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게 그거

#1 올림픽이니까요

- 참가에 의의를 두고 최선을 다하라면서요

by kimloco

8일차, 새벽 다섯시 십구분. 한국에서 브라질 시간으로 산지 8일이 지났다. 아니, 정확히는 축구 예선 첫 경기가 있던 지난 금요일부터 9일째다. 그렇다. 나의 업은 스포츠pd다. 어느새 몸은 브라질리언에 익숙해져 아침이 되어도 쉬이 잠이 오지 않고 새벽에는 정신이 더 또랑또랑하기만 하다. 1994년 이후 가장 더운 여름이라는데, 어차피 아무것도 못할 낮이라면 차라리 자버리지 뭐. 그러나 너무 더워서 자는 것도 생각보다 쉽지 않다.

_ 사진은 거들 뿐. 편집하자.


올림픽 첫 날, 그러니까 축구 예선 중계를 했던 날.해가 중천에 떠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지하철 안에서 비행기표를 질렀다. 숙소도 예매했다. 돌아오는 가을에는 쉬어야지. 여름휴가는 없으니까. 이렇게 무언가에 거의 모든 시간을 투자하게 되는 생활스케쥴이 되면 머리로는 자꾸 다른 생각, 요상한 궁리만 하게 된다. 인터넷으로 휴양지의 정보를 수집하다 출근길에 서점에 들러 책도 사기로 한다. 어라, 호기심이 가는 영단어책이 하나. 지난 2월에도 영어 공부 다시 하겠다고 했다가 챔피언스리그와 프리미어리그 중계에 회화책 딱 한 번 펴보고 말았는데. 사람은 어리석고 실수를 반복하고 만다. 올림픽이 끝나면 영국 축구 중계를 해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남미와 또 다른 방향으로 시차가....

_ 아니야. 난 정말 자고싶어.


어렸을 땐, 금메달이 최우선이었다. 승부욕의 화신이라 그랬다. 뭘해도 1등을 해야 직성이 풀렸으니까. 그때도 지금도 방송은 내셔널리즘의 극을 달리지만, 그거랑 상관없이 그냥 지는 게 싫어서. 참가에 의의고 최선이고 뭐고 올림픽 정신이 어쩌고 저쩌고는 무슨. 그러나 나이를 먹고 성격이 점점 말캉말캉 해지면서(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올림픽 역시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름도 몰랐던 작은 나라에서 대표로 출전하는 한 두명의 저 선수는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다들 흥겹게 삼바춤을 추는 개회식에서 우리나라 선수들은 무얼 할까. 그때도 줄을 맞춰 서있는 건 아닐까. 즐기며 즐거울 순 없나.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아직도 금메달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까 그러다 걸리면, 메달 못따면 또 욕먹으려나. 뭐 그런 괜한 생각 말이다. 물론 확인할 바는 없다. 내가 그 나라의 선수가 아니며 내가 우리나라 선수만 화면에 담을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적어도 이러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게, 내가 생각하는 올림픽 중계에 가깝다. 시청률은 나오지 않겠지만.

_ 지젤 번천이 걷는데, 아직도 줄맞춰 있을 거니?


내게 올림픽은, 할아버지 할머니다. 누군가가 "당신의 올림픽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다면 말이다. 아무도 묻지 않을 테니까 조금 쑥쓰럽긴 해도, 어찌되었든 그저 바라만 보다가 이제는 살짝이라도 발을 담그게 되었으니까.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내가 기억하는 모든 하계 동계 올림픽의 개회식을, 대부분의 경기를 함께 하셨다. 어느 여름, 전병관 선수가 바벨을 들어올리며 거인이 되었던 순간을, 몬주익 언덕을 넘으며 헐떡이던 황영조 선수를 내게 알려주신 건 할아버지였고 할머니였다. 그 이후로도 쭉 함께, 나의 올림픽 러닝메이트는 바뀌지 않았었다.


사실, 불편할 때도 있었다. 나의 머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더 그랬다. "거봐 안 돼. 에이그. 우리나라는 안 될 거야"라는, 경기를 하기도 전에 걱정과 조바심 탓에 하는 말씀 때문에. 대학교를 들어갈 때 즈음, 직업을 구해 사회에 문을 두드리려는 그 즈음엔 속이 뒤틀려 거실에서 방으로 들어간 적도 있었다. 된다고 믿어주고 잘했다고 고생했다고 이야기 해주는 '어른'이 부족한 현실을 보여주는 거 같아서. 무턱대고 긍정적인 건 싫지만 해보지도 않고 부정적인 건 더 싫으니까. 조금이라도 희망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서 두드려봐야 하지 않나. 그게 올림픽 정신이라며. 참가에 의의를 두는 걸로 만족해야하는 게 아니라.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지는, 일단 뒤로 미루어보더라도.


그때는 그게 참 그랬는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말씀하시면서도 할머니는 채널 한 번 돌리지 않으시고 리모컨을 내 손을 꼭 잡고 계셨던 것 같다. 할머니랑, 올림픽이 보고싶다.


Simple Plan - I Don't Wanna Go to Bed
: 여름밤, 잠들 수 없는 당신에게 필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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