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부럽지 않은 너의 3등

2025.2.6~7일


아이의 보드대회가 있는 날이다.

2박 3일에 걸쳐서 종별 선수권대회가 있는 날이다.

저번달에 열린 대회에서도 정말 눈바람이 장난 아니게 추운 날이었는데 이번 대회엔 한파가 예상되고 바람이 휘몰아치는 날이다.

아이들이 눈바닥에서 훈련하는 것도 안쓰러운데 한파까지 몰아친다니...

안쓰럽고 걱정된 마음이 들었다.


작년에는 숙박은 하지 못하고 태워다 주고 태워오고 해서 2박 3일 풀경기를 못 봤었는데

이번엔 둘째까지 총출동해서 아이를 응원해 주기로 했다.


이제 2년 차로 사실 운동선수 치고는 늦게 시작하기도 했고, 작년엔 배우자마자 대회에 나가는 거라 걱정도 많았고 기대는 1도 없었다.



아침부터 대회전 몸풀기 중이다.

새벽부터 식사하고 이동해서 몸풀기와 함께 슬로프 워밍업을 한 모양이다.

첫날 아들의 빕넘버는 35번.



전날 데크에 왁싱 준비를 마친 상태이다.

특히나 아직은 아이들이 어리니 코치님이나 감독님이 챙겨주실 게 많다.


아이들에게 코치나 지도자, 혹은 선생님은 생각보다 절대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집에서보다 훨씬 많은 시간 운동을 하거나 공부하는 학교에 있다 보면 가장 의지하고 의존하는

사람이 되니까... 그래서 늘 좋은 선생님과 좋은 분들과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하게 된다.



아이들은 대회가 힘겨우면서도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게 느끼기도 한다.

아들이 대회 가기 전에 엄마차 말고 다른 친구차를 타고 가고 싶다고 하기도 했다.

다른 친구차 타고 가면 더 여행 가면서 노는 기분이 든다고 이야기했다.

친구들끼리 숙박을 하고 쉬는 시간에 짬 내서 게임도 하고 수다도 떨고 하는 시간이 아이에게는 또 다른 재미였던 것 같다.


어릴 때 꼭 운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려움도 많지만 내가 어릴 때 운동을 해보니 그때 운동하던 시절 덕분에 지구력도 승부욕도, 근력도 다양한 각도에서 아이가 경험하는 것이

정말 많다는 걸 느껴서일 것 같다.


이런 경험은 나 혼자 하는 것과는 다르게 공동의 활동을 통해서 나를 알게 되기도 하고 공동생활에서 소속감을 느끼는 것도 아이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목표를 향해서 노력하는 경험이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제 2년 차라 오랫동안 운동한 아이들에 비해서는 운동량이나 기술력이 현저히 떨어지기도 하고

스노보드 특성상 겨울 시즌에만 현장에서 뛸 수 있기 때문에 단기간에 기량을 끌어올리기에 아쉬운 부분들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과정에서 아이가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노력을 해볼 수 있는 것도 기회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걱정도 했다. 아이가 운동한 시간은 생각하지 않고 메달을 따지 못하거나 했을 때 주눅 들고 자신감이 없어질까 봐 걱정되기도 했다. 원래도 자신감이 넘치는 스타일은 아니라 더 역효과가 날까... 그래서 더더욱 메달이나 등수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아이스스로가 느끼게 될 것 같아서 신경이 쓰였다.



첫날의 날씨였다. 눈싸대기를 백만번은 맞을만한 바람이 불어댔다. 꽂아놓은 깃발들이 귀를 시끄럽게 할 정도였다. 그나마 첫날은 눈은 오지 않았는데 정말 한파와 함께 바람이 눈알까지 눈바람이 불었다.


경기는 레드, 블루 코스를 두 번 뛰고 합산해서 기록을 낸다.

슬로프의 위치와 조건 환경이 달라서 합산해서 진행하는 것 같다.


태백이라는 지역 특성상 춥기도 하는 데다가

슬로프가 산속에 위치하고 워낙 높아서 바람은 칼바람이 불어댄다.

정말 아이들 경기하는 잠깐 동안 나가있으면 맨살을 드러내는 곳은 에이는 듯한 아픔을 느끼기도 한다.


고글과 바나클라바 사이에 아주 조금 드러나는 아이들 얼굴이 빨개지다 못해 덴 것처럼 뻘게진 상태가 된다. 여리고 여린 살이 금세라도 터질 것 같다.



첫날의 대회전 경기에서는 다행히 넘어지지 않고 잘 탔다.

작년보다는 훨씬 안정적이게 게이트를 내려간다.

안 넘어지기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으로 지켜봤다.


경기를 마치고 잘했다는 말과 함께 포옹을 해줬다.

결과는 아쉽게도 순위권은 아니었다.

사실, 나는 괜찮았다. 아니 사실 아이가 충분히 잘했고 성장해서 더할 나위 없었다. 그러나 아이가 3등은 하고 싶었는데라는 혼잣말을 했다.


헤헤 사실 이 말도 너무 감사했다. 아이가 그전엔 이런저런 말이 없어서 진짜 승부욕도 욕심도 없는 건가? 하는 생각에 고민을 하기도 했다.

근데 아이 스스로도 늘 조금 더 잘할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오전경기만 있는 날이라 오후는 아들 입장에서는 신나에 아이들이랑 콘도에 놀러 온 느낌이 들었을 것 같다.

오래간만에 엄마 잔소리도 할 일도 없는 날이라 느낄 것 같아 아이의 숙소에 찾아가지도 않았다.






어느새 둘째 날이다.

어젯밤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결국 폭설이 왔다.

오투 리조트는 꼭대기에 있어서 내려가는 길이 제설 전이면 폭설로 차량이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이다.


알파인 경기의 경우 눈이 오면 아이들 데크가 눈에 박혀서 부상도 많고 넘어져서 다칠 수도 있어서 걱정이 되었다.

속도 모르고 눈은 펑펑 잘도 온다.

올해는 유난히 눈이 정말 폭설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 같다.

강원도 살면서 내 평생의 눈을 다 본 게 아닌가 싶게 많은 눈을 만나는 것 같다.


아예 시야는 보이지 않을 만큼 흐리기도 했다.

숙소에서 보는 눈은 아름다웠지만

경기장은 심란한 마음 가득이었다.



둘째 날 경기가 시작되었다.

아이들 빕넘버가 뒤쪽이라 아이들도 앞쪽으로 와서 다른 친구들의 경기를 지켜봤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런 여유가 없었는데 대견하기도 했다.


정말 아이들이 대견하다고 느낀 게 중학교 친구들은 이 강추위에 저항을 줄이기 위해서 겉옷을 벗고 탄다.



바람이 얼마나 센지 눈 안에도 눈발이 쏟아져서 제대로 눈을 뜨고 있지 못할 정도로

바람이 불어오고 눈보라가 친다. 매번 헬멧과 고글을 쓰고 와야지 하는 생각을 하는데

꼭 잊고 와서 후회한다. 이렇게 잠깐 본 경기에도 눈이 충혈되어 시리기까지 하다.



그냥 서있기만 해도 설인이 되는

이러한 상황에서...


그런데 겉옷 탈의라니...

정말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지는 추위다.



친구들 세 명이 쪼르륵 앞쪽 넘버 친구들의 경기를 관전 중이다.



그리고 드디어 넘버가 가까워진다.

오늘의 빕넘버는 31번


아이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할까?

내가 이름을 불러주면 좀 더 용기가 날까?

생각하다가도 또 엄마 부끄럽다고 손사래를 칠까 싶기도 하고 엄마 음성에 긴장된 마음을 조금이라도 누그러뜨릴 수 있나 생각해 보기도 한다.



출발대에 섰다.

저 노란선이 출발시간을 체크한다.

띠~띠~띠~띠!!!

정말 오랜만에 듣는 부저에 내 심장도 쿵쾅거린다.

부저가 울리는데 아이는 얼마나 떨릴까 싶은 생각이 든다.


부저 소리는 평소에 체육대회가 아니고서는 들을 일이 별로 없다. 어릴 때 선수 활동을 했던 기억 때문에 부저소리에 나만 이렇게 떨리는 건지 누구나 저 부저소리를 들으면 떨리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저 다치지 않고 내려온 거

자세가 작년보다는 훨씬 좋아진 거

그리고 불안정하지 않게 컨트롤할 수 있는 것

이 모든 것들이 훨씬 좋아졌다.



두 번의 런을 하고 경기를 마쳤다.

이 강추위에 애쓴 아이들 자체가 대견하고 아름다웠다.

아이들은 점심 먹고 장비정비하러 올라갔고

나머지 엄마들과 둘째들 점심 챙기고 하느라 우리도 숙소로 들어갔다.


추위에 떨어서 눈도 시리고 점심 먹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잠결에 밴드 알림이 울렸다.

순위를 보드부 공지에 올려주신 것 같다.

시상식 일정도 올려주셨다.


그리고 아들의 순위를 보았다.

아이가 이야기했던 3등은 하고 싶었는데...

정말 3등이었다.


4년, 5년 차 쟁쟁한 아이들을 뒤고 3등이라니!!

너무 감사할 일이었다.


사실 다른 것 보다도 아이가 자기의 노력한 시간들이 결과 없이 흩어져버렸다 생각할까 걱정했는데

성과로 아이에게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계기가 된 것 같아서 감사했다.




결과 확인을 못한 주변의 엄마들까지도 아들의 순위권 발표에 너무 기뻐해줬다.

아줌마들의 호들갑으로 아들이 너무 부끄러워했지만

그냥 그 순간만큼은 아들이 즐기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느끼면 좋겠다 생각했다.


나도 모르게 너무 크게 환호하고 소리 질렀다.

3등은 하고 싶다던 아들의 바람이 이루어졌다.


엄마가 올 수 있을 때 이렇게 순위권에서 시상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더 애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눈시울도 붉혀졌다.

엄마 사랑하는 아들의 깊은 마음을 알기에... 더 노력한 게 아닐까?

여러 가지 여건상 내가 아이들에게 시간을 내어주고 해 줄 수 있는 상황들은 점점 줄어드는데

아직까지는 내 품 안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에서 아이가 마음껏 엄마를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가 끝나고도 경기대에 선 아이들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 찬바람과 눈보라 속에서 경기를 한 아이들 모두가 너무 대견한 시간이었다.

메달이나 순위를 떠나서 경기장에 함께 한 아이들이 정말 존경스럽다고 느끼는 순간이었다.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더 노력했을 아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