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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h Mar 07. 2021

비행기와 범퍼침대와 명함

나는 뭐지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가방에 책을 챙겨왔지만 모니터 속 영화나 기내 비치된 잡지를 뒤적인다. 내가 준비한 것이 아닌데 우연히 그 시기에 거기 있어서 내게 올 이야기를 맞이한다. 비욘드 스페셜 코너 다큐멘터리를 특히 좋아하는데, 이번에는 르코르뷔지에였다. 이름과 이미지 몇 개로 익숙하지만 실은 전혀 모르는 것이나 다름없는 그에 관해 보고 듣는다. 기내식을 나눠주는 승무원들의 머리가 보인다. 생선요리만 남았다고 하여 알겠다고 식사를 받는다. 은박지와 비닐 포장을 벗긴 후 으깬 감자와 삶은 콩을 포크로 찍어 먹는다.


이야기는 그가 스위스의 작은 마을에 사는 잔느레라는 이름의 아이였을 때로부터 시작된다. 시계를 만드는 아버지를 보며 자라 별다른 의심 없이 시계공예학교에 진학한 청년. 시계 다루는 일에 재능을 보였지만 그는 건축에 관심을 두게 된다. 여행하고 수련을 받고 책을 읽으며 건축가의 꿈을 키운다. 자격증이나 학위는 없었지만, 그는 스스로 사무실을 차린 후 명함에 ‘주택 건축가’라고 썼다. 게다가 그는 나중에 건축가였던 외할아버지의 이름을 가져와 '르 코르뷔지에'로 자신의 이름도 새로 짓는다.


다큐멘터리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그는 이제 건축가로서 성공하고 실패하며 세계를 누빈다. 눈에 익은 건물, 흥미로운 에피소드, 반가운 얼굴과 자세들. 하지만 나는 그가 자신의 명함을 만든 부분으로 자꾸만 되돌아갔다. 너무 짧게 지나갈 뿐인 장면이었지만, 자신을 원하는 대로 호명한 그 순간으로 가서 자꾸 멈춘다. 애초에 맛이 중요하지 않은 식사라지만 평소보다 더 빨리 접시를 정리했다. 작은 화면에 눈을 붙이고 헤드셋을 벗지 못했다. 얇은 플라스틱 잔에 받아든 커피도 금세 식어버렸고 비행기는 마르세유에 착륙했다.


신진 예술가들을 위한 한 달간의 워크숍이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시작될 참이었다. 나중에 들은 바에 따르면 나는 탈락의 위기에서 마지막에 얻어걸린 사람이었다. 당시 기획 경력만 있던 터라 예술가를 대상으로 하는 지원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서울문화재단 건물 지하 공간에는 세 명의 면접관이 앉아 나를 골똘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마음속 깊이 나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는 열망을 꼼꼼하게 숨긴 채, 예술가를 잘 이해하는 기획자가 되어야 충분히 멋진 프로젝트가 가능하고 그래서 위해 거기 가야 한다는 논리를 펼쳤다. 전작도 없이 갑자기 예술가가 되겠다고 할 수 없어서였지만, 정말 이도 저도 아닌 아무 말 잔치였다. 어쨌든 운명은 나를 마르세유로 보냈다.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주는 개인 작업 프레젠테이션으로 진행되었다. 칭찬을 들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그 10분짜리 발표를 발전시켜 30분짜리 공연을 만들었다. 지금 다시 보면 내가 쓴 대사 다 너무 유치하다. 공연료 천만 원을 받았다. 나도 이제 예술가야? 페스티벌에서 나눠준 목걸이에 그렇게 써 있었다. 그게 벌써 5년 전이다. 그 후 매년 하나 이상의 신작을 만들고 각종 지원금을 받으며 예술가 행세를 하고 있다. 이것은 내 직업일까. 아직도 명함은 없다.


르코르뷔지에의 명함을 다시 떠올린 건 딸 아이의 유치원 기초정보 서류 때문이었다. 시스템이 정해준 직업이 안전하게 느껴져 언제나 대학원생이라고 쓰던 자리였다. 하지만 언제까지 대학원생이라고 쓸 수는 없잖아. 아이는 맞벌이 부모를 위한 방과 후 과정까지 어렵게 들어가게 되었는데, 몇 년째 휴학 중인 나는 아직 내 직업을 뭐라 써야 할지 모르겠는 것이다. 별 의미 없는 형식적인 서류 앞에서 고민한다. 나는 뭐지?


나는 기내 비디오 프로그램의 우연을 기다리는 사람이다.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주도하고 싶은 마음은 별로 없다. 이렇게 닿으면 이렇게 살고 저기에 이르면 저렇게 살고. 물론 내 뜻이, 내 의지가 있기야 하지만 그게 꺾이면, 그렇게 꺾인 곳에도 다른 길이 있으리라고 믿으며 씩씩하게 간다. 내가 누구인지 답을 찾으려고 시도는 하지만, 끝내는 남들이 부르는 대로 불렸다. 그게 나쁘지는 않았다. 다만 종종 길을 잃게 했다. 게다가 나는 그 5년 사이 참 부지런히 아이를 둘이나 얻었잖아. 이제는 그냥 길을 잃는 수준이 아니다. 잠시 한눈팔다 지옥으로 걸어 들어가기에, 이보다 더 좋은 조건은 없다.


둘째 아기의 범퍼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장바구니에 원플러스원 행사 중인 귀리 우유와 50% 할인 쿠폰이 있는 기저귀와 초콜릿 간식 몇 개를 담다가, 이메일로 도착한 간담회 일정을 점검하다가, 장보기를 잊어버린다. 기저귀가 다 떨어졌고 이제 제 값을 주고 사야 한다. 아이 낮잠 시간과 진행해야 할 온라인 세미나 발제 시간을 맞추기 위해 전날부터 아이의 컨디션을 조절한다. 아이들을 재우는 동안 휴대전화로 참고 문헌을 읽다가 자다가 결국 못 읽는다. 아이는 제때 낮잠을 자고 내 컨디션은 망했다. 평일엔 아이를 돌봄선생님에게 맡긴다. 시간당 9,890원. 애써 벌어온 돈은 다 그렇게 쓴다. 경력 단절은 없었지만, 뭐가 단단히 이어진 느낌도 아니다.


마르세유 레지던시 막바지쯤 워크숍을 이끌던 프랑스 작가 중 하나는 우리를 유니테 다비타시옹에 사는 친구의 집에 데려갔다. 나는 명함 일화에 홀려 르코르뷔지에의 대표작이 마르세유에 있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사람을 위해 헌신해야 할 기계로서 건축물을 바라본 그의 태도가 좀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들여다본 건물은 정말 치밀했다. 역시 대단하군, 그때 그렇게 생각하곤 말았다. 지금은 뭐랄까, 좀 더 궁금해진다. 그는 그런 멋진 일을 자신이 해낼 줄 알고 있었을까, 말하자면 자신을 건축가라고 부르기로 했을 때부터 타고 난 줄 알았던 걸까. 아니면 자신의 자리를 만든 후에 그 몫을 증명하려고 애썼을까, 그래서 겨우겨우 그렇게 된 것일까. 그도 두려웠을까. 이미 건축가가 되겠다고 정해놓은 자신의 길을 의심했을까. 뭐, 모두 다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겠지.


아직 직업란은 비어있다. 그리고 아직도 무엇이 그 자리에 알맞은 단어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계속 비워두지는 않을 것이다. 장바구니에 담은 것들을 결제하고 건조기의 빨래를 꺼내 정리하고 이틀 치 이유식을 만들어 200mL씩 나눠 담고 두 아이가 잠든 후 컴퓨터를 켠다. 어제는 전기장판과 이불 사이의 온기에 굴복해버렸지만 오늘은 뭐라도 써보기로 한다. 예전처럼 운명을 믿으며 흘러가는 대로 살다가 우연히 지옥에 갈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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