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블 마운틴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왔다. 어제 버스 타고 드라이브를 했던 캠스베이로 향했다. 어제보다 날씨가 추운 탓에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는 해변가를 거닐었다. 싸늘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신발을 벗어서 양손에 쥐고 차가운 모래와 바닷물의 경계선을 따라 걸었다. 사이다를 한 모금 마시고 목을 따라 내려가는 탄산 같이 시원한 소리를 내는 바닷물이다. 발바닥에 청량감이 돌았다. 발바닥 모양을 따라서 방울방울 탄산이 터진다.
엄마의 발걸음이 모랫바닥에 찍혔다. 그리고 나도 그 길을 따라서 쭉 걸어갔다.
엄마와 다른 듯, 그러나 닮은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의 닮기 싫은 모습들마저 엄마를 닮아가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절대로 어릴 적에 바쁜 엄마는 되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요즘의 나는 바쁜 일상에 쫓겨 아이들을 다그친다.
엄마가 해야 할 일이 그리 많은 지 전혀 몰랐던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카스텔라 빵 만드는 건 꿈도 안 꾼다. 다행히도 지금은 카스텔라 만드는 기계가 유행은 아니라 아이들이 나에게 카스텔라 빵을 만들어주는 걸 기준으로 엄마의 사랑의 기준을 측정하는 것 같지는 않다. 맛있는 빵집들이 많아져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엄마가 지나간 그 발걸음을 따라간다. 엄마의 발자국에 나의 발을 맞춰본다. 어릴 적엔 일하는 엄마의 부재가 항상 나에게 있었던 것 같다. 심지어 대학생 아니 결혼을 하기 전까지도 알게 모르게 서운한 마음. 늘 엄마의 사랑이 부족한 것 같다 느꼈다.
요새 첫째를 보면서 사랑의 그릇이 아이들마다 다 다르다는 걸 느낀다.
줘도 줘도 항상 사랑이 더 필요하다고 말하는 첫째,
어떻게 키웠는지도 모르게 컸는데 그래도 엄마가 준 사랑만으로도 충분한 것 같은 둘째를 보면
어쩌면 나의 엄마의 사랑을 담는 그릇은 좀 더 컸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한해 한해 나이가 들수록 엄마가 참 대단해 보인다. 외가 식구들에 대해 첫째가 가지는 삶의 부담감들을 어떻게 견디어 냈는지, 내 앞에 엄마의 작은 어깨가 참 단단해 보였다.
발을 털고 잠시 벤치에 앉았다가 Sea point 방향으로 이동했다. 오늘이 Hop-on/off 투어를 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 커넬 크루즈를 타기로 했다. 쌀쌀한 날씨 탓에 뜨끈한 국물이 생각난다. Sea point 방향으로 가면서 워터프런트의 태국 음식점으로 갔다.
누들과 똠 양국을 시켜서 오래간만에 얼큰한 국물로 식사를 했다. 엄마랑 여행하면서 참 감사한 건 엄마가 다행히도 다양한 식사나 향신료에 크게 거부반응이 있거나 식사로 괴롭지 않아서 참 다행이었다. 이것마저도 내가 엄마를 닮은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커넬 크루즈를 타러 갔다. 작고 빨간 배였다. 워터 프런트를 사이에 두고 수문의 문을 열어 물높이를 맞춰서 배를 띄우는 것이 신기했다. 그 길을 따라가면서 선장이 조곤조곤 설명해준다. 리조트 바로 앞쪽으로 요트를 델 수 있도록 설계되어서 문 앞에서 요트로 탑승이 가능했다.
또한 스킨스쿠버 시설을 내부에 수영장처럼 만든 것이 아니라 리조트 앞쪽에 수중 공간을 활용해 야외에서 가능하게 만들었다. 고급 리조트들 사이사이 리조트 문 앞에 배가 정박할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졌다. 어느새 커넬 크루즈 관람을 마치고 엄마가 좋아하시는 꽃이 가득한 시내의 컴퍼니 가든을 들러 집으로 향했다. 숙소까지 걸을 수 있는 거리라고 해서 걸어가는데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메인 도로가 아닌 곳으로 길을 잘못 들었는지 식당도 찾기가 어려웠다. 막판 걷기만 아니었으면 오늘 일정이 좀 편안하게 마무리되었을 텐데…
지금처럼 구글맵 활용이 일반화되었다면 금방 거리에 대한 감을 익힐 수 있었을 텐데 이때는 오로지 지도 하나 들고 다니던 때라 한마디로 사서 고생을 했다. 얼추 40분은 걸은 것 같은데…. 걸어온 것이 약이 올라서 차마 택시는 못 타고 저녁식사에 투자하기로 했다.
오늘의 메뉴는 스테이크다.
교통비 아꼈으니 고기 먹자며!!
큼지막한 스테이크용 고기와 각종 야채를 구입했다.
아프리카식 브라이(아프리카 바비큐)는 아니지만 나름 숙소에서 고기 냄새를 폴폴 풍기며 저녁 만찬을 즐겼다. 오래간만에 칼질에 마음에 풍족해진다. 여행을 하면, 기본적인 삶의 요소들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는다.
늘 편안히 지낼 수 있는 집, 그리고 엄마의 손길로 만들어진 식사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어릴 적에는 정돈된 집과 식사에 그렇게 많은 노동이 투입되는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어 보니 그 노동은 정말 말도 못 하게 귀찮았으며 힘들었고 또 누구 하나 알아주지 않으며 하지 않았을 때는 불평불만만 난무했다. 엄마가 되어서야 알게 되는 게 너무나 많다. 왜 우리는 이것들을 인지도 못하고 나누지 않고 이야기하지 않았는지 지금도 미스터리다. 나는 수시로 아이들에게 엄마의 힘듦을 토로한다. 혹시나 아이들이 나의 노고를 잊을 까 봐...
이런 기본적인 것들이 충족되었을 때 느끼는 충만함을 우리는 일상에서 종종 잊고 지낸다. 당연한 듯 누리던 것들을 여행에서는 다시 보게 된다. 그저 든든한 저녁 한 끼가 주는 이 포근함과 충만함을 타지에 여행 와서야 오롯이 느낀다.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숙소로 들어갔다. 온종일 걷느라 피곤한 몸이라 그저 몸을 뉘이기만 해도 좋았다. 하루 종일 피곤했을 엄마에게 발 파스랑 안티프라민을 발라주면서 다리를 주물러 드렸다. 이런 떼떼모찌 같은 구두쇠 딸이랑 여행하는 엄마가 고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