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삶의 무게를 지탱하는 것들...

드디어 아프리카를 온전히 느끼는 여행 모드로 돌입한다. 어젯밤 묵었던 공항 근처의 숙소에서 드라켄즈버그로 이동이다. 우리가 선택한 이동수단은 바즈 버스다.


일명 도어 투 도어 서비스로 숙소에서 숙소 사이를 연결해주는 여행객 버스다. 약속한 시간에 숙소 앞으로 나가면 차량이 와 있다. 엄마와 함께 다니는 나에게 이 서비스는 너무나 완벽했다.

이 당시만 해도 아프리카의 대중교통이 규칙적이고 쾌적한 상황이 아니라 타러 가는 것도 고행이었고 아프리카의 하쿠나 마타타의 철학은 교통에도 자주 적용되어 일정이 틀어지기 쉬웠다. 나이 든 엄마가 배낭 짐을 메고 다니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뿐만 아니라 그걸 보는 나도 부담스럽다.


8시 30~9시 사이에 바즈 버스가 우리의 숙소 Shoesstring lodge로 왔다. 바즈 버스 도착 시간이 가까워지자 우리는 아침을 먹다 말고 짐을 꾸렸다. 아침에 일어나기는 거의 5시 반에 일어났다. 산책할 기세로 여유를 부렸는데 허겁지겁하는 우리 모습에 웃음이 났다. 다행히 크게 늦지 않고 바즈 버스 탑승을 완료했다.


사실 아침 일찍 일어난 엄마는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반신욕을 하셨다. 그리고 아프리카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새소리를 들으면서 꽃이 가득 핀 정원을 온몸으로 즐기셨다. 아침에 느끼는 그 여유가 엄마는 너무 좋았던 모양이다.


패키지여행의 그 부산함, 또는 아빠랑 이동했을 때 아빠를 챙겨야 하는 부담감, 혹은 집에서 아침식사 준비와 더불어 일에 쫓겨 샤워인지 물 칠인지 모를 스피드로 바쁜 삶을 살았던 엄마에게 욕조에서의 아침시간은 큰 호사라 느껴졌다.


드라켄즈버그로 향하는 여정은 약 6시간~7시간 정도이다. 바즈 버스에 인원이 꽉 차지 않아서 쾌적한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다만… 차 시트에서의 약간의 꼬랑내만 감수한다면 아프리카에서 이 정도 컨디션이면 감지덕지다.

엄마랑 온전히 버스로만 6시간 넘는 거리를 이동하면서 그간 여행 준비 이야기부터 어릴 적 이야기까지 대화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가 수다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었나 싶을 정도로 봇물 터지듯 이야기가 넘쳐났다. 1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그 풍경과 함께 엄마와 나누었던 대화들이 그림의 한 장면 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이번 여행을 가면서 엄마는 만감이 교차하고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남들이 할머니라고 부르는 65세 나이에 아직은 미지처럼 느껴지는 아프리카라는 나라로, 그것도 배낭여행으로 딸과 함께 떠난다니 아프리카에 있는 지금도 실감이 잘 안 난다고 하신다. 그리고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 감사하고 엄마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 행복하다고 하셨다.


엄마가 어릴 적에 진짜 하고 싶었던 것은 그저 동생들이랑 같이 놀면서 동생을 돌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6녀 1남의 장녀로 태어나서 가난하고 없는 살림에 장녀의 위치라는 것이 그저 쉽지만은 않았던 엄마의 삶을 대표하는 소박한 바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갔다 와서 엄마를 기다리는 모든 일들과 할머니의 기대감.


무엇인가를 책임져야만 했던 압박감은 엄마를 많이 힘들게 했을 것이다. 땅이 없으니 농사를 짓기도 어렵고, 15살 차이 나는 동생들을 그저 방치하고 놔둘 수도 없었기에 엄마는 언제나 바빴다고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남들이 원하는 혹은 그 상황에서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이 엄마에겐 언제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그 마음을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보거나 들춰 본 적이 있을까? 나 라면 과연 그런 삶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 그냥 말로만 들어도 갑갑함에 숨이 막혔다.

이 답답함을 잠깐이나마 숨통 트이게 하는 경관이 펼쳐졌다. 드라켄즈버그의 산맥이 장관을 이루며 차량을 따라오고 있었다. 아프리카 남부의 가장 높은 산, 용의산이라 불리는 위용을 드러냈다. 바즈 버스 안의 여행객들도 경치를 담느라 엉덩이를 들썩였다.


엄마는 나와 아프리카 여행을 하던 그때에 은퇴를 준비해야겠다는 이야기를 하셨지만 사실, 이 글을 쓰는 약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하고 계시다. 하루도 빠짐없이 꾸준히 일하셨다. 엄마가 버겁다 느꼈던 삶의 무게가 이제는 엄마를 견고히 지탱하는 버팀목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와 대화는 정말 끝이 없이 이어졌다. 엄마와 딸의 대화보다는 친구에 가까웠다. 아빠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우리에 대한 이야기들까지 그동안 친구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과정이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나도 엄마와의 대화로 시작하였지만 엄마에 대한 나의 솔직한 감정이나 추억들을 하나하나 같이 나누는 시간이었다. 어릴 적 엄마와 많은 시간들을 함께 하지 못해서 아쉽다는 내 안에 서운했던 마음을 하나씩 치유하는 과정이었다.


어릴 적 독특했던 경험들이 내 기억에 남아 있다. 일명 ‘까진 아이들’의 온상이었던 롤라장에 엄마가 직접 우리를 데리고 갔다가 학교에서 혼났던 일, 중국인 학교에 오빠들을 보냈던 일, 그리고 그 당시에 나를 승마수업에 보냈던 여러 가지 일화들도 우리의 화두였다.


그 당시로 보면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행동들이었는데 이런 엄마의 자유분방한 사고와 모험심은 아마도 나의 8할을 차지하는 것 같다. 무딘 기억 속에 묻혀 있던 진주 같은 우리 이야기들이 아프리카 바람에 수면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느새 우리는 Amptherethe lodge에 가까이 도착했다. 바로 우리가 오늘 묵을 숙소이다. 이 곳은 지역적 특색으로 주변에 숙소 자체가 없었고, 슈퍼나 음식점들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드라켄즈버그 산의 어디 즈음에 위치한 산장 같은 숙소이다. 그 자연 한가운데 놓여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는 벅찼다. 내리자마자 아프리카 소품들이 우리를 반겼다.


원시부족들의 강렬한 표정을 담은 가면들과 화려한 색채가 눈에 띈다. 도착해서 짐을 풀고 리셉션으로 향했다.

내일은 드라켄즈버그 산맥에 올라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에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숙소에서 진행하는 트립 스케줄은 이미 만석이었다.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트립은 레소토 투어뿐이었다. 우리가 원했던 투어는 아니지만 아프리카에서 가장 작은 나라라 불리는 레소토를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아쉬운 데로 레소토 투어를 신청해놓고 숙소로 들어갔다.


자연을 담은 외관과는 달리 숙소는 좀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그나마 메인 공간에 공동으로 쓸 수 있는 자쿠지가 있다니 이것도 나쁘지 않다면서 셀프 위로를 했다.


자쿠지는 메인 바와 함께 위치해 있었다. 드라켄즈버그 산맥에 둘러 쌓인 아프리카 한가운데 자쿠지라니 생각만 해도 운치가 느껴졌다. 그렇게 우리의 아프리카에서의 또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