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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하 Jan 23. 2023

< 詩作 이야기 - ⑨ 에그조프쉬시즘 / 권영하 >


 


에그조프쉬시즘* / 권영하


  금속지퍼처럼 골목길에 원룸이 늘어져 있다 

  그중 한 원룸에서  

  엽기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지병을 앓던 주인이 숨지자 애완견이 눈알을 파먹어 버렸다  

   

  충격이었다, 둘은 지구와 달처럼 공존했는데   

   

  카메라 렌즈처럼 닫힌 눈을 보고 개는 얼마나 애가 탔을까

  쾅쾅쾅 깨어나라고 얼굴을 마구 두드렸을 것이다 

  그러다가 눈알이 빠져버린 것은 아닐까 

  다시 볼 수 없는 주인의 눈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싶어 먹었던 것은 아닐까   

  

  신고자는 냄새였다 

  경찰은 사이렌 소리와 함께 달려왔고 

  임종을 지킨 유일한 가족을 철망에 증거로 가두었다 

  애절한 눈빛도 

  말라비틀어진 몸도 면죄 대상이 아니었다


  드문드문 방바닥에는 피 묻은 개발자국이 줄임표로 나 있었다 

  그건 고인이 걸어 다닌 흔적과 같았다 

  벽의 달력은 한 달 전에 멈춰있었고 

  밥솥 안에는 뒤틀린 신음과 한숨으로 뭉쳐진 쉰밥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장례는 추모가 아니라 빨리 지우는 거였다 

  병원비와 빚 때문인지 가족도 연락을 받지 않았다 다이어리에 붙어있는 전화번호는 전부 다 유령이었다 

  방 안에는 시취와 구더기가 우글거렸고 

  집주인은 세입자를 넣기 위해 바로 달려왔다 이어 방독면과 방진복으로 무장한 사람들이 나타났고 남아있던 고인의 눈물과 웃음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쓰레기봉투에 넣었다 

  그렇게 봉투 몇 개로 여행은 끝났다 같은 길을 걸었던 애완견도 

    

  뼛가루로 주인과 함께 소나무 밑에 묻혔다 

         

   * 에그조프쉬시즘 : 개가 인간에게 주는 위안과 긍정의 비물질적 서비스



  - 시 전문 계간지『사이펀』(2022),『시와사람』(2022)

 ☞ 출처 : https://blog.naver.com/almom7/222975188648



   <에그조프쉬시즘詩作 노트 

 에그조프쉬시즘은 개가 인간에게 주는 위안과 긍정의 비물질적 서비스를 말한다. 이 작품은 2021년 신춘문예 최종 본선에 올랐던 작품으로 원룸에서 일어나는 고독사와 애완견의 관계를 이야기하고 있다. 

  1인 가구가 40%를 넘어가는 요즘 노인도 청년도 혼자 살아가고 있다. 아니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반려견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한 조사 결과에 의하면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구가 26%나 되고, 반려 인구도 1,400만 정도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펫팸’이란 제목이 더 잘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펫팸’은 애완동물인 펫(pet)과 가족인 패밀리(family)를 줄여 쓰는 말로 ‘반려동물을 또 하나의 가족처럼 여긴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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