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울고 나니 차라리 마음이 좀 홀가분해졌다. 두려움과 함께 엄마가 있다는 생각에 든든해졌다. 존재 자체만으로 힘이 되어 주는 것, 바로 엄마였다.
잊고 살았다. 존재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사람이 엄마라는 것을…. 그저 나는 딸로서 엄마가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었지만, 막상 내가 10년이 지난 지금, 엄마란 이런 거였지 하는 마음이 떠올라 아이의 마음과 엄마의 마음이 다 내 마음속에 들어왔다.
아이에겐 때론 전부이자 온 세상인 엄마, 나 역시 지금의 나의 아이에겐 온 우주가 되어 있겠지? 점점 자라면서 부모의 그늘을 벗어나는 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렵고 힘든 일 앞에서 엄마라는 존재는 언제나 큰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이다.
두 아이의 엄마라는 이름에 사실 무거운 마음도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삶에서 정말 빛처럼 소중한 중요한 존재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가? 그저 엄마라는 타이틀에 내 삶이 갇혀버리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육아를 하는 내내 나를 초라하게도 두렵게도 만들었는데…
내가 성인이 되어서 주저앉았을 때 그때 나에게 단 한 사람 엄마가 있었기에 나는 또다시 일어설 수 있었음을 기억한다.
워터 프런트에서 점심을 먹으며 마음을 가라 앉혔다. 테이크아웃을 해서 해변으로 나갔다. 우리의 남은 여행 경비를 모두 다 털렸으니 손도 떨리고 가슴도 콩닥거렸다. 그나마 나중에 받았던 여행 축하금이 다른 계좌에 있었던 게 얼마나 다행인지… 그것만 해도 감사할 일이었다. 워터 프런트를 걸으면서 기운을 차려본다. 각종 상가들이 즐비하고 예쁜 물건들이 넘쳐났다. 조카들에게 사 줄만한 옷이랑 선물들이 눈에 보인다. 자꾸 속상한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느낌에 눈을 질끈 감고 방향을 틀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여유돈으로 필요하면서도 살 수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바로 PICK&PACK슈퍼마켓으로 향했다. 상심한 엄마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우리의 처진 기분을 업 시키기 위해서 맛있는 저녁식사 거리를 사러 갔다.
맛있는 저녁 꺼리라 해도 준비할 수 있는 수준은 샌드위치 정도였다.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좀 업 되었다. 저번에 한번 걸어갔다가 된통 당한 적이 있어서 오늘은 택시를 탔다. 오로지 집으로 일찍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러나 이거 마저도 쉽지 않았다. 새로 생긴 게스트 하우스라 택시기사라 위치를 알지 못했다. 행인에게 두 번이나 물어보고 나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아샨티!!! 지금의 우리를 안전하고 편안하게 해주는 곳은 이 곳 외에는 없었다.
저녁 식사를 만들었다. 오늘은 과일을 풍성하게 준비했다!!! 근사 하게까지는 아니지만 풍족하고 넉넉한 기분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엄마도 나도 둘 다 훌훌 털어버리려 노력했다. 요리를 만들면서 조금씩 기분이 나아졌다. 오래간만에 집밥처럼 야채도 풍성히 씻고, 소시지랑 계란도 요리했다.
어쨌든 무사히 하루를 마친 거다. 뭐 마음이 무사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치지 않은 게 어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 쫒아간다고 달려들었다가 칼이라도 맞으면 어쩔 뻔한 일인가? 그리고 그 통장에 더 많은 돈이 안 들어 있는 게 어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10 정도만 잃어버린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마음이 계속 날뛰는 것을 진정시키기가 어려웠다.
저녁을 먹고 배부른 우리는 한 침대에 누웠다. 이르게 숙소에 돌아온 탓에 도미토리 식구들은 없었다. 우리는 한 침대에 누웠다. 엄마가 자장가를 불러주셨다. 거의 30년 만에 다시 듣는 자장가다. 서로에게 위로가 필요했다. 서로에게 얼마나 필요한 존재인가를 너무나 깊이 있게 그리고 마음으로 느꼈다. 존재만으로 감사하다는 것. 바로 이런 때 하는 말인가 보다.
처음 케이프타운에 왔을 때 마음이 찌그락거렸다. 할 일은 많고 뭔가 하나하나 엄마에게 설명하는 것도 힘들고, 엄마랑 왔으니 당연히 내가 하는 게 맞는데도 불구하고 일이 버겁기도 하고 엄마의 기대치를 충족시키고 싶은 마음에 좀 더 여행 계획도 신경이 쓰였고 더 잘하고 싶고 그런 마음, 그런데 이런 마음이 지속되다 보니 짜증도 쌓이고 내 마음속에 부담감도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나의 마음을 이렇게 후려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에게 존재 자체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 엄마에게 그런 짜증과 부담을 가지고 있냐고!!! 정신 차리라고!!! 너 역시도 여행의 부담을 내려놓고, 더 많은 것을 하기보다 그 순간에 집중하는 내가 되라고, 엄마라는 존재만으로 얼마나 네가 심리적 안정감과 존재의 중요성을 잊고 있는 나에게 감사란 이런 것이란다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만약 오늘 일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여행 중에 이렇게까지 서로를 얼싸안으며 울고불고 자기 잘못이라며 서로를 배려하고 그 마음을 충분히 표현할 일이 있었을까? 서로의 존재를 이렇게까지 인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냥 감사했다. 당신이 내 곁에 있어줘서 감사하고 내 엄마라서 감사하고, 이렇게 함께 울 수 있고 웃을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 이미 우리는 충분했던 것이다.
그렇게 나는 엄마의 허밍 자장가를 들으며 엄마품에서 잠이 들었다.
"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뿐이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