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가 직업인이 되려 할 때....
아침 내내 발을 동동 구르며 혼자만 조급하다. 나와의 약속인 운동도 해야 하고 아이의 일정을 챙겨야 하고 새롭게 시작한 일들이 과정이긴 하지만 하나씩 성과를 만들어가게 되어서 기쁘기도 하면서 벅차기도 하는 요즘이다.
오늘 저녁엔 라이브 방송이 있는 날이라 마음이 급하다. 방송 준비는 끝이 없이 연습이 필요하다. 라이브로 하는 방송을 하다 보니 준비를 철저히 한다고 해도 매번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사건사고가 수시로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방송이 있는 날은 사실 하루 종일 신경이 쓰인다. 더구나 제품의 내용 숙지는 기본이고, 방송으로 보이는 부분이 있기에 일명 헤어 메이크업도 꼼꼼히 신경 써야 한다. 아직은 팀으로 일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플로어를 한 번에 혼자 하다보니 더욱 신경이 쓰인다. 방송을 하는 날 만큼은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러나 주부로서, 엄마로서 해야 하는 일들을 당장 누가 덜어줄 수 있지 않다. 차라리 아예 처음부터 직장에 다니고 있었다면 일의 분배가 어느 정도는 나뉘어 있을 텐데(아마 그 전까지는 더 전쟁이겠죠...)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누구의 도움도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신랑은 신랑대로 원래 내 일은 아닌데? 하는 상황이고, 부인의 일이 늘어났지만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줘야 하는지 모르는 건지 1도 관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모른 척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자신이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영역이라 선을 그어놓고 생각하는 것 같다. 육아가 공동의 업무라고 생각은 하지만 몸은 안 움직이고, 전업이라는 생각에 같이 한다 보다 도와주고 있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 같다.
결혼 10년차, 워커홀릭인 남편과 살면서 육아의 많은 부분들을 내려놓았다. 그중 하나가 주중에 남편의 얼굴을 보는 것이다. 이를 포기하지 않으니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고, 그나마 절충안을 마련한 것이 주중은 포기하고, 대신 주말을 얻기로 했다. 사람을 만나야 하는 일의 특성이 있으니 그 부분을 인정하고 내가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내조이며 그것이 신랑을 도와주는 최선이었다. 물리적으로 안 되는 일을 가지고 매번 싸우며 투쟁을 하는 것이 내가 육아를 하는 데 하등의 도움이 되지 않기에 한계를 인정하고 그 안에서 내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고 나름 노력했던 방법이다.
그리고 지금 다시 무언가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기존의 일들을 감당하면서 새로운 걸 더해 나가는 것에 벅참을 느끼기도 한다. 일에 대해선 기대감이라면, 육아에 대해선 벅참이 더 큰 거 같다. 육아는 시간이 지나도 쉬워지지는 않는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친정도 시댁도 없는 상황에 당장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다.
남들은 들어오는 저녁시간에 신랑은 사람을 만나는 약속이 끊임없이 있고 주중에 지금까지 터치받아 본 적 없는 허즈번드는 나의 일을 인정해주는 연습이 덜 되어 있어서 자신의 스케줄을 중심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나 역시도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의뢰를 받아서 하는 입장에서 내가 원하는 시간만 골라서 일을 할 수는 없다.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시간이나 매출이 잘 나올 시간대도 중요하기 때문에 이런 것들이 고려되어 야만 했다.
물론 일정이 촉박하게 잡혀 일찍 신랑에게 양해를 구하지 못한 것도 있지만 아이를 맡기는 문제에서 항상 서러움이 폭발했다. 간간히 엄마가 도와주시러 오지만 매번 지방에 계신 엄마에게 부탁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왕이면 부부가 일정 조절을 해서 할 수 있는 게 장기적으로도 필요한 부분인데 오늘도 신랑은 선약이 있고 나는 우리 아이들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나마 나의 속사정을 훤히 알고 있는 친구에게는 그래도 부탁을 하는데 사실 자주 못 보고 사정을 모르는 친구에게 부탁하는 것이 나로서 쉬운 일은 아니다.
사정을 아는 그 친구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오는 여정도 쉽지는 않다. 가는데 1시간 오는데 1시간 아이들 챙기다 보면 못해도 약속한 시간보다 적어도 6시간 정도는 미리 준비해야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상황이다. 거기에 다시 데려오는 일까지 생각하면 하루 8시간 정도는 아이를 맡기는 데 사용해야 한다.(이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존재만으로도 감사하다)
오늘은 그 마저도 힘든 상황이라 애가 탔다. 다행히 오늘 같이 놀기로 한 첫째의 친구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 놓긴 했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놀기로 한 입장에선 아이를 맡겨버린 상황이 되었고, 나 역시도 자주 보지 못하는데 아이를 맡기는데 미안함이 있다. 그래도 방법이 없어서 철면피를 깔고 부탁을 했다. 심지어 아이들을 데려다주는 것도 내가 못가고 신랑을 보낸다고 했다. 머리도 메이크업도 안 한 상황이라 더 이상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전화를 걸었더니 언니가 황당해하면서 아니… 집에 남편이 있는 데 나한테 맡기는 거냐며 황당해했다. 갑자기 나는 기본도 없는 황당한 여자가 되어버렸다.
신랑이 있는 상황에 애를 맡기는 그런 개념 없는 사람은 아닌데, 오죽 급하면 언니에게 맡기겠다는 심정이었는데 언니가 오해를 했다. 당연히 신랑도 내가 방송하는 시간엔 일이 있기에 부탁한 것이었다. 다만 신랑이 좀 더 일찍 나가야 해서 미리 데려다주고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언니의 이야기를 마주하니 기분도 상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내가 이런 개념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는 게 서운하기도 했다.( 상황을 모르는 언니 입장은 십분 이해가 된다. 언니한테 서운한 건 아니고 이런 부탁을 할 수밖에 없는 내 상황이 서글펐다.)
아이를 맡기는 일…. 매번 부탁하는 게 엄마인 나인 것도 싫었다.
부부의 일에 대해서 사실 하나하나 다 말하기도 어렵고 남편의 직업적 특성을 애 맡기면서 설명하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신랑은 자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이렇게 일하려는 부인을 위해서 공동의 업무인 육아를 담당하지 않는 것 같은 마음에 남편에게 부화가 치밀기도 하고 억울함이 폭발했다. 아이를 맡겨야만 일을 할 수 있는 상황도 힘들었지만, 집안에서 도와줄 사람이 없다는 것도 억울했고 개념도 없는 여자 취급을 받은 것도 서글펐다. 나를 믿고 맡겨준 일이기에 일은 제대로 해야한다. 시간은 촉박하고 마음은 조급했다.
남편은 내가 이렇게 아이한 번 맡기는 일에
얼마나 고민스럽고 고충을 겪는지 알기는 알까?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게 익숙하지 않은 나에게 매번 아이만큼은 항상 부탁의 대상이 되었다. 물론 남편이 맡아주는 게 정답이지만 둘 다 상황이 안되니 발을 동동 구르게 된다. 나는 아이를 맡기지 못하면 일을 못하게 되는데 적어도 신랑은 그 결론에 있어서 만큼은 타인처럼 굴었다. 아이를 맡기지 못해도 그건 나는 일을 하러 간다가 그 베이스다. 아마 그동안 전업주부였던 내가 했던 배려가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자신의 권리라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조금씩 나의 업무와 일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조율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도 그도 알게 될 것이다. 처음엔 나도 그도 적응이 필요하니까….
누군가는 쉽게 말할 수도 있다. 꼭 그 일을 해야 해?
하고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다. 대단하고 거창하지 않으니 그리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무언가를 새롭게 시작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대단한 용기와 노력으로 시작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꾸준히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두려움과 고민을 거듭하는 시간을 가지는지, 때로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다 훼방꾼처럼 느껴져서 엄마로서 마음의 가책을 느끼는지… 스스로도 이런 질문들을 끊임없이 하는데 내 인생을 책임져 줄 사람도 아닌 사람이 하는 포기를 강요하고 정죄하는 말을 듣고 시도도 못한 겁쟁이가 되고 싶지는 않다.
내 사랑하는 아이가 짐이 된 것 같은 기분에 엄마로서 울컥하기도 하고 홀로 서는 직업인이 되고자 하는 나 사이에 생각이 많아지는 날이다.
엄마만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