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의 사우나 화해


어제의 사건으로 긴장감이 감돌았다. 시멘트가 훤히 드러나는 숙소가 오늘따라 더욱 답답하다 잠을 설친 탓에 새벽에 일어났다. 엄마는 어느새 일어나서 책을 읽고 계셨다. 샤워실로 들어갔다가 흙탕물이 나오는 샤워시설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엄마가 “사우나 갈래?”하고 먼저 말을 건넸다. 엄마의 화해의 제스처가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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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숙소에서 가장 맘에 드는 것은 주변 경관과 사우나다. 아프리카의 아침과 저녁의 기온차가 커서 그런지 자고 일어나도 몸이 좀 찌뿌둥했다. 쌀쌀한 기운에 몸이 꾸덕꾸덕하시다 한다.(엄마 표현인데 몸이 뻣뻣한 느낌을 말한다) 어쨌든 화해의 계기도 필요했고 나 역시도 개운하지 않은 몸상태로 사우나가 필요했다.


숙소는 시멘트 집처럼 만들어졌는데 숙소를 나서는 순간 이곳은 장관이다. 주변을 둘러싼 테이블 마운틴, 그리고 끝도 없는 초원이 펼쳐진다. 푸른 초원 위에 가만히 서 있노라면 어느새 경건한 마음이 든다. 내가 정말 자연의 한가운데 서 있구나!! 자연이 주는 그 위용과 대단함이 몸으로 느껴지는 곳이다. 카나리아 같은 노란 새가 한 나무에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하늘의 파란색과 카나리아의 노란색이 더없이 자유롭게 느껴진다.


드디어 사우나로 들어갔다. 입을 떼기 어려웠다. 사우나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내 차례가 온 것 같다.

나: 엄마! 배낭여행은 패키지여행과는 달라! 그리고 나도 가이드가 아니고 엄마랑 함께 여행하는 사람이야. 이곳이 처음이라는 거야. 액티비티도 해본 걸 하는 게 아니라 해본 적이 없으니까 하는 거고… 엄마가 맘에 안 드는 게 있을 수 있지만 그걸 누굴 탓을 해버리면 같이 여행하는 게 서로 힘들어져. 나도 딸이지만 또 같이 여행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야지
엄마: 너무 기대했었는데 사실 너무 실망해서 화가 났어. 볼 것도 없는 돌 산을 올라가는 일도 너무 버겁고, 영어로 된 가이드 설명을 몇 시간씩 듣는 것도 괴롭고 엄마에 대한 배려가 없는 여행 일정에 화가 났던 것 같아. 물론 네 탓을 했던 건 아닌데 너에게 하소연을 하게 된 것 같아.


엄마랑 사우나를 하면서 오늘 나의 입장과 앞으로의 여행에 대해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나누었다. 엄마는 너무 기대감이 컸던 탓에 자기도 모르게 불평을 한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또 기존의 패키지여행의 편안함과 배낭여행의 간극을 메울 경험이 없었음을 인정하셨다. 나 역시도 엄마의 나이와 컨디션을 어느 선으로 맞추고 고려해야 할지 중간중간 체크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주도해서 일정을 짜지만 엄마가 참여하는 여행이 되어야 엄마도 더 의미 있는 여행을 할 수 있었다. 혼자 고민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 구석이 가벼워진다. 사춘기 이후로 엄마랑 이렇게 전면적인 대치전이 있었던 적은 없었는데, 사우나 화해라니….


오늘은 체크아웃을 하고 더반으로 향하는 날이다. 바즈 버스 시간은 오후다. 그래서 오전엔 좀 한가로웠다.

체크아웃 10시 전에 아침식사를 마치고 점심 토스트까지 준비했다. 바즈 버스 차량 시간은 1시쯤이라 점심에 주방을 이용하는 게 번거로울 것 같았다. 토스트까지 준비해 놓고 여유롭게 산책과 독서를 즐겼다.


숙소 중간중간이 공사 중이라 조금 아쉬운 생각은 들었지만 주변의 풍광을 둘러보면서 우리는 또다시 충만함을 느꼈다. 캠핑을 하는 캠퍼라면 이 곳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테이블 마운틴을 느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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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며칠 간의 조급했던 마음을 내려놓고 이 시간을 느긋하게 즐길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패키지여행처럼 꼭 새벽부터 급하게 움직이는 버스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그리고 꼭 유명 관광지가 아니라도 그저 여행을 온 그 자체로 만도 그 시간이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어가면 거기에 또 여행의 묘미가 있지 않을까? 액티비티나 투어가 아니라도 그 순간을 즐길 수 있는 느긋함이 공존하는 여행을 알려주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나의 이런 생각과는 달리 엄마의 일기를 보니 이렇게 적혀 있었다.


“ 2시쯤이나 바즈 버스가 연결된다니
내일 하루도 허송세월을 보낼 일에 걱정이 앞선다.
내가 뭐 하는 거지?”


이 일기는 그 전날 나와 함께 냉전의 상태에서 몸과 마음이 스크래치 난 상태에서 쓴 일기이긴 했다. 그 무엇 하나 마음에 안 드는 엄마의 상태가 드러난 일기였다.




햇살 아래에 책도 읽고 커피도 타 마시며 광합성을 흠뻑 하니 어느새 12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미리 준비해온 토스트로 점심식사를 준비했다. 사실 남아공에 도착해서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된 식사를 못했다. 샌드위치와 토스트 샐러드 정도로 식사를 대신하니 엄마 입장에서는 힘들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초반 이동시간이 좀 타이트해서 방법이 없었다. 상황이 어쩔 수 없다는 건 이해하지만 어른들은 밥심이라고도 하는데 식사가 부실한 것 같아 엄마에게 좀 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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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마운틴으로 둘러싸인 테이블에 앉아서 샌드위치를 꺼내어 놓았다. 초원 위에 오로지 우리뿐이었다. 평화로움과 따사로움이 깃들어 있었다. 식사는 초라했지만 엄마는 성대한 만찬이라며 눈으로 먹는 풍광이라 하셨다. 자연으로부터 에너지를 충전받는 느낌이었다. 엄마는 이날 온전히 그 시간을 힐링하는 듯했다. 전날 일기에는 “내가 뭐 하는 거지?”라 하셨지만 막상 이날의 일기에는 아래처럼 적혀 있었다.

“한가로이 책도 보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끽했다.
점심은 뒷 뜰 광장에서 초라한 빵이지만
근사한 자연을 벗 삼아 영화의 한 장면처럼 즐겼다”


내 바람대로 엄마가 빡빡한 일상에서의 삶을 내려놓고 여유로움을 즐기는 방법을 하나씩 느껴가고 있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즈 버스가 도착했다. 더반으로 향했다. 약 4시간 소요되는 더반으로 출발! 이동시간이 긴 게 좀 아쉬웠지만 그나마 이게 양호한 편이다. 더반은 도시가 꽤 컸다. 다른 여행객들이 내리는 숙소를 보니 고급 주택가 주변에 위치한 백패커도 꽤 있었다.


인지도도 높고 인기도 높은 HAPPY HIPPO가 오늘의 우리 숙소이다. 고급 주택가를 지나서 해안가 방향으로 향할수록 나의 마음의 불안도도 올라갔다. 혹시라도 숙소가 너무 형편없으면 어쩌지? 엄마의 반응이 별로면 어쩌지? 아침에 이런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아야지 했는 데도 불구하고 한 켠으로 이런 불안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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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해보니 그냥 일반 건물이었다. 빛바랜 간판에 힘이 좀 빠지는 듯했는데 들어가면서 느낀 점은 숙소 관리가 깔끔하고 안전했다. 오늘은 어제 숙소의 불편함 때문에 조금 더 비용을 들여서 욕실이 딸린 방을 예약했다. 엄마는 우선 잠자리가 좀 편안하다 느끼셨는지 맘에 들어하셨다.


짐을 내리고 우선 듀반의 해변으로 걸어 나갔다. 사카마린 월드와 수족관, 수영장이 있는 거대 몰이었다. 금요일이라 사람들이 북적였다. 날이 저물었는 데도 바닷가에는 수영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모래사장의 모래는 엄청 고왔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손재주는 놀랍다. 모래사장의 모래를 가지고 다양한 작품들을 만들어 놓았다. 그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비용을 내야 하긴 했지만…. 그 작품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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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스테이크 하우스로 들어갔다. 사이즈가 가장 큰 스테이크와 샐러드로 만찬을 즐겼다. 정말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식사였다. 맛도 좋았지만 여유로움을 느끼는 이 순간이 좋았다. 엄마도 며칠 간의 여정으로 힘들기도 했지만 뭔가 패키지 와는 다른 매력에 하나씩 눈을 뜨고 있는 듯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엄마와 나는 충만했고 해변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우리가 여행 왔음을 그냥 느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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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숙소인 해피 히포의 매력은 옥상에 있는 바에 있었다. 바에서는 파티가 한창이다. 각 나라의 여행객들이 자연과 동물이 주제인 듯 얼룩말 의상과 사자나 각종 동물 코스튬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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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보기엔 경기 할 수준이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신선한 충격이자 문화적 다양성을 느끼는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옥상으로 울려 퍼지는 우퍼의 음감이 지금도 느껴진다. 빵빵한 사운드와 검은 하늘의 별들, 그리고 내 손 안의 맥주 한잔. 이렇게 또 오늘 하루도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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