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하고 싶었던, 할 수 없었던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응암동이죠. 잠결에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아버지의 검색이, 그리고. 머리 위에 핸드폰으로 우리집에서 가까운 24시간 동물병원을 찾았다. 여기있어요. 번호를 받아간 부모님은 전화를 걸었고, 나는 일어나 나갈 준비를 했다. 발을 동동 구르던 엄마의 품에 안겨있던 미르의 상태는 딱 봐도 좋지 않았다. 침을 질질 흘리고 배변활동을 자신의 의지로 조절할 수 없었다. 서둘러 병원에 갔고, 미르는 진통제를 맞았고, 정확한 원인은 아침에나 알 수 있을 거란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까지 괜찮았는데, 집에 돌아와 다시 잠들 때까지 아주 서럽게 울었다. 연애가 끝났을 때에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아주 아주 서럽게 꺽꺽거렸다.
_귀가 유난히도 컸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우리와 14년을 함께했다. 당연히 언젠가는 이별을 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추석 전날일 줄은 몰라서 그렇지. 아침에 만난 미르는 여전히 자고 있었다. 힘겨운 숨을 내쉬면서, 우리의 목소리와 손짓에 조금도 반응하지 못했다. 의사선생님은 뇌종양이라고 말했다.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고 수술을 해도 나이가 있어 지금처럼 지내긴 힘들 거고,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다고 했다. 진통제 역시 더 이상 넣을 수 없을 정도로 투여했다고도, 줄여보았지만 상태가 나아지진 않았다고도 했다. 이른 아침 병원에서 나와 우리는 결정을 해야했다. 오후에 다시 찾아간 병원에서 나와 누나는 미르의 마지막을 마주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아주 평온한 얼굴로. 자는지 자는 거 같았는데 정말 금방이라도 다시. 화장을 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밤이 되었다. 미르가 없네. 오면 현관에 있었는데. 약속이 있어 나갔다 돌아오신 아빠는 오랜만에 술을 드셨다.
_너의 잠은 안녕했니.
그러니까, 추석엔 미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때마침 휴일을 얻어 추석에 집에 가게 되었던, 2013년의 가을 이후로는. 이보다 더 큰 혹은 색다른 사건이 벌어지면 모를까.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마지막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면 그렇게 꺽꺽거리진 않았겠지만 더 많이 아쉬워하고 후회했을 것이다. 아니, 사실 마지막을 마주해서 더 그럴 지도 모른다. 아쉬움과 후회. 너를 이해했을까 라고 하는, 대답을 알 수 없는 궁금증은.
늘 그랬다. 받기만 하고 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받는 건, 자명했다. 분명 빚을 지고 있었다. 미르가 없었다면 아버지 어머니와 이만큼 친해지지 못했을 거다. 미르를 보려면 아빠엄마방에 가야했으니까. 돌아다니고 짖고 장난치고 하는 걸로 말 한 마디 더 나눌 수 있었으니까. 힘든 시간의 위로는, 말할 것도 없다. 누구에게도 말하기 싫고 말할 수 없는 시간에도 누워있으면 미르는 옆에와 몸을 비볐다. 그 따뜻한 온기가 아무 말하지 않아도 위로와 위안이 되었다.
_미르를 찍은 사진 모두가 나중엔 다 의문문이었다.
줄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말 한 마디 할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형. 오늘은 회사 가지마 라든가(이건 정말 잘 들어줄 수 있었을 텐데) 아 좀 피곤한데 쉬자(장난도 한 두 번이지) 라든가. 최대한 미르의 입장에서 무언가를 해주려고 노력했다. 장난을 치는 것도 싫어한다 싶으면 거기서 멈췄고, 동물에 무슨 옷을 입혀라고 생각했지만 미르가 겨울에 몸을 떨길래 길거리에서 강아지옷을 샀고, 자고 있는 동안에는 잘 건드리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노력했다지 이걸 잘 해줬다라고 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늘 그랬다.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모르니까. 잘 해줬다는 건, 결국 나의 입장에서지 받는 이의 생각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
죽음을 결정하는 순간에도, 그러했다. 아파하는 미르를 보면서도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우리의 최선이었다. 미르의 최선은 아닐 수도 있다는 거다. 더 살고싶었을지도, 수술을 받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그게 너무 미안했고 속상했다. 미르가 옆에 없어졌을 때. 전날 밤에 만난 미르는 평소처럼 놀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나는 그게 정말 졸았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그 다음날 일어난 일을 생각하면 아파서 정신을 잃었던 걸지도 모른다. 아파도 아프단 걸 한 마디도 할 수 없었겠지가 얼마나 속상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그 아침에.
_이게 장난을 치는 건지 아파서 그런 건지. 사진을 찍었을 때는 깔깔거렸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온전한 이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해한다고 하지만, 그건 결국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지점까지다. 미르를 만나서 배운 건 그거다. 나는 다 이해해, 아니야 그건 내가 잘 알지, 알아 다 알아 같은 말들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아무리해도, 우리는 상대일 수 없다. 그것부터 인정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해봤다고 시간이 더 지났다고 이런 건 설득의 까닭이 조금도 될 수 없다. 말하고, 무엇이든 어떻게든 표현할 수 있는 우리는 그래도 노력하면 가능한 일 아닌가.
추석엔, 이렇게 미르를 떠올린다. 가끔은 그래서 미르가 꿈에도 나온다. 그게 개꿈인지는 자고 일어나서야 알지만.
요조, 정재일 -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 나의 추석, 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