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일


아침에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싶은 날이다. 이 날 만큼은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대로 그렇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지만 엄마라는 감투를 쓰면서는 생일이라는 일 년에 한 번뿐인 나 만을 위한 기념일도 나만의 기념일이기 어렵다.


엄마라는 이름은 생일날도 맘대로 못하는구나 하는 푸념과 함께 천근만근인 몸을 이불속에서 끄집어냈다. 아직 공부습관이 자리 잡히지 않은 아이를 위해서 아침마다 해야 할 일을 체크하고 옆에서 보는 일이 요새 아침의 나의 중요한 업무다.


덕분에 밥은 참~~ 간단한 아침식사로 대신한다. 아이 습관이 좀 자리를 잡으면 낫겠지 하지만 여전히 아이랑 함께 보내는 아침 한 시간은 마음이 오르락 내리락이다. 집중해서 끝냈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과는 따로 노는 아들랑구…


오래간만에 아침상을 신랑이 차려준다. 그래도 명색이 생일인데 내 생일상을 내가 차릴 순 없지 않겠는가? 사실 어제저녁까지만 해도 올해 아침상은 얻어먹기 글렀구나 싶었다. 12시가 다 되도록 코빼기도 보기 어려운 큰 아드님(허즈번드)이라 기대를 접어야 하나 했는데 그 시간 띡띡띡 스마트 도어 문 여는 소리와 함께 부스럭 거리는 봉지에 주섬주섬 장 본걸 들고 온 신랑이다.


기특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다. 뭐 얼굴은 당연히 해야지라는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술 먹고 오면서도 한우 국거리 고기와 마른미역, 그리고 자신만의 스페셜 메뉴라는 문어숙회를 사들고 왔다. 술은 취했어도 마누라 잔소리는 두려웠던 걸까? 아니다…. 술은 취했지만 마누라 사랑이라고 우겨보련다.


새벽까지 미역국 초벌을 끓여놓고, 아침엔 문어숙회 준비가 한창이다. 거창한 요리를 하는 건 아니었지만 누군가 나를 위한 생일상을 차려준다는 것은 쑥스러우면서도 기분 좋은 일이었다. 내 생일 상을 차리는데 계속 옆에서 지켜보기 민망해서 서재방과 안방을 오가면서 진행상황만 살펴보았다.


서재방에 들어서는 순간, 미역국 냄새가 내 기억을 소환한다.

나는 언제부턴가 머릿속 기억에 의한 추억보다는 냄새, 혹은 색깔이나 그림이나 환경 같은 순간의 찰나가 나의 기억들을 소환하여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기억들이 수많아지니 나름대로의 감성을 떠올리는 방법이 된 것 같다.


새벽 내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초보 엄마인 나는 배고픈 아이에게 수유를 하느라 쩔쩔매며 잠은 잠대로 못 자고 아이는 아이대로 지친 날이었다. 길고 긴 밤을 아이와 씨름하며 보내고 아침이 되어서야 아이가 초보 엄마를 포기한 듯 지쳐 잠이 들었다. 잠을 설친 나는 피곤하면서도 아이가 잠들었다는 안도감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침부터 주방에서는 다글다글 국 끊는 소리가 들린다. 막내딸 몸조리를 해주신다고 친정엄마가 지방에서 올라왔다. 침대에서 들리는 주방의 소리가 학창 시절의 아이로 돌아간 느낌이다. 눈은 떴지만 이불을 떠나지 못한 나는 그 보글보글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누워있던 기억이 떠올랐다.


미역의 시원한 바다내음 그리고 고소하다 못해 침 넘어가는 소고기 냄새는 밥을 먹지 않아도 풍성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아침의 기억이다.

그간 미역국이 단순히 생일날 먹는 음식이 구 나하며, 큰 의미 없이 지나갔는데 다글다글 끓는 미역국 소리에 아이들을 낳고 초보 엄마로 애쓰던 시절의 모습들이 영화처럼 그려졌다.


내 생일인데 왜 아이들이 떠오르는 거야??? 하는 의문과 함께 내 삶의 여러 가지 의미들 가운데 나의 부캐인 엄마라는 이름이 꽤나 묵직하게 내 삶에 자리를 잡아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애가 강한 나에게 여전히 엄마라는 직업은 어렵지만 그래도 내 생일과 아이들의 탄생이 오버랩될 정도로 중요한 순간이 된 것 같다.


남이 끓여주는 미역국을 먹는 날은 내 생일과 더불어, 아이들을 낳고 몸조리를 하던 그때의 포근했던 시간을 기억해 낼 것 같다.


어릴 땐 내가 태어났고, 너희가 태어났을 때는 엄마라는 이름으로 내가 다시 태어난 날인가 보다.

우리 엄마도 그럴까??

20201126_083436.jpg


이전 10화아이를 맡긴다는 것, 엄마만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