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정신 줄을 놓고 앉아 있었다. ATM기에서 일부러 아프리카 언어로 체크하는 그 남자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계속 에러가 나오는데 아프리카 말이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아프리카 소매치기가 패널을 찍어 대는 탓에 정신을 못 차렸다.
철퍼덕 주저앉은 내 모습이 보인다. 내가 이렇게 정신줄을 놓으면 엄마는 얼마나 놀라실까? 하는 생각에 정신줄을 애써 붙잡아 본다. 내가 소리치며 도와 달라하니 경찰들이 왔다. 경찰들은 와 줬지만 일처리가 진행되지는 않았다. 우선 경찰서에 가더라도 현재 대사관에 여권을 맡겨 놓아서 우리 신분을 증명할 길 조차 없었다. 놓았던 정신줄을 잡고 일의 순서를 생각해본다. 우선 대사관에 가서 비자발급과 함께 여권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다행히 엄마는 주저앉지는 않으셨다. 나보다 엄마다 더 놀랐을 텐데….
“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주저 않고 싶었지만 소정이가 놀랠까 봐 가까스로 몸을 지탱했다. 소정이는 얼마나 놀랬을까? 나는 머리가 먹지가 되어버리고 말도 안 통하고 전화도 못하고 속이 답답했다. 사지가 떨렸다. 그러나 우리 소정이 다행히, 카드 관련 정보를 메모해와서 한국 외환은행에 전화를 걸었다. 금요일 밤이라 연결이 어려웠다. 겨우 연결이 되고 보니 6번에 걸쳐 모든 잔고를 싹 빼 가버렸다. 소정이 얼굴이 사색이 되어 주저앉았다."
엄마의 일기장에 그 당시에 상황을 적어놓은 것이다.
정말 이 시점에 다행인 것은 아까 잃어버린 여행 경비 외에 신랑과 오빠들이 용돈으로 준 것은 공항에서 다른 카드에 연결된 계좌에 넣었다는 것이다. 공항에서 이 카드 외엔 다른 은행 찾기가 어려워서 급하게 넣었던 것인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불행 중 다행이다.
다른 계좌에 다행히 나미비아 비자 비용과 며칠 동안은 지낼 수 있는 비용이 들어있었다. 외부 ATM기가 아닌 은행 안에 ATM로 이동했다. 일정 금액을 인출했다. 은행 안에서 인출하는 데도 눈물이 나오고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은행에 잠깐 앉아있는데 친절한 은행 직원이 아까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우리에게 따뜻한 커피 한잔을 건네었다. 은행 안에 경찰이 있는 곳에서 돈을 뽑아야 한다며 다시 한번 알려주었다.
타지에서 외국인에게 소매치기당하고, 또 다른 외국인에게는 이런 따뜻한 대접을 받고 마음이 온탕이 되었다 냉탕이 되었다 한다. 뽑은 돈을 들고 나미비아 대사관으로 향했다. 비자를 준비하던 첫날부터 이래저래 속 썩이더니 결국 아침에 이거 찾으러 와서 이 쌩난리가 난 걸 생각하니 울음이 나오려고 했다.
엄마가 있어서 펑펑 울 수도 없다. 그냥 바보같이 당한 나에게 화가 났다. 한국에서도 뭘 잘 잃어버리는 일이 없는 내가 왜 이곳에서 이랬을까? 요새 일정이며 예약이며 신경 쓸 게 많아서 그랬는지 예민해지고 집중도가 많이 떨어진 느낌이었다.
비자와 여권을 받고 경찰서로 향했다.
기다림, 기다림, 기다림, 아프리카의 여정의 많은 부분이 기다림으로 이어진다. 겨우 내 차례가 되었는데, 이번엔 통장잔고확인서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지금처럼 앱을 이용하던 때가 아니라 메일을 통해 받아야 했다. 인터넷 카페로 다시 이동해서 팩스를 메일로 받아야 한다고 했다. 막상 한국에 전화해서 물어보니, 한국의 은행은 주말이라 팩스로 내용을 받을 수도 없었다. 다시 경찰서로 이동했다. 이런 상황임을 이야기하고 잃어버린 물품과 금액에 대해서 보상받을 수 있는 조서만 우선 적었다.
이 시간이 너무 길게도 느껴졌다. 느리게 조서를 작성하고 다행히 경찰차가 목적지까지 데려다준다고 했다. 그러나 막상 집으로 들어가면 더 속상하고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차라리 시내 중심인 워터 프런트 거리로 가서 기분전환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워터프런트 거리에 내려서 쇼핑센터로 들어갔다.
나는 그냥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그 계좌에 넣어 놓은 우리의 여행 자금도 자금이지만 남은 일정에 대한 부담감이 엄습했다. 엄마를 잘 보살피고 좀 편안하고 재미있는 여행을 꿈꾸던 것과는 달리, 남은 27일의 남은 여정을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 나 스스로 너무 두렵고 힘들어졌다. 엄마도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우리 둘은 부둥켜안고 사람 많은 워터프런트에서 엉엉 눈물을 흘렸다. 새롭게 출발하자고 다짐해도 견딜 수가 없었다.
아프리카 시내 한 복판에서 모녀는 주저 않아 울다가 또 자리를 이동해 한바탕 부둥켜 앉고 울었다.
울지 않고서는 그 복합적인 마음을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미안함과 자책과 원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