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뜨고 카드 베어가기

아침부터 행운이다. 이 숙소를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와이파이 무료 이용권 이벤트가 열렸다. 이 당시만 해도 와이파이가 귀했다. 더구나 아프리카에서는 더더욱 귀한 대접이었다. 와이파이를 사용하려면 일정 금액을 내고 사용해야 하는 데 그것 마저도 아프리카에서는 통신이 원활하지 않아서 생돈을 날리는 경우가 많다.


와이파이 무료 이벤트로 아침부터 부지런을 떨었다. 인터넷 바우처를 받아서 친구들이랑 식구들에게 카톡과 보이스 통화도 하고 이메일 체크와 나미비아의 숙소까지 체크했다. 이날 체크아웃도 함께 하는 날이라 분주하고 바쁘다. 남아공에서는 숙소를 한번 더 바꿔야 했다. 지금 숙소가 맘에도 안 들었지만 예약하고자 하는 날짜가 더 이상 없어서 급하게 새로운 숙소를 예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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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의 날씨는 정말 왔다 갔다 한다. 오늘 오전엔 비가 살짝 흩뿌린다. 10시에 체크아웃을 하고 새로운 숙소인 아샨티로 자리를 옮겼다. 조금 거리는 멀지만 그래도 새로 오픈해서 기대가 된다. 도착하는 순간 WOW!!! 보는 순간 진짜 옮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깔끔하고 깨끗한 침구와 더불어 도미토리 문도 전자식 도어로 되어 있다. 더욱 놀란 건 호텔처럼 개인금고까지 마련된 도미토리 시설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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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옮긴 숙소는 더없이 맘에 들었고 인터넷 무료 사용 이벤트까지 이용하고 약간 들뜰 만큼 기분이 좋았다. 체크인을 하면서 페닌슐라 투어까지 신청할 수 있어서 신청을 마무리하고 시내로 나갔다.


오늘은 메인 일정이 크게 없는 날이다. 시내 돌면서 여유 있게 카페 놀이라도 해볼 심산이었다. 우선 가장 중요한 건 나미비아 비자를 받는 것, 그리고 이 비자 비용을 내려면 현지 현금을 뽑는 것 정도였다.


모든 일이 술술 풀리니 기분도 좋고 은행을 찾아가는 길도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그전에 이용하던 은행 캐쉬기에서는 1회 최대 금액이 정해져 있어서 한 번 현금을 뽑을 때마다 수수료가 발생했다. 아까운 마음에 다른 은행 캐쉬기를 이용해봐야지 했다.


사실 아프리카에 오기 전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첫째!! 돈 뽑을 때 절대 은행 외부의 ATM기 사용하지 말라는 경고문을 익히 들었었다. 둘째, SECURITY가 있는 곳을 이용하여야 한다. 근데 정말 홀린 듯이 나는 가장 번화가 몰 옆에 있는 ATM기 은행도 아닌 길에 있는 현금지급기 앞에 망연자실 서 있었다.


진짜 미치거나 홀리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다. 그간 아프리카에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워낙 친절하고 호의만 받았 던지라 경계가 느슨해진 것이다. 어쩌면 가장 표적이 될 수 있는 장소였고 나는 거기에 엄마랑 형광색에 가까운 바람막이 재킷을 걸치고 누가 봐도 외국인 여행객임을 알리는 모양새로 ATM를 이용하고 있었다.


ATM기를 이용하는데 영어가 아닌 아프리카 어로만 계속 나와서 당황했다. 그 당황과 더불어 뒤에 있던 아프리카 친구가 도와준다며 내가 이용하고 있는 ATM기의 패널을 자꾸 눌렀다. 나는 카드가 캐쉬기 안에 있는 줄 알고 비밀번호를 눌렀다. 계속 오류가 나면서 안내문이 뜨는 데 아프리카 언어라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들어갔던 카드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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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그 친구가 어느새 카드 날치기를 해 간 것이다. 정말 이렇게 어이없이 당할 수 있나? 하는 상황이었다. 내 카드를 가지고 사라지면서 내가 누르는 비밀 번호를 대충 보고 사라졌다. 그 앞에서 카드를 기다리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다 5초 이상 기다리는 순간 느낌이 쎄 했다. 뒤에서 엄마는 나를 도와주는 사람인 줄 알고 있었고, 그 친구가 가면서 잔돈을 던지면서 가길래 심지어 주워주려 했다 한다. 이 동전은 혹시나 쫒아오는 우리를 교란시키려는 방법이었다.


엄마는 도와주다 말고 잔돈을 뿌리면서 가길래 뭐지? 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홀리지 않는 한 이런 상황의 중심에 내가 있다는 것이 너무 황당하고 분했다. 그 ATM기랑 같은 은행으로 들어가서 도움을 청했지만 바로 조치를 취할 수가 없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한국은 주말 저녁이다. 전화연결도 되지 않았고 은행의 긴급호출도 적용되지 않았다. 마음은 급하고 애가 탔다. 그 순간 스마트폰에 있는 은행 앱이 생각나서 다행히도 바로 분실신고를 했다.(이때만 해도 앱이 상용화되고 그런 때는 아니었다. 모바일 초기 라떼 시절이다. )


그러나 이미 내 통장의 잔고는 0이 되어 있었다. 약 30분 만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 여행 경비가 오롯이 들어있는 체크카드였고 통장이었다.


엄마랑 함께 떠나는 여행이기에 가난한 배낭여행객 모드는 아니었다. 일정 안배에 있어서 뒤쪽으로 갈수록 럭셔리한 일정으로 짰다. 여행의 피로도가 쌓이기에 후반엔 좀 더 편안한 숙소와 먹거리 그리고 휴양의 개념이 포함된 일정이었다. 이런 일정에서 써야 할 돈을 싹 다 날려 먹었다. 심지어 엄마가 가족들로 받았던 용돈까지 이 통장에 들어가 있었다.


이 계좌의 잔고는 0원입니다.

전화기 너머의 기계음이 귓가를 맴돌면서 정신이 혼미해졌다.

현기증에 길거리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말로만 듣던 눈 뜨고 카드 베어가기를 눈앞에서 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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