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이상한 시간

여행을 빨리 가고 싶은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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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기 얼마 전 친정집에 갔을 때였다.

빨리 여행 가고 싶다!! 엄마가 이야기했다.


나는 이번 여행이 너무 기다려지고 흥분되면서도 또 엄마를 모시고 가는 것이 걱정스럽기도 했다.

더구나 아프리카라는 장소의 특성과 장기여행이라는 것이 여러모로 내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이 설렘은 나의 이런 마음에 섬유유연제를 뿌린 마냥 설렘 향기가 폴폴 피어났다.

어떻게 노는 줄 모르겠다는 엄마에게서 나온 문장 치고는 장족의 발전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여행이 그렇게 가고 싶어?
응 진짜 빨리 가고 싶어.
진작에 갈 걸 그랬다.
그렇지? 어, 맞아.

빨리 가버려야 할 일이 눈에 안 띄지…



진짜 일이 해도 해도 끝이 없어.

조만간 일에 잠식당할 것 같아.

여행 가기도 전에 지쳐 쓰러지겠다.


엥?

무슨 말이지????





여행 가고 싶다는 이야기 치고는 너무 탈출하고 싶은 이야기로 들렸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여행 가는 40일 동안의 여행기간에 해야 할 집안일을 지금부터 처리하느라 정신이 없으셨던 것이다. 업무는 업무대로 돌아가고, 집안일은 집안 일대로, 전원주택에 살고 있으니 텃밭관리, 거기에 아빠의 식사 준비까지 기간은 한정되어 있고 할 일은 태산같이 쌓여 있었던 것이다.


여행 가야 할 날이 멀면 멀수록 할 일이 더 많아지는 엄마의 이상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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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준비기간이 조기철이라며 아빠가 애정 하는 조기를 구입하셨다.

통 크게 1년 치 구입하는 아빠의 클래스…. 무슨 콩쥐도 아니고 여행 가기 전 다 끝내고 가야 할 일들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수준이다.


여행 두 번만 가면 엄마를 잡겠다 싶은 생각도 들어서 웃기기도 하고 미련스럽게 그 일을 꾸역꾸역 하는 엄마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마음 같으면 독을 막아줄 두꺼비랑 밭을 갈 수 있는 소라도 보내고 싶은 심정이었다.


뭘 그걸 하느라 그렇게 고생을 하고 그래?
텃밭 좀 안 가꾸고 씨 안 뿌린다고 죽는 거 아니잖아?
그냥 내버려두어. 갔다 와서 그냥 사 먹으면 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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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내 입장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한 거지만, 지금 생각하니 참 철없는 딸의 이야기였나 싶다.


결혼 10년 차인 나 역시도 지금은 며칠 어디 가려고 해도 냉장고의 썩을 만한 음식은 없나?

혹은 음식물 쓰레기가 나오지는 않을까?


노심초사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둘러보는데 결혼 30년 차가 넘는 엄마의 심정에 오죽하셨을까….


그냥 지나칠 수가 없던 것이다. 여행 떠나 있는 동안의 집안관리가 눈앞에 선하게 그려질 것이다.


사다 놓은 조기가 냉동실에서 탄력을 잃어가면서 점점 삐적거리며 신선도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고, 제 때에 뿌리지 않은 씨앗은 당연히 겨울 김장을 위한 배추 수확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일 것이다.


나의 대답이 별 도움이 못 될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같이 여행을 떠나는 딸에게 하소연 아닌 하소연이자,

여행을 얼른 가고 싶은 마음 둘 다를 이렇게 애 둘러 표현했다.


엄마가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이렇게 번잡하고 복잡했겠구나를 이제야 느낀다.


그저 여행 준비만 하면 훌쩍 떠나버릴 수 있는 여유를 가진 것은 엄마를 가진 덕분이었구나.

편안한 집, 언제나 안락하고 따뜻하고 정갈한 집은 누군가의 부지런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들이었다.


그전에 그림자처럼 누군가가 이런 업무를 담당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이 그림자 같은 업무는 언제나 엄마의 몫이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였던 만큼 더 그러지 않았나 싶다)


아들 둘에 딸 하나가 엄마의 자녀 구성도다.

누구에게 집안일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기 쉽지 않았던 듯하다.

아들들에게 집안일을 시키는 게 부담스러웠던 시절이었고(엄마 생각에 그런 것 같다.), 아들에게는 안 시키면서 딸에게 시키자니 그것도 공평한 것 같지 않고, 더구나 뭘 시켜도 고분 한 놈이 한 놈도 없었던 것도 컸다. 이래저래 하나하나 가르치면서 시키느니 내가 하고 말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내가 가정을 이루고 엄마가 되고 보니 이놈의 집안일이 정말 시간과 노력은 많이 들어가면서 가장 빛이 안 나고 안되어 있으면 모든 가족 구성원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러다 보니 내 입장에서는 참 신경질 나는 업무 중 하나다.


그나마 신랑에게도 일정량 이상의 업무를 부여하고 아이들에게도 어릴 적부터(5살도 빨래는 빨래통에!!) 가르치고 있는 나는 조금이나마 엄마 때에 비하면 그 짐의 무게가 훨씬 가벼운 것 같다.

그러나 나는 내 딸이 다시 나처럼 엄마가 되었을 때는 지금보다 그 부담감이 훨씬 더 적어졌으면 하고 바란다.


엄마가 “여행이 빨리 가고 싶은 이유”를 10년이 지금 이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한동안은 아프리카 준비를 하면서 설렘 때문에 가슴이 콩닥콩닥 거려서 주최하기 어려웠던 시간들이 있었다.

아프리카를 갔다 와서도 그 흥분의 기억 때문에 여전히 바운스 바운스 했는데...


지금은 그 콩닥거림에 대한 기억보다 엄마의 설렘의 이유가 더 기억에 선명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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