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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loco Jul 23. 2018

쉼표를, 쓴다.

쉼표 이야기 같은 사실은 2018 여름휴가 출사표

   쉼표를, 쓴다. 어느 순간부터 문장에 쉼표를 넣는 일이 잦아졌다. 그게 그냥 쓰는 긴 글이든 SNS에 올리는 짧은 글이든 상관 없이 말이다. 그러고보니 대학생 때 작문 수업 시간에도 이야길 들었던 거 같다. 아. 언론 시험 스터디 하면서도 들었구나. 글에 쉼표가 많다고. 선생님은 소설가 누구와 닮았다 했고, 스터디원은 이렇게까지 많을 필요가 있냐고 했다. 그래. 그럼 그 때 즈음부터 쉼표를 많이 썼나보다.


  쉼표에 대한 기억이 난 김에, 찾아본다. 쉼표. 그리고 소설. 그러면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서 쉼표의 빈번한 사용은 리듬감을 주는 동시에 인물의 심리를 섬세하게 드러낸다 라는 결과가 나온다. 아. 그런 거였나. 내가 뭐라고 막 그럴 정도로 막 그런 의도가 있는 건 아니었는데. 그렇지만 사실 지금도 여기까지 오면서 몇 번이나 쉼표 한 번 아니, 두서너 번 쓰고 싶었는데 참았다. 일부러 쓰지 않는 게 이렇게 마음과 손가락이 근질근질한 일일 줄이야. 쉼표, 그게 뭐라고.

구보씨는 하루에 쉼표를 얼마나 쓰셨나요?


     그럼 왜, 쉼표를 쓰는 걸까. 이 습관적 쉼표 사용의 시작은 어디부터 였는가. 글을 많이 읽어서? 쉼표가 들어간 문장이 많은 책을 읽어서? 라고 하기엔 책을 별로 그리 자주 읽지 않는다. 누적된 절대적인 독서량이 다른 사람에 비해 그렇게 많은 것 같지도 않고. 그럼 쉼표 사용 협회에 가입 뭐 이런 거… 가 어딘가엔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아니다. 혹은 키보드 곳곳에 쉼표가 있어서 툭하면 톡하고 누르는 거다. 무언가를 쓸 때마다! 하지만 그런 키보드가 있을리도 없으며(있으면 어떡하지) 요샌 스마트폰으로도 쓰니까. (스마트폰으로 브런치고 뭐고 1시간씩 쓰고 있는 1인)

   쉼표를 잘 쓰면, 예쁜 문장이 나온다. 보기에 좋은 문단이 만들어진다. 예쁘고 보기에 좋다는 건, 정말 미학적인 부분에서다. 물론 여기엔 주관적 취향이 담길 수밖에 없다. 자잘하고 거추장스럽고 마침표도 아니어서 뾰죽 튀어나온 고 녀석이 뭐가 보기에 좋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냥 깔끔하게 떨어지는 문장과 문단을 좋아하는 이가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쉼표는 굳이 붙여서 좋을 거 없는 문장부호일 뿐이겠지. 하지만 적확한 위치에 알맞은 모양으로 자리 잡은 녀석을 보면 “하. 고 녀석 어떻게 그 위치에 있을 생각을 했지”라는 때가 왕왕 있다. 그리하여 그게 좋아 자꾸 키보드를 투닥거리면서 쉼표 버튼을 만지작 거리는 것이다.

쉼표를 잘 쓰면 예쁜 머리도 나온다


   그러니까 쉼표의 위치, 그게 중요하다. 알맞은 모양과 적당한 호흡을 불러일으키는 그 위치! “그러니까, 쉼표의 위치 그게 중요하다”라고 할지 “그러니까 쉼표의 위치, 그게 중요하다”라고 적을지 고민하게 되는, 쉼표의 적확한 자리 말이다.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내가 놓고 싶은 그 정확한 포지션을 찾아내는 게 여간 재미있는 일이 아니다. 어느 누가 읽을지 모르는 문장을 문단을 글을 여기 부분에서 한 번 쉬어가세요 라고 안내하는 표지판이니까. 글을 읽다가 마주하게 되는 쉼표는 사실 고민을 막 불러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 부분에서 한 번만 멈추면 보이는 것이, 곱씹게 되는 것이 생길 거예요 라고 말해줄 뿐이다.

   이처럼 쉼표 하나도, 쉬이 놓지 못한다. 쉼표로 만드는 리듬감과 호흡이라는 게 생각보다 어려워서. 누가 주어주면 했지 스스로 쉼표를 만들 기회가 많지 않아서. 쉼표를 쓴다는 건, 문장을 마주하는 사람에게 행간을 읽게 만드는 기회를 주는 거다. 그 타이밍에서 일부러 삐끗하게 만들어서 조금이라도 멈추고 다시 시작하게 만드는 거다. 그래 그렇다. 멈췄다가 다시 시작하게 만든다. 쉼표는, 원래 그렇게 사용하는 거다. 시작하라고 다시. 마침표처럼 끝나는 게 아니라. 근데 생각보다 매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쉼표를 놓는 것에. 문장에서도 일상에서도, 학교와 사무실, 거리 어느 공간 어떤 시간에도. 우리가 스스로 쉼을 갖는 순간이 자유롭고 편하지 않은데 그걸 어디 감히 문장에서 익숙하게 부릴 수 있단 말인가.

잘 쉬고 싶다. 그러면 좀 더 선명하게 앞이 보일 것 같은데.


   그리하여 올해는, 지금 여기 즈음에 쉼표를 하나 잠깐 찍을 생각이다. 아무 생각 없이 하고 싶은 거나 대애애애충 하면서 최대한 격렬하게 무엇도 하지 않을 계획이다. 어느 위치에 놓아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휴식을 취할 거다. 사실 이렇게 말을 하고 또 해야 그럴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러하지 아니하면 그렇게 할 용기가 없어서.



멈추고 다시, 시작하려면 그래야만 한다.



2018.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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