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어김없이.
메리, 오전 10시 열차를 탔어요. 도착하면 점심을 먹을 수 있게 말이에요. 역에는 사람이 많아요. 명절도 주말도 아닌 평일 오전인데도요. 연말,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길이겠죠 다들. 양손 한아름 짐을 든 이에게서도 고단함보다 설렘이 보이니까요. 더욱이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잖아요, 메리.
_ 누구나 마음 속에 크리스마스 하나쯤은 갖고 있는 거잖아요.
오늘은 날씨가 좋지 않아요. 금방이라도 비나 눈이 올 것 같은 하늘이에요. 이대로 며칠만 계속되면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할 수도 있을 텐데. 아마도 그냥 찬 바람만 세차게 불다 끝나겠죠. 원래 크리스마스는 그런 거잖아요, 메리. 그래서 나는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만나고 싶어요. 지구 남반구에서 맞이하는 크리스마스요. 푸른 바다가 넓게 펼쳐진 해변에서 파라솔 아래 자리를 잡는 거예요. 그리고 레게풍의 캐롤을 틀어요. 둠칫 두움칫, 리듬에 한껏 게으른 몸을 일으켜 춤을 추는 거예요. 초록색과 빨간색이 섞인 크리스마스 에디션 스윔팬츠를 입고 한 손에는 레몬이 들어간 코로나 한 병 정도면 좋겠네요. 그러다 콧잔등으로 내려오는 선글라스를 위로 올리면서 매에-리이- 하는 거죠. 어때요 상상만으로도 즐겁죠? 산타클로스 몸매나 수염을 갖기 전엔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요 메리?
_ 보기엔 이래도 산타입니다.
나는 산타클로스를 빨리 잊었어요, 메리. 의심이 많은 성격이라 어쩔 수 없었죠. 작은 일에 어린 동심은 쉽게 파괴되는 법이니까요. 아주 어렸을 때 누나와 산타클로스에게 보내는 카드를 쓰고 잔 적이 있어요. 머리맡에 두고 자면, 일어났을 때 카드가 선물로 바뀌어있길 바라면서요. 며칠 뒤, 누나와 나는 경악하며 실망하고 말았죠. 뚱뚱한 할아버지가 힘든 몸을 이끌고 굴뚝으로 내려와서 가져갈 줄 알았던 카드가, 아빠 엄마 장롱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다른 하나는, 뒷마당으로 내려가는 계단에서 찾았어요. 빨래 널러 가다가 흘리셨는지. 그 이후로 우린 크리스마스 카드 쓰는 걸 멈추, 지 않았어요. 좀 더 노골적으로 원하는 걸 적었죠. 보란듯이. 자본주의 사회는 원래 다 그런 거잖아요, 메리.
_ 루돌프야, 힘들어도 할 건 해야지. 근데 너 야간교통수당은 받니?
그래서 무슨 선물을 받았냐면, 어떤 선물이 기억에 남았냐면, 글쎄요. 뭐가 있을까요. 아, 어린 남자 아이의 로망은 변신 로봇이잖아요. 아, 병신 로봇말구요. 합체가 되고 그러는 변신 로봇이요. 그게 갖고 싶다고 1년 내내 노랠 부르고 다녔더니, 산타클로스가 그걸 준다고 말해줘서(엄마가 미리 들었다고 그랬어요. 그냥 눈감아줬죠.) 온 집안을 뒤지고 다니다 결국 찾아냈던 기억이 있네요. 크리스마스 한 달도 전에요. 또 뭐가 있더라. 아, 한참 농구에 빠져있을 땐 농구화든 뭐든 갖고 싶다고 산타클로스에게 바랐거든요. 이브날 큰 기대를 안고 잠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머리 위로 손을 휘휘 저었는데, 뭔가 딱딱한 느낌이 있는데, 이게 내가 바라던 게 아닌 거 같은데, 확인해보니까 글쎄. 농구 기술이 적힌 책이 있는 거예요. NBA 슈퍼스타의 특급 기술이 하나씩 적힌. 또 다른 책 하나가 더 있었는데 그건 마이클 조던 담당기자가 쓴 자서전 같은, 이름이 점프슛이었나. 400페이지가 넘는. 깜빡했던 거죠. 나의 산타클로스는 화가 나면 책을 사는 취미를 가진 분이었다는 걸. 그 이후론 산타클로스에게 카드를 안 쓴 것도 같네요, 메리.
_ 엄마는, 위대하다.
내 옆자리는, 예매가 된 거 같은데 아무도 앉아있지 않아요 메리. 이제 내릴 때가 다 되었는데도요. 가방은 있는데 말이죠. 생각해보니, 잠결에 얼핏 어린 아이를 안고 자리에 짐을 챙기러 온 여성분을 본 거 같기도 해요. 두어시간 동안 한 번도 자리에 앉지 않고 통로를 걷고, 칸과 칸 사이에 서있었나봐요. 자면서 가는 것도 이토록 지루하고 힘든데, 엄마의 힘은 정말 대단해요. 이렇게 직접 마주할 때마다 어떤 말로도 부족할 만큼 엄청 큰 마음이 느껴져요. 아이가 바라는 어떤 선물이라도 다 해주고 싶을 거예요, 세상 모든 산타클로스는. 올해의 크리스마스엔 그러하든 그러하지 못하든, 아쉬움도 그보다 더 애틋한 마음도 모두 담아서 선물을 건네줘요. 무척이나 이쁘고 사랑스러운 당신의 아이에게. 누구보다 행복하고 따뜻한 하루였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가족에게.
나도, 그럴게요. 크리스마스잖아요, 메리.
Ryan Gosling, Emma Stone - City Of Stars
: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