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모녀는 아빠와 신랑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사위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드디어 공항으로 출발이다.
가는 내내 차 안에서 신랑은 좋겠네… 좋겠네… 를 연발했다.
사실 신랑은 아프리카 여행 같은 모험을 즐기는 타입도 아니면서 아프리카로 떠나는 모녀에 대한 아쉬움을 잔뜩 표현했다. (그때… 우리가 신혼은 신혼이었나 보다)
그렇게 공항에 도착해서 새 신랑을 집으로 보내고 우리는 면세점으로 향했다.
엄마에게 선글라스를 하나 선물하고 싶었다.
엄마가 챙겨 온 선글라스가 다 오래되고 너무 올드한 디자인들 뿐이었다.
여행 준비하느라 돈도 없을 텐데 뭘 사냐며 운을 띄웠지만 이미 우리는 선글라스 매장 앞이었다.
딸의 선물이라는 말에 엄마는 10살 아이처럼 신이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일 존의 선글라스에서 엄마는 눈을 고정하고 있었다. 혹시나 비쌀 까 봐 세일 상품을 사겠다 하신다.
오래간만에 딸 선물인데 예쁘고 잘 어울리는 거 최고 좋은 것으로 사라며 나의 잔소리를 들었다.
일부러 세일 상품이 아닌 곳에서 이것저것 골라드렸다.
어릴 적 나는 엄마와 쇼핑하는 걸 참 기다렸던 아이다.
엄마와 오순도순 쇼핑도 하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엄마와 단둘이 데이트를 하고 싶었다.
오빠들 틈에서 엄마를 독차지 하기란 하늘에 별따기였다. 그저 나는 따라다닐 뿐….
내 의견이 엄마에게 전달되는 데도 한참이 걸려야 한다는 걸 경험으로 잘 알고 있었다.
어릴 적 나는 워낙 고집이 세고 자기 색깔이 분명했다. 쇼핑할 때도 한 두 군데 매장을 방문하는 것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백화점에 있는 모든 매장을 살펴보고 나서야 맘에 드는 옷을 골랐던 탓에 엄마는 늘 조급했다.
쇼핑 중에도 항상 엄마를 찾는 손님들 전화에 우리는 쇼핑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어릴 적 내 마음엔 엄마가 나와의 데이트에 집중하지 않는 것 같아서 서운했고,
엄마는 엄마대로 충분한 시간을 내였다고 생각한 쇼핑이었지만 끝나지 않는 나의 결정에 답답한 마음이었다.
그렇게 나는 엄마와의 데이트를 언제나 갈망했다.
엄마가 노년이 되어서 그리고 내가 사회생활을 하고 결혼을 한 지금에서나, 내가 기대했던 엄마와의 여유 있는 쇼핑을 하게 된 것이다.
선글라스는 엄마에게 잘 어울렸다.
그렇게 한국에서의 마지막 쇼핑까지 야무지게 하고 우리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나는 어제 한숨도 못 잤다. 미리 준비하지 못했던 짐들을 구입하고 다시 정리하고, 이동하기 편한 콤팩트 한 짐으로 구성하는 데 은근 시간이 많이 들었다.
비행기 좌석에 앉자마자 나는 거의 실신 직전이었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서 깊은 잠을 청하는 순간마다 엄마의 부스럭거림이 꽤나 신경 쓰였다.
잠들면 낫겠지… 하고 몇 번을 뒤척이는데 엄마의 부산스러움이 끊이질 않았다.
잠이 들 만하면 부스럭 부스럭….
“뭘 찾는 거야?”
나중에는 사실 좀 짜증이 났다. 어젯밤을 꼴딱 새우면서 오늘 비행기 타면 푹 자야지 하고 피곤함을 미루고 미룬 상황이었다. 한참을 지나서 결국 깊은 잠을 못 자니 짜증 나는 상태가 되고 이젠 거의 잠이 달아날 지경이 되어서야 엄마한테 한소리를 했다.
엄마!!! 왜 그래?
나 어제 한숨도 못 자고 너무 피곤한데,
계속 움직이면서 부스럭 대니까 내가 잠을 깊이 못 자겠거든!!
나의 핀잔에 엄마의 얼굴이 조금은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미안해... 그런데 뭐하나 하려면
돋보기 없이는 힘들어서 그래.
비행기 모니터 작동법을 보자니 돋보기가 필요하고 모니터 화면을 보려니 다시 돋보기를 가방에 넣고, 가깝고 작은 글씨는 볼 때마다 돋보기가 필요하신 것이었다.
차 운전할 때도, 운전할 때는 돋보기 없이 해야 하고 조작법이나 설명서를 보려면 글씨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에 가슴이 덜컹했다.
그 당시에 나는 엄마의 나이 듦에 대해서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돋보기도 그냥 가끔씩 사용하시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던 물건이다. 그런 돋보기가 엄마에게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정말 귀찮게 매번 무언가를 볼 때마다 넣고 빼야 하는 물건이었다.
부산스럽다는 핀잔이 얼마나 엄마의 상태를 모르는 잔소리였는지 부끄러웠다.
선글라스 낀 엄마의 모습만 기대하면서 엄마에게 선물한 내가 뿌듯하다 생각했는데 돋보기 쓴 엄마는 생각지도 못하는 딸이었다.
아까 면세점에서도 엄마가 세일 존에서만 물건을 골랐던 이유도 이 때문인가 보다.
선글라스마다 붙어있는 작은 Tag를 보면서 가격 확인을 하기 어려우니 그냥 세일 존에 있는 상품을 사면 어느 정도 저렴한 물건으로 구입하게 거니 하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 일일이 돋보기를 꺼내 들고 가격을 확인해서 보는 일보다는 이 편이 낫겠다 하신 것이다.
눈치 없는 딸이 엄마 마음도 모르고 한 소리 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물론 서로 거리가 떨어져 있으니 엄마의 신체적 변화를 빠르게 알아채지는 못했을 것이다.
나에겐 그저 영원한 지지자이자 내편이며 언제나 튼튼한 울타리인 우리 엄마.
엄마가 부산스럽게 움직인 이유를 듣고 보니 잠이 달아났다.
비행기 좌석에서 볼 수 있는 영화를 선택해서 틀어드리고 혹시 더 불편한 것이 없는지 확인하고 나서야 나도 엄마의 어깨에 기대어 영화를 보았다. 엄마의 어깨가 많이 야위었음을 그제야 실감한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엄마가 아님을 나는 다시 인식하게 되었다.
엄마와 눈 마주치는 것이 그냥 겸연쩍어 슬며시 눈을 감았다.
이때, 나는 아이가 없었다. 내가 아이가 없을 때는 엄마의 나이 들어감을 실감하지 못했다.
그러나 나에게 아이들이 생기고, 자라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추억과 기억들이 내 존재를 의미 있게 만들어 주면서부터는 순간순간이 아주 천천히 의미 있는 타임라인이 되었다. 그리고 엄마의 시간이 나의 시간과 오버랩됨을 느낀다.
엄마에게도 나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내 기억과 추억의 크기만큼 자라는 시간을 나는 아이들이 커감으로 인지한다. 나와의 아프리카 여행이 엄마에게는 또 엄마를 기억하는 시간이 되리라. 내가 아이들과의 시간으로 나를 기억하는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