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하라. 사소한 것에.
성산대교를 넘었다. 저녁 여섯시 즈음에. 퇴근 행렬에 껴서 굳이 출근하겠다고. 브라질은 밤에 올림픽을 하겠다고 해서 이 고생을 시키나. 배려없는 녀석들. 강변북로를 타는 순간부터 차는 1차선을 달린다. 다리로 빠지는 출입구가 도로 왼쪽에 있기 때문이다. 가양대교 근처에 가자마자 어김없이 차가 멈추기 시작한다. 2차선은, 그나마 잘 나간다. 차를 차선 오른쪽 가까이로 움직인다. 차선을 변경하려고? 아니다. 들어오는 차를 쫓아내려고다. 공격적인 방어 운전. 앞차의 앞으로 들어오는 건, 내 뒤로 들어오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치자. 내 앞은, 내어줄 수가 없다. 양보운전? 1차선을 꿋꿋하게 지켜 성산대교를 올라가기까지 걸린 시간이 얼마인지 알면 그런 소리가 안 나올꺼다. 46분. 이것도 다리까지 1.5km 남았다는 표지판을 본 순간부터 잰 거다.
_ 성산대교 1.5km 남았을 때 5시 38분이었다. 정말이다.
바보라서 1차선을 달리고 있는 게 아니다. 차선에는 점선과 실선이 있다. 성산대교로 향하는 길 어느 지점부터는 끼어들기가 불가한 실선이 그어져 있다. 어느 즈음인지도 확실하게 안다. 2차선으로 달리다 충분히 들어갈 수 있다. 알고 있다. 지난주 금요일엔, 토일월 휴일에 퇴근시간까지 겹친 지난주 금요일엔 출근하는데 무려 1시간 40분이 걸렸다. 서울역에서 부산으로 가는 KTX를 탔다면 동대구 근처에 갈만한 시간이다. 총기 소지가 법적으로 허용만 되었다면 다 쏴버리고 싶다거나, 차가 탱크여서 다 밀어버리거나, 뭐 그런 마음도 들었지만. 그걸 알면서도 오늘 역시 1차선을 탄 거다. 끼어드는 차량이 모두 한 줄로 섰더라면 적어도 20분은 빨라지지 않을까 하면서.
그게, 싫었다. 꽁초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게. 담배를 뻑뻑 피우면서 욕을 잔뜩 하고선, 아무데나 버리는 게. 아까운 생명을 잃었네 국가적 창피네 죽일 놈들이네 어쩌네 저쩌네 하면서, 그냥 버리는 게. 2014년 봄. 너무도 화가나도 속이 상하는데 뭐라 쉬이 말조차 하기 싫은 상황에서 그걸 보는 게 너무 싫었다. 그 사소함이 무너지고 모아져서 결국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무 말하지 않았지만, 후회했다. 며칠을 곱씹었다. 담배 꽁초 하나를. 다음번에 똑같은 상황이 온다면 말해야겠다고. 그렇지 않으면 결국 나도 다를 게 없으니까.
_ 가장 읽기 어려웠던, 힘들었던.
"우리나라 사람들은 늘 화가 나있어. 그래서 어딘가에다 화풀이를 하려고 하지." 어느 술자리에선가 들었던 말. 누가 했는지 왜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지만 마음에 쏙 들었던 이야기. 그러나 문제는, 자신에게는 관대하다는 거다. 큰 일이든 사소한 일이든 상관치 않고. 며칠 전 엄마는 차에서 말했다. "30대는, 자기가 다 옳은 줄 알아. 정의롭다고 생각하지.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고. 너희 아빠도 그랬어." 내 나이 즈음에 아버지가 할아버지와 늘 투닥거렸다는 이야기를 하다가였다. 그 때의 아빠도 아빠의 아버지와 투닥거렸구나 라는 안도감...은 아니고 새삼, 반가웠다. 나의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라서. 그래서 어머니께 대답했다. "응, 나는 졸라 정의로우려구요."
그래서 성산대교를 기다린다. 화를 내고 삭히면서. 적어도 내 스스로에 부끄럽지 않으려고. 아마 앞으로도 사소하고 조그마한 것에 분노하는 걸 멈추지 않을 거다. 어느 누군가를 욕할 수도 있고 어느 누군가는 옆에서 피곤해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건, 그렇게라도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싶은 거다. 뭐. 그렇게 하다보면 뭐라도 바뀌지 않을까.
더콰이엇, 슈퍼비, 면도, 플로우식 - 공중도덕
: 지난 금요일엔 인도로 넘어와서 앞차들을 앞지르는 차도 봤다. 내 옆을 지나갔는데 비켜준 게 너무 한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