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토리, 그 당혹감이란...

벌써 몇 시간 째 한없이 푸른 초원과 산맥을 지나고 있다. 보리를 수확하는 기간인지 온천지가 노란빛의 보리물결이 일렁인다. 어느새 어둠이 드리워졌다. 밤이라 그런지 인도계 운전자의 옆자리엔 부인도 함께 동행했다. 저녁 7시쯤 주유소 가게에서 햄버거로 저녁을 때웠다.


어디든 이동의 연속이다 여행 자체가 이동의 연속인가?

아니, 인생 자체가 이동의 연속인가 싶기도 하다. 딸이었다가 누군가의 부인이 되었다가 다시 누군가의 엄마가 되고, 그렇게 포지션을 바꾸면서 또 거기에 맞는 성장의 과정이 함께 있을 때 우리의 삶은 더욱 세공되어 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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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기사님이 사진 찍는 포토 타임이라며 승객들에게 알려줬다. 그리고 차를 천천히 몰아주셨다. 말씀과 함께 창 밖을 내다보니 하늘에 은하수가 도시를 덮은 것처럼 도시 전체가 반짝거렸다. 은하수 별들이 촘촘히 떨어져 박힌 듯 도시 전체가 별빛 축제 같았다. 그 별빛 가득한 곳이 케이프타운 시내라고 한다. 아직 거기까지는 45분이나 남았다. 지금까지 달려왔던 적막 하면서도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외로움이 가득했던 길과는 분위기가 완전 달랐다. 이미 불빛 가득한 도시는 하나하나가 생동감을 눈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도시 한복판의 시내로 접어들었다.


바즈버스는 코스를 따라서 각각의 숙소를 돌면서 내려주었다. 하나 둘 내려주는 데 우리 숙소는 아직이다. 우리가 선택한 썬 플라워 숙소가 가장 멀었다. 도착해보니 방이 2층이다. 하하하… 2층이면 영락없이 나는 포터가 된다. 들어선 마당엔 수영장이 있었지만, 지금까지 있던 숙소들보다는 컨디션이 별로였다.


아무래도 도시이다 보니 디럭스나 더블처럼 개별 룸 스타일이 아니라 도미토리가 더 많았다. 또 사람도 많아서 쾌적한 공간은 아니었다. 엄마도 그간의 여유를 느끼던 공간에서 도심 속의 복작복작한 공간으로 이동하니 숙소가 심란해 보이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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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배정받은 곳은 6인 도미토리 룸이었다. 2층 침대가 3개로 6명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너무 오래된 이부자리와 푹 꺼진 시트가 우리의 컨디션을 대신해주는 느낌이다. 아무래도 오랜 시간 차량을 탄 것도 한몫했다. 엄마는 너무 피곤하신지 간단하게 씻고 누워 잠을 청했다. 나는 내일 가야 할 일정이나 예약할 것들이 있어 피곤한 눈꺼풀을 이겨내면서 일정을 정리해본다.



엄마는 주무시고 나는 일정이랑 예약할 것들을 정리하는 동안 같은 방의 도미토리 친구들이 들어왔다. 게스트하우스마다 다르지만 도미토리의 경우 남녀로 구분해서 쓰는 경우도 있지만 외국의 경우 도미토리의 남녀 구분이 없는 경우도 많다. 좀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배낭여행 다니다 보면 크게 신경 쓰이는 부분들은 아니다. 더구나 잠만 자고 대부분 여행지를 다니기 때문에 큰 부담도 없다.


그런데 엄마는 이 도미토리를 처음 이용해 보신다. 나도 따로 이런 이야기를 해드려야겠다는 생각도 못했다. 배낭여행 다닐 때야 도미토리만 이용했던 가난한 여행객이었기에 그저 익숙한 환경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엄마는 기겁을 하셨다.


자고 있는데 외국인 남정네 둘이 바로 옆 침대 같은 방에서 자고 있으니 방을 잘못 찾은 것 아니냐면서,,,, 나를 깨우고 난리가 났다. 그때서야,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나도 디테일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국 남자들이 머리를 말리고, 양치를 하면서 방으로 들어오니 너무 놀랬다고, 그래도 이 친구들은 매너가 있어서 속옷이나 가운만 입고 돌아다니지는 않았다.


엄마는 아침에 잠시 현타를 맞고 그 당혹감을 얼굴에서 감추지 못하셨다. 다른 남정네들과의 합방이라니...

아빠가 들으면 얼마나 깜짝 놀랄 일인지!!

아빠 죄송해요. 다른 남정네들과 합방하게 만들어서….


엄마도 처음엔 너무 놀랬다가 시간이 지나갈수록 배낭여행의 문화로 바라보시고, 이해하셨다. 그리고 엄마 스스로가 배낭여행객 중 하나라는 사실을 인지하셨다. 같은 방 친구들에게 서로 눈인사하고 보니 어느 정도 마음도 진정되었다. 더구나 외국인의 훈훈한 외모(?)도 엄마의 놀람을 급속도로 잠재우는 데 한몫을 한 것 같다.


도미토리는 엄마에게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다 큰 장정들과 한 방에서 자는 것을 어른들이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다. 또 그러한 상황이나 현상을 어른들에게 만약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진빼는 과정이었을 거다. 그러나 현장에 있으니 말로 설명할 필요 없이 그 상황 속에 놓이니 충분히 다른 설명 없이도 이해가 되었다.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문화적 충격을 받을 일이 사실 얼마나 있을까? 이렇게 여행이나 다른 문화권에 왔을 때 우리의 일상이 당연한 것이 아니고 다른 문화권 사람들의 새로운 사고에 맞닿들이면서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 같다. 나의 사고를 자극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나는 참 좋다. 내가 새롭게 태어나고 나의 껍질을 벗어던지는 기회가 되는 것 같다.


엄마는 나보다 훨씬 이런 문화적 변화를 겪을 일이 적은 삶을 살았다. 아니 어쩌면 너무 경직된 문화 가운데 그게 때로는 부당하다고 생각하지도 못한 삶을 그저 묵묵히 살아온 시절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 생각하다.


딸과 함께 여행을 하게 될 쯤에 나는 어떨까? 아무리 멋진 할머니가 되어도 문화적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엄마처럼 당혹스러운 순간들이 있을 것 같다. 나 역시도 어느 순간부터는 변화를 두려워하게 될지 모른다. 유연한 사고도 연습을 통해 길러지지 않을까? 매일매일 유연한 삶을 사는 연습을 해야겠다.


Tip) 부모님과의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꼭 미리 말해두고 싶은 건~~: 내가 가이드다!! 하는 마음으로 가는 것이 좋다. 그만큼 내가 정보를 확인하고 예약하고 하는 시간들의 안배가 중요하다. 어른들을 모시고 나 혼자 여행하는 것처럼 자유롭기는 어려우니 가이드라는 마음으로 접근한다면 좀 더 수월하다. 가이드처럼 완벽하게 까지는 아니어도 어른들의 체력 안배를 고려한 일정이나 시간에 대한 여유가 있어야 어른들이 쉽게 지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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