 기준일 거다.)

그 에너지가 자꾸 마이너스가 되다 보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의 몫이다.


으쌰 으쌰 해서 2명의 시너지가 모이면 3~4명 이상의 에너지를 발휘할 텐데 그게 항상 아쉽다.

욕심이라 생각해야지 누군가의 영역까지 내가 침범하고 더하려고 하니 내가 참 힘들어진다.

그렇게 10년을 살고 보니 번아웃이 온다. 그리고 원망이 쌓인다.


물론 아이들에게는 미안하고 아쉽고, 나 역시도 그 욕심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냥 운명이라고 생각해야지 아니면 이 불만이 끝이 없어진다.


사실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내려놓기가 어렵다.

아이들이 말랑말랑한 이 시기에만 해 줄 수 있는 것들이 있기에...

아쉬움이 있지만 내 영역이 아닌걸 내 맘대로 할 수도 없고,

그러다 보면 내가 아이들에게 쏟아야 하는 에너지까지 바닥난다.


요새는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보내는 시간이 참 재미있다.

너무 어릴 때는 사실 일방적인 케어에 집중되어 있는데

요새는 아이들과 쌍방향 대화가 가능하니 아이들의 생각을 듣는 것도 재미있고 조심스럽다.


말 많은 첫째가 미주알고주알 말도 안 되는 언어유희와 똥과 엉덩이 이야기에 심취해있다.

어디까지 받아줘야 할까 하다가도 피식 웃음이 나온다.

둘째의 고자질은 이제 점점 진화되어 가는 것 같다.


둘째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애들이 크면 같이 논다고 하던데 나는 둘이 싸우는 소리와 말릴 때가 가장 곤욕스럽다. 차라리 혼자 놀면 싸울 일도 뺐길일도 없어서 더 풍족하고 만족스럽지 않을까?

둘이 잘 노는 시간과 싸우고 소리 지르는 시간은 거의 막상막하로 비슷하니, 싸우는 것과 노는 시간이 쌤쌤이라 퉁쳐야겠다.


첫째는 이제 7살이 되었다.

요새 아이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많이 컸다와

인격적 존재로서 우뚝 서있는 아이와 마주 하고 있구나를 실감하게 된다.

(예전에 인격적 존재가 아니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걸 요샌 더욱 실감하고 몸으로 느낀다는 의미이다. )

좀 더 아이의 생각주머니가 커졌는지 나름 조리 있고 타당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모습에 대견해진다.


육아는 참 많은 것을 알게 해주는 것 같다.

육아를 했다고 해서 무조건 성숙해진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육아라는 경험을 통해서 내가 몰랐던 세계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되는 건 맞는 것 같다.

이 과정이 없었다면 사실 살면서 딱히 관심을 안 가졌을 것 같다.

이 과정을 나에게 어떻게 적용하느냐의 문제만 남았다.


아이에게 식탁에서 꼭 하는 말은 뭐든 새로운 음식이 나오면 한 번은 맛을 보고 먹어봐야 한다.

먹어보고도 또 별로이면 그땐 안 먹어도 된다고.

그래야 어떤 맛이 있는지 내가 좋아하는 맛인지 아닌지 알게 된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걸 경험으로 할 필요는 없지만 경험만큼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는 계기가 확실해지는 건 없는 것 같다.


요새 아이들의 모습이 예쁘지만 여전히 육아는 어렵다. 육아과정에서 내가 바꾸기 어려운 거 투성이다.

사실 나는 육아가 그래서 더 부담스러웠다. 나를 바꾸는 과정이 동반되어야만 하는 것이 나를 더욱 힘겹게 했다. 근데 그 덕분에 나는 조금 규칙적인 생활을 하게 되고, 아침 기상을 통해서 나의 시간을 활용하는 법을 고민하게 되고 아이에게 올바른 삶을 살라고 말하기 위해서 아이 앞에서 행동을 조심하고, 내키는 대로 먹었던 불량식품도 일절 먹지 않는 그런 어른으로 바뀌었다.

적어도 아이를 교육하기 위해서라는 생각이었는데, 그 교육이 나에게 적용되었음을 느낀다.


결혼.....

결혼이 이 세상에 내편을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과정에서 내 편이라 믿었던 단 한 사람이 사실은 나를 가장 힘들게 할 수도 있다. 그 사람과의 작은 마찰은 나의 가슴을 가장 아프게 하고 깊은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다.

물론 그 과정을 극복하면서 가장 귀한 한 사람을 얻을 수도 있고, 이런 과정 없이도 더없이 행복한 내 편을 얻을 수도 있다. 둘의 관계가 성인이고, 이미 20년 혹은 30년 이상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라왔고, 결혼 후 바뀌는 여러 가지 외부적 요인에 의해서 달라질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기에 변동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육아에서는 좀 다른 것 같다. 사춘기라는 거대한 산맥은 남아있지만, 언제나 확실한 내편이다.

내가 아이에게 들인 사랑의 시간, 열심을 다했던 시간들에 대해서는 아이는 온몸으로 느끼고 받아들인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들이는 열심은 아이의 교육이나 공부를 위한 열성이 아니다)

내가 가난하다고, 내가 늙었다고, 혹은 내가 초라해졌다고 나에 대한 마음이 변하진 않는 것 같다. 아니 바뀔 수도 있다. 나이 들어서 나를 괄시할지도 가난해서 싫어질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순간의 아이들의 마음만은 적어도 내 것이고, 그 마음만큼은 순수하고 진실이라 생각한다.


한때는 육아가 너무 힘들어서, 결혼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육아만 안 해도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근데 육아, 그 시간들이 지나면서 느끼는 건 그 과정 가운데 정말 아이와 나만의 비밀과 기억이 쌓이고, 그 값진 경험은 누구도 공유할 수 없이 소중한 오로지 나와 아이의 것이라는 것이다.


결혼에 대해서 큰 고민을 안 한 덕분(?)에 1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치열하게 결혼을 고민하는 나다. 육아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이 고민을 1도 안 한 덕분(?)에 치열하다 못해 바닥을 기어 다니게 되었다. 육아에 이런 어려운 과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못하고 육아를 맞이하는 일은 둘 다에게 버겁고 재앙처럼 어려울 수 있다. 더불어 둘의 관계까지도 힘들게 만들 수 있다.


그러기에 바로 나, 내가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게 가장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