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정의
그 사람의 행복이 파도처럼 넘치길 바라고, 어떤 불행이 와도 파도 같은 방패가 막아주길 바라는 것
- 네이버 웹툰 <자매전쟁> 30화
어떤 날들 속에서 사랑은 가지고 싶은 열망이었다.
멀리서도 알아봄직한 아름다움에 들떠 눈이 멀었고, 가지지 못해 애가 탔다. 찬란하지만 연약한 마음이었다. 책임은 필요하지 않았다. 열망의 화로에 불을 지피는 것은 오로지 청춘이었다. 방학 숙제로 적어냈던 장래희망이 그랬고, 첫눈에 반했던 학창 시절 풋사랑이 그러했다.
또 어떤 날, 사랑은 붙잡아 두고 싶은 욕심이었다.
결코 잃고 싶지 않았기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그의 모든 순간 속에 머무르고 싶었다. 멈추지 않는 욕심이 그 마음마저 태워버릴 때까지 매달리고 또 매달려야만 했다. 열꽃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초라하고 애달픈 상처만이 남았다. 그렇게 긴 상흔을 남긴 두 번의 첫사랑을 앓았다.
여러 날동안 사랑은, 존재를 갈구하는 몸짓이었다.
상대에게 나의 모든 것을 이해받고 싶었다. 그가 없던 시간 속의 내 모습, 아물지 않은 상처, 감동하는 순간, 나를 스친 꿈들과 꿈꾸고 있는 시간들을 전하려 애썼다. 그리고 나 또한 그의 심연에 닿고 싶었다. 그로부터 새어 나오는 편린들을 그러모아 존재로 향하는 지름길을 찾으려 애썼다. 하지만 존재의 편린은 그러쥔 손 안에서 쉽게 부서졌다.
그러므로 사랑이 지나간 자리는 늘 폐허였다. 정확히는 사랑이라 믿었던 바람들. 그 처연한 바람은 모든 걸 전복시키고 나서야 멈추는 폭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었다. 도저히 사랑하게 될 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유형의 사람이었다. 모든 조건이 지금껏 해왔던 사랑에 적합하지 않았다. 애초부터 잘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는 사람. 그런 사람을 사랑하는 건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믿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내 시야에 미치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이 한순간 파도처럼 밀려왔다. 마음을 들이지 않아도, 아주 멀리서도 사랑스러움을 알아볼 수 있었다. 준비되지 않았던 만큼 함부로 애틋해지는 사랑이었다.
가지고 싶은 열망과 서로의 존재에 더 가까이 닿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다. 그러나 가지지 못하는 아쉬움도, 보고 싶은 욕심도, 가닿지 못한 채 돌아오는 마음도 사랑을 이길 수는 없었다.
그 사람이 평안하기를, 잠든 밤은 고요하기를, 언젠가 울더라도 언제나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 그런 걱정과 바람이 나의 고통을 아득히 뛰어넘어 견디지 못했던 고통마저 감당하게 만드는 마음이었다. 늘 이기적이었던 내가 한 발짝 물러서고 있었다. 어쩌면 이기적이기에 당신이 진정으로 행복해주기를 원하는 것. 분명 사랑이었다.
오랜 시간 사랑을 잘 안다고 여겼다. 아플 만큼 아파하며 배웠다고 자신했던 것이다. 폭풍이 휩쓸고 간 바다 한가운데 섬처럼 홀로 앉아, 다시는 쉽게 사랑하지 않아야지 다짐했다. 제대로 사랑할 줄 몰랐던 지난날의 오만이었다.
사랑은 선택하고 다짐하는 것이 아닌 밀려오고 닥쳐오는 것. 그저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이었다. 사랑한다는 건 발버둥 치고 허우적대는 치열함이 아니라, 기꺼이 몸을 맡긴 채 흘러가는 긴긴 여정이다.
그렇게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 당신으로 말미암아 나는 내가 사랑이라 이름 붙인 존재들에 가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