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그게 그거

#3 아니, PD가 뭐 대수라고

호랑이가 되어야지. 등에 올라타지만 말고.

by kimloco

1월의 카타르는, 선선했다. 겨울 칼바람의 서울과 달리 시원한 모래바람이 불었다. 덕분에 밖에 있으면 뭔가 자꾸 손에 묻은 느낌이 들었다. 눈에도 자꾸 뭐가 들어가서 종종 울었다. 경기장에서 거리에서 눈물을 훔쳤다. 생일을 도하에서 맞이하게 되어서 그런 건 아니었다. 우리나라 올림픽 축구대표팀 성적이 좋아서 한 달에 두 번씩이나 카타르 비행기를 타게 되어서 그런 건 절대 아니었다. 아. 그 중에 한 번은 비행기가 고장나 결항으로 공항에 12시간 넘게 있기도 했지...

_ 고생 끝에 도하 온다. 라는 옛말도 있지 않나? 도하의 야경.

매력적인 팀이었다. 역대 최약체라 평가받았던 2016 리우올림픽 축구 대표팀은. 새로운 형태의 포워드와 재능 넘치는 공격 2선의 선수들이 펼쳐내는 다양한 공격 작업이 특히 그랬다. 팀으로서도, 좋았다. 신태용 감독은 조직의 리더로서 훌륭해 보였다. 그랬다. 다 좋았다. 정말 거의 다 좋았다. 대회 결승에서 거짓말처럼 일본에 역전패하기 전까지는. 다섯 번이나 갔던 알까이마의 양갈비도 맛있었고. 세 번의 중계 방송도 크게 문제 없었고. 박지성도 만났고.

_거의 다 좋았다. 정말 거의 다 좋았다. 휴우.....

박지성이라니. 박지성이라니! AFC 초청으로 카타르에 지성팍님이 온다는, 성재선배와 박문성 위원님의 언질에 뭔가 막 수줍고 막 떨리고 막 언젠가 만날 줄 알았지만 이렇게 막 카타르에서 막 보게 될 줄이야! 소개팅 하기 전에도 이런 마음은 아니었는데. 결승전이 열리기 이틀 전, 선배와 위원님은 그를 만나러 가기로 했다. 우리와 약속이 정해진 건 아니었다. 해설을 하러 오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지만. 크. 뭔가 정말 볼 수도 있을 것 같아. 설레는 맘을 서울에 전했다. 지성팍이 도하에 왔어!! 자랑반 기대반의 이야기. 그 때였다. 진담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던 대답 하나. 야. PD도 당연히 같이 만나러 가야되는 거 아냐?

_ 지성이 형님 온다는데 여긴 어딘가 난 누군가...


아니, PD가 뭐 대수라고. 보고싶었다. 맞다. 솔직히 선배랑 위원님이랑 같이 가서 만나고 싶었다. 인사도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었다. 근데 그게 PD라고 당연히 할 수 있는 일인가. 내가 가야할 곳은, 경기장이었다. 기술감독님과 함께 결승전이 열리는 곳에 가서 중계석을 셋팅하고 사전 체크를 해야했다. PD라서 '당연히' 해야할 일은 방송을 잘 만드는 거다. 그것밖에 없다. PD라고 존중을 받아야한다면, 방송을 잘 해서지 다른 건 없다. 다른 어떤 사회적 지위도 다 마찬가지 아닌가. 내가 무엇이 되어서가 아니라 나의 몫을 온전히 잘 해내서 말이다. 예를 들어 기자라서 국회위원이라서 선생님이라서가 아니라 기사를 잘 써서, 일을 잘 해서, 잘 가르쳐서 존중받아야 하는 거다. 그게 안 되니까 '김영란법' 같은 게 생긴 거고. 원래 대체로 제대로 된 '대접'을 못 받은 사람이 '접대' 받으려고 하는 거다.

_ 다음날 만난 지성이형. 박지성도 피해갈 수 없는 카타르 양갈비.

그날 저녁으론, 삼계탕을 먹었다. 믿을 순 없겠지만 카타르 도하에서 삼계탕을 먹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방송 잘 하라고 챙겨주신 저녁식사, 그 뜨끈한 국물이 시원했다. 축구팬이라는 사장님께선 성재선배와 박위원님께 사인을 부탁하셨다. 더불어 기술감독님과 나에게도. 나에게도?! 아닙니다 아닙니다. 거절했지만 계속된 요청에 어쩔 수 없이 한 장 쓰윽 해드렸다. 야. 엄청 잘하는데? 연습한 거 같은데? 성재선배가 놀렸고 우린 그저 웃었다. 그렇다. 카타르 도하 어느 게스트하우스엔 나의 싸인이 있다. 이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더 잘하는 PD가 되어서 더 잘 존중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호랑이가 되어야지. 등에 올라탈 생각 말고.


넬 - 습관적 아이러니
: 김영란법 피해서 2만 9천원에 모십니다. 음료수는 더치페이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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