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악몽 같은 케이프타운을 벗어나 사막을 볼 수 있는 나미비아로 출발한다. 인터케이프 티켓을 구입해 놓은 상태다. 비자도 받기 전에 미리 예약해 놓은 일정이라 순조로운 아침이었다. 인터케이프 버스 앞쪽에는 사람들이 어마했다. 자주 출발하지 않기 때문인지 꽉꽉 눌러 담은 콩시루 같았다. 그래도 막상 차를 타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아늑하고 편안했다.
24시간의 버스여행은 그레이 하운드로 떠났던 미국 여행 이후로 처음인 듯싶다. 버스 여행이라 엄마가 힘들어하실까 걱정을 했는데 엄마도 생각보다 훨씬 편안하고 폭삭하다며 좋아하신다. 가도 가도 끊임없는 돌산이 펼쳐져 있었다. 오춘을 지날 때의 그 아기자기한 풀들과는 다른 강한 생명력을 과시하며 자라나는 풀들이 눈 앞을 스쳐 지나갔다.
버스 창 밖으로 테이블 마운틴의 풍경이 이어졌다. 평평한 테이블 모양의 산이 신기하기도 했다. 엄마는 꼭 산꼭대기를 누가 다 잘라간 것 같다면서, 산봉우리들을 잘라서 사막을 만들어 놓은 것 아니냐 하신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진짜 그 꼭대기들을 곱게 빻아서 사막을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막의 뿌려진 금 모래가루들을 보면 또 테이블 마운틴의 없어진 꼭대기가 생각나겠지?
길고 긴 버스 여행은 엄마와 끊임없는 수다로 이어졌다. 가족들 이야기며 아빠 이야기를 하다가 이모가 이사 간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이모 이사 갈 때 냉장고라도 해줄 생각이라면서 공항에서 나에게 맡긴 돈으로 이사 선물을 준비할 예정이라 하셨다.
나는 말문이 막혀버렸다. 우리가 케이프타운에서 싹쓸이당했던 통장에 이모가 여행 다녀오라며 준 돈도 다 들어있었다. 현금을 들고 아프리카에 오는 게 부담스러워서 출발 전 공항에서 ATM기에 다 몰빵 해서 넣어버렸다.
사실 엄마는 그 돈이 거기 들어있는 줄은 상상도 못 하신 모양이다. 그냥 우리 여행 자금으로 넣은 돈이라고만 생각했지 나중에 이모들이 십시일반 모아준 돈은 다른 통장에 들어있다고 생각하신 거다. 이상하게 은행에 넣기가 싫어서 싸고 싸고 또 싸서 종이봉투에 넣었는데 그냥 들고 올 걸 그랬다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셨다. 그날의 엄마 일기가 엄마의 마음을 온전히 대변하고 있었다.
애들이 안 쓰고 안 입고 아껴서 준 돈을 그렇게 날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악몽의 시간을 되돌리지 말아야 하며 위로의 시간을 갖으려다 더한 슬픔이 왔다. 은행에 넣었던 돈들이 그 통장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에 충격이 온다. 그날보다 더한 아픔이 온몸을 쪼그라들게 했다. 가만히 있어도 눈물이 줄줄 흐른다. 소정이가 보지 못하게 돌리고 울었지만 들키고 말았다. 공항에서 이상하게 내키지 않던 마음이 떠올랐다. 차 타는 내내 나는 내 몸이 말린 건포도가 된 것 같았다. 어떻게 이 가라앉는 비참한 기분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적금이 만기 되면 선물 준 이들에게 갚아 줘야겠다.
나도 가슴이 미어졌다. 그저 우리는 서로 창밖만 보면서 눈물을 참기 위해 눈을 뻐끔거렸다. 훌훌 털어버리기엔 금액도 컸지만 상실감과 자책감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다. 서로 한참을 울다가 둘 다 진정을 되찾았다.
이래도 저래도 여행은 계속된다. 한참을 달린다. 영화 같은 풍경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그 와중에 잠깐잠깐 휴게소에 들러 몸을 풀었다. 어느새 저녁이 가까워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차로 전국일주를 다 하고 돌아올 시간 동안 차를 타고 달렸다. 24시간이면 서울에서 전주까지 거리를 8번 이동하는 것과 맞먹는다. 배경 때문인지 이제는 좀 익숙해진다. 어느새 국경지대에 이르렀다. 밤바람이 따스했다. 사막이 바람결에 느껴졌다. 저녁에 추울까 봐 옷을 두 겹씩 겹쳐 입은 우리는 더욱 후끈한 느낌이 들었다. 이제 정말 사막이 가까워졌구나. 아주 미세한 공기의 변화지만 여행은 우리에게 이런 감각까지도 허락한 것 같다.
나미비아의 국경에 다다랐다. 줄줄이 줄을 서서 이미그레이션에 입장했다. 여권 검사를 하고 도장을 찍어주는 데 한 시간이 넘게 결린다. 물론 인원이 꽤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리안 타임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너무나 길고 험한 기다림이었다. 더구나 출입국 카드는 또 다른 오피스에서 받아야 한다고 한다.
무슨 일을 이렇게 두 번씩 번거롭게 하는지 모르겠다. 도장을 찍은 여권을 들고 폴리스 라인으로 향했다. 다행히 출입국 카드는 내고 나서 차량에서 기다릴 수 있었다. 차로 돌아오니 짐칸이 다 열려서 짐 검사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절대적으로 수동적인 인간의 힘으로만 짐 검사를 했다. 어떤 기계도 없이 대단하다. 덕분에 우리 짐은 짐 검사를 피해 갔다.
새벽에 지나는 국경의 풍경이 꼭 피난민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황홀했다. 무언가 낯선 환경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은 때로 이렇게 몽환적인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하늘 가득 별이 총총 박혀 있다. 새벽에 잠도 못 자고 뭐 하는 건가 싶다가 이 순간이 낭만적이라 느꼈다. 쏟아지는 별들을 바라보며 줄을 서서 아직 가보지 못한 나라로 들어가기 위한 순서를 기다린다는 것이 기대가 되었다.
약 15분가량 버스로 달렸다. 이번엔 출입국 오피스였다. 출입국 카드만 내미면 되는 것인데 이것 도 한 시간이다. 오랜 시간 차를 타서 지루했었는데 새벽이지만 이런 경험을 즐기기로 했다. 한 시간을 넘어서 출입국 카드를 받고 드디어 나미비아로 입성했다. 컴퓨터 화면의 배경이 바뀐 느낌이다. 우리의 목적지인 나미비아의 빈드 훅으로 향했다.
침낭을 이불 삼아 엄마와 함께 덮고 손을 꼭 잡았다. 엄마와 말하지 않아도 느끼는 이 교감. 얼마나 잊고 살았던 일이지? 엄마와 대화하지 않아도 그저 엄마의 냄새와 엄마의 온기를 느끼는 것 만으로 사랑이 전해지는 기분이다. 적막하고 어두운 창밖으로 우리의 다음 여행지를 상상해본다. 사막 한가운데 서있는 우리를 그려본다. 엄마의 손은 따뜻하고 보드라웠다.
딸이기에 누릴 수 있는 시간이고 추억이었다. 큰 아이가 8살이 되면서 잠자리를 분리했는데 여전히 아이들은 엄마랑 자고 싶다고 한다. 엄마와 함께 자장가를 부르고 같은 이불을 덮고 감사일기를 나누는 시간이 아이들에게 엄마를 기억하는 추억이 된다. 그렇게 엄마와 나, 그리고 엄마가 된 나와 아이들이 오버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