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함이 나를 녹아내리게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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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함을 온몸으로 겪고 있는 요즘이다. 지금까지는 허무함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큰 힘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몰랐다. 허무함이라는 것이 내 마음에 스며들어오기 시작하니 어느 순간 내가 점점 사라지고 나의 존재의 일부가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고, 투명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점점 나의 존재가 투명색으로... 허무가 그렇게 나를 녹아내리게 하는 요즘이다. 김선미 소설의 비스킷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투명으로 보이는 사람들... 그렇게 나의 존재가 자꾸만 사라지는 기분.


물론 그 허무함이라는 것이 단순히 내 문제를 넘어서서 열심히 달려오다 보니어느 순간 번아웃이 오는 것처럼 그렇게...


요즘은 나의 존재가 사라질까 이렇게 억지로 부여잡고 내 존재감에게 토닥토닥 말을 건네는 요즘이다.


열심히 살기 대회가 있었다면 나 역시도 누구 못지않게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것에 뒤지지 않았던 시간이었다.


새벽기상, 독서와 운동이 일상이었고 부동산 공부를 하면서는 각 지역의 임장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임신한 와중에도 밤새워 물건을 찾고 경매장을 돌아다녔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50일 된 아이를 안고 한참 잘 나가는 오피스텔 떴다방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공무원 외벌이로, 정말 없는 살림으로 시작한 결혼생활이지만 애들도 잘 키우고 싶은 욕심에 각종 교재들을 복사해서 하나씩 책으로 만들어주는 가내수공업을 하기도 했고 사교육으로 못하는 부분은 내가 직접 하자며 몸으로 놀아주며 나를 갈아 넣으며 소진해 가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미래를 위해 젊은 날의 고생과 노력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물론 여전히 이 생각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도 때가 있고 부동산이며 부를 축적하는 것도 때가 있어서 좀 더 일찍 복리로 뭐든 굴릴 수 있다면 시간이결국은 돈이 되고 미래를 위한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생각했다.

갭투자금으로 명품가방 VS 아파트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당연히 아파트를 선택해야 한다고 믿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이 허무함을 마주하면서는 그때의 나의 선택들이 옳았던가? 하고 의문을 던져본다. 물론 내가 생각하고 계획했던 대로였다면 여전히 무조건이라고 생각하면서 여지를 내줄 필요도 없는 질문이다. 그런데 내가 생각했던 방식과 결과가 달라져서 그런지 나에게 스스로 의문을 던진다.


이 질문을 받고 보니 둘 중 하나였기에 아파트를 선택하기는 했지만 지나 보니 그렇다고 명품 가방이 안 갖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남들은 연애할 때 화이트 데이나 생일에 한 번쯤 받아보길 기대했던 티파니의 작고 빛나는 주얼리들... 안 예쁜 게 아니라 그냥 더 나은 미래를 위한 현재의 포기였다. 다만 관심을 줄였을 뿐이고 더 나은 선택을 했다고 나를 위안했던 것이다. 그런데 허무함이 몰려오고 보니 그 시간 동안에 내가 원하는 것들은 제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명품이 갖는 의미가 좀 다르게 다가오기도 했다. 장인이 만들 과 유명한 디자이너가 만든 명품 자체도 좋지만 때로는 삶의 만족감을 위해서 명품만이 주는 역할도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것이 명품이나 이런 극단적인 것들로 비유하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명품이 아니라 소소하게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먹고 싶었던 것, 나를 위한 순간순간의 선물들, 이런 것들조차 나에게는 늘 철저하게 차단했다. 나의 희생으로, 나를 갈아 넣어야만 될 것 같아서 나를 조이고 조였던 시간들로만 기억된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들 꼭 비싼 게 아니라도 그때그때 나를 좀 더 돌아봐줄걸. 내가 만족할만한 것들 내가 노력하고 고생한 것들에 대해서 스스로 칭찬도 해주고 보상도 해줄걸 그랬으면 이렇게 결과가 내가 생각한 방향이 아니라도 이렇게 허탈함과 허무함으로 내가 사라질 것처럼 녹아내릴 것처럼 흘러서 사라질 것 같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에게는 새 옷 한번 제대로 사준 적이 없는 것 같다. 늘 물려 입었고 헌 옷을 입었다. 큰애는 첫째임에도 불구하고 벼룩시장이며 당근에서 나오는 옷들로 지금까지 지내오는 것 같다. 한해도 지나기 전에 옷을 갈아줘야 하고 아이들 옷이야 워낙 금방 해져서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지만 나도 어릴 적 입었던 유명한 스포츠 브랜드 옷도 제대로 못 입혀 키운 것 같아서 미안함이 몰려왔다. 그냥 조금씩 여유를 낼 것을...


결혼 전에는 그래도 선물도 하고 용돈도 척척 드렸는데 결혼하고 나서는 엄마아빠에게도 제대로 용돈을 드려본 적이 없다. 물론 나보다 늘 풍족하시니 내가 드리는 용돈이 너무 작게 느껴지기도 했고, 아이들 키워야 할 생각에 늘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더구나 공무원 월급으로 한 달 한 달 살기도 버거워 카드를 잘라내면서 생활비의 규모를 줄이던 시절에 크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늘 쪼달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나마 지금 나를 지탱하고 사라지지 않게 붙잡아주는 것은 어쩌면 부모님의 존재 자체가 나를 이렇게 부여잡게 해주고 있는 것 같다.


"폭싹 속았수다"의 금명의 부모님이 파혼하고 온 금명이에게 100그램도 사라지지 않게 챙기는 장면처럼, 내가 어떤 상황이고 어떤 상태건 그저 부모님의 든든한 존재가 지금의 나를 사라지지 않게 하는 유일한 이유인 것 같다.


부모님을 위한 소소한 선물들과 용돈들도 좀 더 자주 드릴걸 꼭 크고 좋은 안마의자나 명품가방 같은 걸 사야 할 것 같은 부담감에 아예 드리지도 못했다는 생각이 드니 미안함이 몰려왔다.


허무함이 내 삶을 덮치고 보니 그냥 지금 현재에 나를 위해서 만족할만한 크고 작은 소비들을 지금 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나를 위해 사는 예쁜 잠옷, 아이들과 함께 등산을 가기 위해 필요한 기능성 등산화,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육회, 수영장 있는 호텔팩....

매일매일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미래를 위해서 현재의 행복을 담보로 살지는 말아야겠다. 발란스 있는 삶을 살아야지! 지금의 이 순간들, 내가 더 행복해지고 후회하지 않도록 나를 갈아 넣지는 말아야지.


이번 달은 엄마 아빠 생신이 있는 달이다. 늘 말로만 때우고 생일 축하노래만 보냈는데 올해는 그간 밀렸던 10여 년치 생일 선물을 보내드려야겠다. 온전히 나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것이라 더욱 의미가 있게 느껴진다. 시간이 지나서 허무하지 않게, 후회하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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