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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남과 출발은 동의어

by 거의 다온


2년간 살았던 집에서 이사를 나왔다. 떠나고 싶지 않았지만 떠나야 할 때가 왔고, 결국 갑작스레 떠밀리듯 그곳을 나서게 되었다.


내가 머물렀던 강서구의 오피스텔은 공항이 가까운 덕분에 서울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뷰를 가진 곳이다. 고층이기도 했지만 운 좋게도 바로 앞이 탁 트여 있고, 근처에 높은 건물도 없어서 거실 창 가득 하늘이 펼쳐졌다. 그곳에서 저녁마다 노을을 바라보며 어린 왕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밤낮으로 비행기가 지나다녔는데, 나는 그 소리가 정말 좋았다.


비행기 소리를 들으면 언제든, 어디로든 떠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따금씩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를 바라보며 ‘누가 타고 있을까, 어디로 떠나는 걸까, 어디에서 오는 걸까‘ 상상하곤 했다. 저마다의 이유로, 서로 다른 기억을 품고, 각자의 여정을 위해 같은 비행기에 몸을 싣고 날아가는 사람들의 긴장과 설렘, 혹은 피곤으로 물든 얼굴을 떠올려 본다. 그들이 도착할 장소에서 마주할 장면들을 헤아려 본다.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스쳐 지나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 앞에 놓인 여정을 생각한다.


이곳에서 머문 짧은 시절, 나는 이 공간이 가진 에너지와 공명하며 찬란한 시간을 통과해 왔다.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책상 앞에 앉아 공부를 하거나 일기를 쓰며 보았던 수많은 노을빛과 그 너머로 나아가던 비행기, 계절마다 위치를 달리하며 떠오르던 달을 나는 사랑했다. 그 풍경을 배경으로 대학원을 다녔고, 논문을 쓰고 졸업을 했다. 새로운 친구들을 얻었고, 자주 비행기를 탔으며,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시간을 거쳐 다시 운명처럼 사랑에 빠졌다. 벅차오르는 밤과 고통스러운 새벽을 반복해 오가며 사랑을 배웠고, 덮어두었던 과거와 치열하게 마주한 끝에 화해할 수 있었다. 매일 아침 나를 부드럽게 깨우는 햇살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느꼈고, 더 빛나는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이제 이 공간과 함께 한 시절과 작별하려 한다. 못내 아쉽고 슬프지만 두렵지는 않다. 더욱 찬란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음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한 시절을 건널 때마다 나는 점점 더 단단하고 빛나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으니까. 앞으로 다가올 날들을 기대하며 이 여정에 몸을 맡기려 한다.


떠남은 곧 출발이다. 삶은 언제나 어딘가로 향하는 여행이니까. 그리고 나는, 이제 막 도착한 다음 게이트 앞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지나온 장면들을 가슴에 품은 채 다음 장소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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