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아파트 16층 거실에 노린재 가족이 찾아왔다
딸애는 종종걸음으로 방에 숨었고
아내는 살충제와 함께 달려왔다
세 마리였다, 살충제를 뿌리려다
이 가족의 살아온 모습을 잠시 생각해 보았다
식물의 즙을 빨아먹으며 열었던 가족회의를, 불빛을 보고 층마다 창문을 두드린 팔을, 방충망에 매달린 애원의 눈빛과 다리의 근력을
나는 샷시 틈새로 들어와 거친 숨을 내쉬는 노린재가 되어 보았다
우리 가족도 불빛을 찾아 수직벽을 기어오르고 있는데
좁은 틈을 지나 겨우 여기까지 왔는데
살충제를 발사하면 나와 아내는 이들의 끝을 알지만
이 가족은 서로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모른다
아내에게 살충제 대신 플라스틱 통을 달라고 했다
그 통에 노린재 가족을 휴지로 살살 쓸어담았다
지친 팔다리와 꿈이 다치지 않도록 통을 들고 엘리베이터 1층을 눌렀다
돌아가서 식물의 즙을 빨아먹으며 가족회의를 다시 열어보라고
-『천지일보』(2020)
- 출처 : 천지일보 (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697705 )
<「리셋」詩作 노트 >
어느 날 늦여름 거실에 노린재가 들어온 것을 보고, 「리셋」을 쓰게 되었다.
시의 내용처럼 현재 나는 아파트 16층에 살고 있고, 우리 가족도 3명이다. 매년 여름만 되면 16층이 고층인데도 불구하고 벌레들이 집으로 자주 기어들어 온다. 무엇을 위해 무엇을 얻고자, 그렇게 뜨거운 아파트 벽을 기어 올라오는지. 애써 방충망과 샷시 틈을 뚫고 들어오는지.
불빛을 찾아 수직벽을 열심히 기어오르는 노린재는 우리 삶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