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말고. 늙어보이는 거 말고.
빼애액. 집 앞 횡단보도. 단란하게 노래방에 갔다가 집으로 가는 길. 왕복 2차선 도로를 무단횡단 하자는 엄마에게. 여긴 '원래' 이렇게 건너는 거라는 말에. '원래' 그러는 게 어디있냐고 그럼 뭐하러 횡단보도랑 신호등을 만드냐며, 빼애액. 맞아 맞는데 '동네'니까라는 말에, 다시 빼애애애액. '동네'라서 어겨도 되는 법이 어디있냐고 그게 법이냐고 빽애애애애애액. 2017 새해를 맞이하기 이십여분 전이었다.
페이스북엔 이렇게 적었다. "그러니까. 그게 싫은 거다. 안타까운 생명을 잃었네 기본이 흔들렸네 국가적 창피네 재앙이네 생각이 없네 죽일 놈들이네 다신 일어나선 안 될 일이네. 어쩌네 저쩌네 하면서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 담배 꽁초를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것. 그 사소한 것." 2014년 5월 18일에.
_ 그 어떤 책보다 읽기 힘들었던.
여기엔 너는 쓰레기 안 버리냐는 댓글이 달렸다. 안 버린다고 적었다. 어지간하면 분리수거도 하려고 노력한다. 츄파춥스 먹고 껍질을 어디에 버릴 데 없어 집에까지 가져온 적도 많다. 솔직히 안 그래보인다는 것도 인정한다. 제길. 그럼에도 귀찮음을 무릅쓰고 이렇게까지 하는 건, 할머니 때문이다. 공원길에 학생들이 쓰레기를 막 버리는데 우리 애들은 쓰레기 아무데나 버리지 않아서 참 예쁘다고. 중학생 시절 들은 한 마디가 계속 그러하게끔 만든다.
쓰레기 잘 버리자 따위의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다. 아 물론 이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소한, 보통의 올바른 삶을 사는 게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거다. 거대하고 크나큰 일에 따로 위안을 얻지 말고. 자기와 다른 기준으로 불평 불만을 쏟아내지말고. 나는 적어도, 불편했다. 처음 촛불집회에 나갔을 때. 내가 뭐라고 면죄부라도 받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좀 더 올바르게 바뀌면, 그래 내가 거기에 작은 힘 하나를 보탰지. 그래 나는 여기에 나갔으니 부끄럽지 않아. 라는 오만한 생각이 잠깐이라도 들어서다. 경계해야했다 스스로를. 그동안 왜 이렇게 되었고, 누가 이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 더 고민했어야 했는데.
_ 거리로 우리가 나오게 된 건, 우리 때문이다.
그래서, 싫었다. 민주화항쟁 때 어떠했는데 지금 여기에서 어쩌구저쩌구, 상록수가 어쩌구저쩌구, 내가 옛날에 데모를 어쩌구저쩌구 그러한 이야기가 말이다. 과거의 희생을, 노력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라는 거다. 예전에 그러했다는 걸로, 나는 다 안다는 말로, 남에게는 꽤나 엄격하고 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한 덕분에, 내가 힘들고 상처받는 건 싫고 청춘에겐 아파도 괜찮다는 것 때문에, 그 사소한 담배꽁초 하나 쓰레기 하나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까닭에, 그래서 지금은.
"내가 만난 많은 어른들은 정확히 그와 반대로 행동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겉으론 몽상가처럼 세상에 관한 따뜻하고 근사한 말을 늘어놓되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단 한 치의 손해도 용납할 수 없다는 뜨거움으로 그를 믿어왔던 주변의 많은 이들을 집어삼켰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알고있다. 그들이 그렇게 행동했던 건 딱히 남들보다 악해서가 아니라, 그렇게 행동하는 편이 세상을 살아나가는 데 훨씬 더 쉽고 편리하기 때문이라는 걸 말이다. 그게 내가 살아오면서 목격하고 학습한 이 세상의 '어른스러움' 혹은 '사회화' 였다." <나의 친애하는 적>에서 허지웅은 이렇게 말한다. 무릇 중요한 순간에만 돌아섰을까. 우리가 마주했던 어른은 어떠했나. 우리가 되고있는 어른은 어떠했나.
_ 예전 그의 책을 읽었을 때, 나는 그를 싫어할 순 있겠지만 욕할 순 없겠다고 적었다. 나보다 열심히 살았음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나는 그를 좋아한다.
전에 없이 불편하다. 요즘에는. 여기저기 널어놓은 불평 불만이 행동을 억압해서. 가끔 졸라 막 살고싶은데 쓸데없이 입이 방정이라. 내가 뭐라고 유재석의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정말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올바른 삶이란 얼마나 피곤할까. 할머니 말씀 하나 지키며 사는 것도 간당간당한데. 이렇게 적는 것도 그러니까, 그래서다. 제대로 준비하고 노력해서 정말 보통의 어른이 되고 싶어서. 새해니까. 시간은 흐르고 나이는 먹으니까. 어차피 어른이 될 테니까. 어쩌다 말고. 그저 늙어보이는 것도 말고. 마침 새로운 조카 녀석도 태어났으니까. 부끄럽고 쪽팔려도 비겁하진 말아야지.
이승환 - 어른이 아니네
: 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 아닙니까. 우리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