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 엘리자베스로 향하는 길, 버스로 16시간이라는 긴 여정에 아프리카 대륙이 자신의 거대함을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바즈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이제는 익숙한 듯 지나쳤다. 나는 여행에서 이렇게 차를 타는 순간에 알 수 없는 외로움을 느낀다. 글쎄… 이렇게 승객이 꽉 찬 가운데 느끼는 외로움이라? 외로움이 사람이 없어야 느끼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 가운데 혼자만 동떨어진 기분을 느낄 때, 이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나의 가슴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 같다.
이는 아마도 나의 각인된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미국 배낭여행을 떠났을 때의 기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남아있다.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가면서 석양을 느끼는 데 알 수 없는 외로움이 끝도 없이 밀려왔다. 20대 청춘, 그 단어 하나만 믿고 떠난 여행이었다. 한국에서는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느낄 시간이 없이 살다가 외국인들만 가득한 버스를 타고 말 한마디 없이 주와 주를 넘어가는 날이면 오로지 창밖으로 바뀌는 자연만이 나랑 독대했다. 정말 오롯이 홀로 하는 여행을 통해서 그 외로움을 맛봤던 각인된 기억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여행은 나에게 외로움이라는 단어도 알려주었다.
엄마와 함께 하면서도 긴 시간의 버스 탑승은 이 외로움이라는 기분을 느끼게 해 주었다. 그리고 현재를 감사할 수 있었다. 엄마랑 내가 지금, 함께 할 수 있음을 감사했다. 아프리카는 오지 아니아? 힘들지 않을 까? 여행을 떠나기에 편견이 있을 법한 아프리카 여행에 기꺼이 나의 메이트가 되어 준 엄마가 고마웠다.
아직도 포트 엘리자베스까지는 2~ 3시간은 남은 것 같다.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겨우 저녁을 먹을 만한 휴게소에 당도했다. 휴게소에 도착해서는 한숨이 나왔다.(우리나라 같은 휴게소가 아니다.) 그냥 딱 작은 구멍가게 하나 있는 느낌이다. 들어가 보니 정말 맛없게 생긴 정체를 알 수 없는 빵만 팔고 우리가 식사로 먹을 만한 것들은 찾을 수가 없었다. 도저히 살 만한 것이 눈에 띄지 않았다. 더구나 오늘 새벽 6시 30분부터 차량을 타고 달려와서 그런지 신선한 음식이 무지하게 그리웠다. 차 타는 것도 고된데 식사까지 제대로 하지 못하니 엄마에게 미안스러웠다.
휴게소를 나와서 주변에 작은 식당이라도 있을까 싶어서 옆으로 돌아갔다. 와우!!! 상가의 이름이 FRESH SHOP인 매장이 길 건너편에 보였다. 거기엔 우리에게 보물 같은 과일과 야채류가 가득했고 저녁이 될만한 샐러드 거리와 피자까지 판매를 하고 있었다. 정말 다행이기도 했고 안심이기도 했다. 그저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느낌이었다. 엄마는 토마토 한 봉지를 들며 다 사겠다 하시고 귤 한 봉지와 오이 한 봉 지도 사겠다 하고, 사과와 바나나까지…. 그간 잘 보지 못했던 과일들을 보니 욕심을 내셨다.
그러나 결국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었다…. 짐을 계속 늘릴 수는 없으니 사과 2개, 오렌지 2개 토마토 2개로 마무리를 하고 지금 당장 먹을 피자와 포테이토 샐러드로 장보기를 마쳤다. 집 텃밭에 넘쳐나던 토마토 하나에 이렇게 즐겁다니. 여행은 항상 우리가 누리는 것들에 대한 소중함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감사했다. 긴 버스 탑승이 나이 든 엄마에게 보통 일이 아니었을 건데 작은 토마토 하나에 기뻐하시는 모습을 통해서 엄마의 그런 부분을 닮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것으로부터 충만한 기쁨을 누리는 것.
버스로 돌아오니 사람들은 아까 그 돈 주고 도저히 사 먹을 것 같지 않은 빵을 한 두 개씩 들고 있었다. 맛도 별로인지 영 진도가 안 나가서 들고 만 있다. 우리가 들고 온 야채 꾸러미에 다들 눈이 돌아갔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려주지 못한 게 순간 미안해졌다.
바즈 버스는 다시 출발한다. 저녁이라 밖이 깜깜하다 못해 칠흑 같다. 초원과 벌판을 지나가니 불빛이 전혀 없어서 더더욱 깜깜했다. 저녁엔 DVD타임이다. 차량 내의 불만 소등하니 완벽한 자동차 극장이었다. 더구나 바즈 버스 차량이 크고 스피커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그런지 빠방 한 사운드로 완벽한 영화관을 구성했다. 딸과 보기 민망한 장면이 자꾸 나와서 그런지 엄마는 잠을 청하셨다. 어둠 가운데 영화만이 역동적이다. 노을이 지며 어둑해질 때 느끼는 설레는 듯한 외로움과는 또 달랐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짙은 농도의 외로움이 또 한 번 몸을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포트 엘리자베스로 향했지만 중간에 친나베이에서 내린 승객들도 여럿 있었다. 젊은 친구들이 놀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었다. 숙소 바로 앞에 바닷가가 펼쳐져 있는 곳도 있었고 잠깐 들렸던 숙소에서는 각층마다 브라이를 (아프리카 바비큐) 해 먹을 수 있도록 마련된 곳이 있었다. 서핑과 요트를 한꺼번에 체험할 수 있는 곳이 많았고 거의 산장 깊은 곳에 위치한 숙소들로 액티비티 하기에 좋은 장소들이 넘쳐났다.
어느새 10시 30분을 지나 11시쯤 돼서 우리 숙소인 Lungile lodge에 도착했다. 숙소 선택에 있어서 정보가 자유롭지 못한 탓에 후기나 사진에 기대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이 곳 역시 별 기대를 안 하고 들어갔는데 엄마도 나도 맘에 들었다. 통나무로 만들어진 전체적인 외관이 우리가 여행 왔음을 반겨주는 듯했다. 바즈 버스 티켓으로 할인까지 받으니 더욱 친절하고 아늑한 공간처럼 느껴졌다. 리셉션 공간의 청년들은 왜 이리 친절한지, 16시간의 고된 버스 탑승 때문인지 도착했다는 사실 만으로도 만족스러웠다. 내일도 나이즈나로 가려면 일정이 빡빡하다. 이미 늦은 시간이지만 서둘러 잠자리에 몸을 뉘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