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나는 인턴이었다.
2012년 7월은, 더웠다. 모든 해 모든 여름이 더웠지만 그때는 유독 그랬다. 청년 인턴. 그게 그때 나의 신분이라, 그랬다. 3개월 근무 후 최종 면접이 끝나면 절반의 인원만 합격할 수 있던 그 지랄 같던 인턴 제도의 희생양 말이다. 재밌어도 재밌지 않았고 즐거웠어도 즐겁지 않았다. 그나마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해서 다행이었던 기간이었지만 언제나 마음이 불편했고 늘 불안했다. 우리는 그렇게 7번 정도의 면접과 시험을 봤고 9명 중 5명만이 스포츠PD가 될 수 있었다.
어느 날엔, 골프 채널에서 출장을 나갔다. 태어나서 처음 가는 골프장이었다. 어떤 무엇을 해도 눈치가 보이는데 잘 알지도 못하는 공간이라면, 아무래도 더욱 더 힘들기 마련이다. 카메라 감독님이 장난을 걸어도, 작가님이 눈을 마주치고 지나쳐도, 진행자의 시선이, 골프장 직원의 말투가 그냥 모든 게 다 신경이 쓰였다. 나는 너무 예민한 짐승이었지만 인턴은 나를 더 날카롭게 만들었다. 웃고 있었지만, 그랬다.
녹화 준비가 끝났다. 카메라 세팅은 끝났고 진행자와 출연자들은 그 앞에 섰다. 갤러리이자 방청객들도 모였다. 우리는 각각 맡은 카메라 감독님 옆에 섰다. 인턴이란 게 원래 그렇다.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할 수 있는 게 없고,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시킬 게 없다. 원래 출장지에서 구하는 당일 아르바이트 정도의 역할이 우리가 그날 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니까, 하면 하는 거고 없어도 되는 그런 일을 하는 거. 물론, 그땐 그런 일인 줄도 몰랐지만.
“다음은 우리 후배가 될 친구들입니다. 이번에 녹화를 함께할 겁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메인PD 선배가 나와서 소개를 시켜줬다. 카메라 감독님들, 진행자들, 출연자들 다음 순서로 우리도. 아무 기대도 없었는데 우릴 불렀다. 아니, 불러주셨다. 처음이었다. 인사를 시켜주는 선배도. 아무 조건 없이 우리 후배라고 물러주는 선배도. 그리고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인턴 기간 동안, 모두를 동등하게 아무런 막힘없이 다른 이에게 소개해주는 선배가.
투명인간이었던 적이 많았다. 야구장에서 아무런 관심도 없이 앉아서 경기를 지켜보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 언제 부를지 몰라서 불편한 마음에 엉덩이는 들썩이는데, 나중에 알고 보면 경기 끝날 때까지, 아니 끝나고도 우리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몰랐던 그런 일도 있었고, 그런 일이 보통이었으니까. 내가 이런 사람이었나 싶은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따뜻한 말까진 바라진 않아도 그냥, 뭐랄까.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인정해 줄 순 있지 않나 싶은. 누군가는 떨어지고 누군가는 남겠지만. 지금의 있는 그대로를 말이다.
- 인턴 때 중계차를 탄 적이 없다. 타보라고 한 선배가 없어서. 궁금했지만 말할 수 없었다. 인턴이라서.
그냥, 생각이 났다. 7월이 다 되어가니까. 더 더워지는 계절이 되어서. 어느 순간 나는 선배가 되어버렸고 앞으로도 계속 선배일 테니까. 그냥, 그런 선배가 아니, 사람이 되어야지 하고.
2018.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