퀸즈보로 다리에서 바라보는 뉴욕은 늘 처음처럼 바라보는 도시 같다. 세상의 모든 신비와 아름다움을 다 열어 보이겠다는 처음의 그 열렬한 약속의 몸짓을 아직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문예출판사, 번역 송무)
뉴욕이라는 이름이 주는 흥분과 설렘이 있다.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고 한동안, 특히 운전할 때면, 그저 이 도시와 닿았다는 사실에 감탄하곤 했다. “와 내가 어쩌다 뉴욕에 와서 살고 있을까?” 내가 정착한 곳은 맨해튼 한가운데 마천루 사이로 바람이 흐르는 도시 한복판은 아니다. 하지만 뉴욕의 이질적이지만 고유한 특징을 느끼기엔 충분히 가까운 거리에 잠시 삶을 안착하게 되었다. 그렇게 1년 반을 뉴욕에 적응했을 때, 삶은 방향을 틀어 나를 서울로 데려갔다.
유학 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서울에 여러 번 방문했었지만) 본격적인 삶의 배경을 서울로 옮긴 것은 8년 만의 일이었다. 가족들을 뉴욕에 남겨두고, 혼자만 서울로 거처를 옮기고 나니 내 삶은 이제 서울과 지구 반대편 뉴욕 두 곳으로 흩어졌다. 오랫동안 가지고 있지 않았던 +82 국가번호를 가진 휴대전화 번호를 개통하고, 교통카드로 쓸 수 있는 신용카드를 발급받으며 서울에서의 삶이 시작되었음을 실감했다. 분명 서울은 내가 30년간 성장한 도시인데, 8년의 세월은 익숙함보다 낯섦을 느끼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아마 서울에 대한 나의 기억도 어딘가는 왜곡되고 미화되고 사라진 게 아니었을까. 다시 만난 서울에서 나는 타임머신을 타고 미래로 온 과거의 유령처럼 번뜩 떠지는 놀라움의 눈을 아무렇지 않은 척 깜빡여야 했다.
하지만 서울에서 꼬박 18개월을 보내며 나는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울의 삶은 뉴욕의 삶과 너무도 비슷하다. 출근 시간 지하철에서 당근이 흙에서 뽑히듯 나와 빠른 걸음으로 우르르 계단을 오르면 지하철을 타려는 많은 사람과 뒤엉킨다. 모두 자신의 목적지만을 향해 목을 약간 내민 채 마주 오는 사람들을 잽싸게 피하며 바쁘게 움직인다. 누군가는 카페에서 텀블러에 커피를 담고, 누군가는 버스정류장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 서울을 배경으로 생각해도 맨하탄을 배경으로 생각해도 어색하지가 않다.
중고차라도 살지 잠시 고민했었다. 출퇴근도 하고, 주말에는 어디든 편하게 갈 수 있으니 차만큼 편한 것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언제나 차에 대한 희망은 두려움을 이기지 못했다. 주차는 어디에 하지. 차들이 공격적으로 따라붙는데 차선을 바꿀 수 있을까. 나 때문에 경적을 계속 울리면 어떡하지. 차 유지비는 감당할 수 있을까. 내가 서부 시골에서 쓰던 운전면허를 뉴욕주 운전면허로 바꾸고도 나는 한동안 운전을 하지 않았다. 조수석에서도 느껴지는 다른 차들의 공격적인 운전과 오랫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수십, 수백 대의 차들이 급류를 타고 흐르는 보트처럼 떠다니는 모습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양보는 요원하고 모두 빨리 가고 싶어 한다. 어찌어찌 계기가 되어 뉴욕에서 때때로 운전대를 잡았지만 맨하탄에서는 서울과 같은 이유로 운전하지 않았다. 차가 없이도 언제든 원하는 곳을 갈 수 있기 때문에 운전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못했다. 서울이 그러하듯.
서부의 시골에서 뉴욕으로 이사 올 때, 미국 동부의 큰 도시 경험이 있는 모든 사람이 나에게 했던 경고가 있다. 그곳 사람들은 여기 같지 않아. 불친절해. 말이 빨라. 하지만 그들이 말해주지 않은 편리한 점도 있었다. 뉴욕에는 사람이 많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원하는 것을 빠르고 편하게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모두가 바쁘고 필연적으로 건조하다. 그리고 이 건조함은 때때로 불친절함으로 해석된다. 뉴욕에서는 필요한 것들을 온라인이건, 오프라인이건 내 예상보다 더 빠르게 구할 수 있었다. 이 정도의 빠름에도 익숙해져야 했던 나는 서울에서 가끔은 내릴 수 없는 무빙 벨트 위에 놓인 쥐가 된 기분을 느꼈다. 빠름은 어느 곳에서나 미덕이 되어버렸다.
돌아갈 비행기 티켓이 없는 방문은 과거에 갇힐 우정을 현재로 재입장시켜 준 티켓이 아니었을까. 오랫동안 소식만 가끔 전하던 지인들을 마주하고 정성껏 차려진 음식을 먹고 카페인이나 알코올을 곁들여 인생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갔다. 어디서 만날까. 성수동, 망원동, 논현동, 청담동? 동네를 정했다면 네이버 지도 어플을 켜고 갈 만한 식당, 카페에 별표를 눌렀다. 다섯 여섯개쯤 누른 별표를 리스트로 공유하고 말했다. 마음에 드는 곳 찾아봐! 맨하탄에서도 같은 식당을 두 번 간 적이 없다 (물론, 속을 달래기 위한 뚝배기 전문 한식당은 제외다). 누구를 만나서 내 시간을 나누든 간에 언제나 서로 이동하기 편한 동네에서 새로운 곳을 찾는다. 언제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 식당, 카페, 술집을 찾았고, 그곳에는 친구, 연인, 가족들이 가득했다.
나의 영상 시청 기록에는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한 사람의 흔적이 있다. 뉴욕에서는 서울 브이로그를, 서울에서는 뉴욕 브이로그를 자주 시청한다. 뉴욕 사람은 서울에서 놀라움을 찾고, 서울 사람은 뉴욕에서 특별함을 갈구한다. 모두 다른 이야기를 찾고 있다. 하지만 도시는 다르지 않다. 그 속에 맺힌 우리들의 삶도 그렇다. 우리는 조선 사람들이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을 때 느꼈을 만큼의 새로움은 이제 지구 어느 도시를 가도 느끼기 힘들 것이다. 어디를 가도 적응할 부분이 적다는 뜻이기도 하다. 렌즈를 멀리 우주까지 빼내어 바라보면 우리가 모두 지구에 살아가는 생명체이듯이, 가끔은 서로의 다름을 그만 찾아봐도 되지 않을까. 서울에서 보면 뉴욕에서는 자유로움을 찾을 것 같고 뉴욕에서 생각하면 서울에서는 모든 게 해결될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삶의 모양이 다르지 않음을 기억한다. “다른 일을 선택해 환경이 변한다 해도, 나는 나이기에 지금 겪고 있는 마음의 혼란을 벗어날 수 없다.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오늘을 아름답게 만들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