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로 돌아오자마자 내일 떠날 바즈 버스 예약과 호스텔을 예약했다.
장기 일정이라 이동 전날이나 그 전전날쯤 일정에 맞춰 예약을 한다.
극 성수기라면 예약하기 어렵겠지만 지금은 비성수기라 예약하면서 이동하는 데 큰 무리가 없다.
어제는 목욕탕을 이용하지 않아서 몰랐는데 씻으려고 보니 샤워기에서 흙탕물이 쏟아져 나왔다. 그냥 말 그대로 온전한 흙탕물이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이 흙탕물이 잦아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흙탕물로 양치를 하고 머리를 감아야 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도저히 눈으로 보고는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냥 흙물이라 양치를 하면 치아에 빨간 황토가 낄 것 같다. 숙소 리셉션에 문의했다. 대답은, 그냥 먹으면 안 되지만 끓여 먹으면 되고, 씻는 거야 당연히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오 마이 갓!!!
숙소의 자연경관은 거의 작품에 가까운 수준이었으나 숙소의 내부는 우리에게 아직 익숙지가 않았다.(엄마 표현으로는 감옥 같다고 하셨다.) 더구나 엄마 입장에서는 한마디로 사서 고생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이게 배낭여행인가?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그나마 메인 로비 건물에 사우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사우나로 가서 대충 몸을 씻었다. 룸에서 나오는 흙탕물보다는 조금 더 맑은 물이 나왔다.
둘 다 씻고 어느 정도 마음이 진정되어 저녁식사를 준비하러 갔다. 오늘은 둘 다 지쳤고 마음도 무거워서 한국에서 가져온 쏘울 푸드를 먹기로 했다. 바로 햇반과 라면이다. 확실히 음식이 주는 평안함이 있다. 먹고 나서 엄마는 우리가 사기당한 것 아니냐며 레소토 투어가 나와있는 책자를 보여주었다.
오늘 우리가 이 곳 중 어디를 방문했냐며 오늘의 고충을 토로하셨다. 더불어 비싼 500R의 비용도 너무 아까웠다. 나 역시 동감했다. 그러나 불평불만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물론 엄마는 나에 대한 책망보다는 오늘 투어에 대한 불만족에 동조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야기하신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선택했다는 생각에 내 책임인 거 같아 마음이 불편하고 힘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남은 35일간의 여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내가 너무 엄마의 연세를 고려하지 않고 일정을 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은연중 엄마에 대한 슈퍼우먼 콤플렉스가 반영되어 있었나? 우리 엄마라면 이런 여행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을 거야!!. 또한 나보다 더한 모험심을 가진 엄마에 대한 과한 기대로 엄마의 65세라는 나이의 몸상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런 생각 가운데 내 마음에 가시처럼 박혀있던 엄마의 말이 맴돌았다.
“내가 이 고생을 하고… 너를 따라온 것 자체가 잘못이다”
이 말이 쉬이 사라지지 않고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사실 엄마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하신 말이었다. 그러나 나는 손가락에 뽑지 못한 가시같이 까끌거리며 신경이 쓰였다.
아마도 이건 나의 피해의식에서 비롯된 감정일 것이다. 2남 1녀인 우리 집에서 나는 막내로 사실 큰 부담을 안고 있는 위치는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집안에서 막내로 큰 기대는 없어서 마음은 편했지만 내가 무엇을 하든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불안해했다. 집안에서는 모범생 오빠들에 비해서는 문제아라는 인식이 있었다. 모범생의 길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것 위주로 하다 보니 아빠 엄마 눈에 항상 부족한 딸이다. 그런 나의 아주 깊숙한 내면의 약점이 엄마의 이야기와 만나서 더욱 나를 후벼 파고 있었다.
역시… 난 부족한 딸인가…
엄마의 그 이야기가 자꾸 나를 자책하게 만들었다. 준비가 너무 미흡했나? 그러다가도 아프리카를 방문한 루트가 다 다르고 일정이 다른데, 더 나은 선택이란 게 있을 수 있을까? 우리랑 같은 루트를 선택한 사람들이 없기에 정답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특히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아프리카 여행에 대한 정보는 찾기도 어려웠다. 이만큼 알아본 것도 대단하다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다행히도 그전에 다른 친구들과 함께 배낭여행을 갔던 것이 나에게는 엄마와 여행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누구나 입장의 차이가 있음을 이해하고 그저 상황을 객관화하고 판단하여 해결하는 데 좀 더 집중하는 게 여행하는 데 더없이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또 동행하는 친구에 대해 배려하는 과정이 없으면 장기 여행은 괴로움과 고통이다. 그전에 다른 친구들과 여행을 갔다가 서로 맞지 않는 성격 탓에 홍역을 치른 기억이 있다. 엄마이기에 더 잘 이해하겠지, 딸이니까 당연히 알겠지라는 기대감을 툴툴 털어버리기로 했다.
패키지여행과는 다르다. 패키지여행은 순간의 변수를 최소화하고 루틴화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는 패키지여행을 온 것이 아니기에 배낭여행의 정의를 엄마와 좀 더 진지하게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더구나 여기는 아프리카가 아닌가? 약속을 하거나 티켓을 끊어도 그 시간에 맞춰 무언가가 이루어지는 것이 어렵다. 우리가 환경에 적응하고 플렉시블 하게 우리의 몸과 마음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상처뿐인 여행이 되기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다. 어쩌면 일생에 단 한 번 뿐일지도 모른다.
엄마에게 노는 법을 가르쳐 주려고 온 거잖아?
이렇게 마음 상하려고 온 거야?
서로를 이해하고 더불어 함께 여행하는 즐거움을 아는 것이 내가 이 여행을 해야 하는 나의 사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도 엄마이다 보니 먼저 말 걸며, 손 내밀기가 쉽지 않았다.
엄마에게 서운한 감정이 들었다. 어떻게 엄마가!!! 나한테 이렇게 하지?라고 생각하는 나의 기대감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행 초반에(심지어 단 며칠 만에!!!) 우리 여행에 대한 목표와 방향을 설정해볼 수 있는 사건이 터진 것이 정말 다행이다.
여행은 항상 다양한 시도와 실패를 통해서 나에게 회복 탄력성을 만들어준다.
장기여행 중 완벽한 준비란 불가능하다. 아니, 여행 자체에 완벽함이란 없다.
우리는 이 여행을 통해서 변하는 순간순간의 찰나를 만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는 것이다.
그 고정되지 않은 상황이 우리의 감각과 생각을 더욱 유연하게 만들고 그 상황에 우리를 적응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은 언제나 배울 게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