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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loco May 01. 2018

우리가, 아니 내가 왜 결혼을 하냐면

: 당신과 함께하기로 결심한 순간

  

  나는, 성격이 좋고 성질이 지랄맞다. 이 차이가 무엇이냐 하면. 음. 뭐가 있을까. 그래. 예를 들면 ‘엄마의 청소’가 그러하다.

   프로페셔널한 전업 주부였던 우리 엄마는, 감사하게도 아들의 방을 정기적으로 청소해주셨다. 서른 살이 넘어서까지도 말이다. 그러한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아들은 고마움과 미안한 마음에 더 이상 그만 방을 치워주셔도 되지 않느냐며 몇 번이고 말씀을 드렸다. 그렇게 된다면 분명 나의 일이 더 늘어날 것을 알지만, 그게 맞다고 생각하니까, 믿을진 모르겠지만 정말 그렇게 몇 번이고 말씀을 드렸다. 서른이 넘었는데 뭐 그리 신경을 쓰시냐며 더러우면 지가 치우겠지, 엄마도 아들 뒤치다꺼리 그만하시고 하고 싶은 거 하며 사시라고. 괜찮다고. 정말 괜찮다고. 그리고 며칠 뒤에 퇴근 후 다시 또 청소가 된 방을 보며, 보면서, 보고난 후, 말한다. 아니 성질을 낸다. 아, 청소할 때 물건 좀 옮기지 말라고. 아무데나 올려두거나 치워두지 말라고요. 좀. 이럴 거면 그냥 청소하지 말라니까? 그렇다. 해줘도 지랄이, 그게 나다.

   그래서 지금 결혼을 이야기하는데 성질이 지랄인 고백을 왜 하냐면, 그게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에게 함께하기로 결심한 그 순간을 마주하는데 있어서.


- 울산에 왔으면 대왕암을 보는 거라고 그랬다.


  우리의 연애는 거리가 좀 있었다. 일산에 있는 나와 울산에 있는 당신, 의 연애. 일주일에 한 번은 보려고 노력해도 쉽지 않은 연애. 그리하여 한 번을 만나면 1박 2일이든 2박 3일이든 그곳에서 시간을 보내는 연애. 그러던 언젠가 당신의 원룸에 먼저 들어가 퇴근을 기다리던 날이 있었다. 밥을 좀 해놓고 (지금 이렇게 밥할 줄 알았다면 그땐 자제할 것을) 청소 좀 할 게 없나 (자기 방은 안 하면서) 두리번거리다 당신의 마중을 나갈까 하던 그날.


   그러다 발견한 건 당신의 서랍이었다. 아니, 당신의 습관이었다. 옷과 양말을 넣어둔 박스 서랍부터 각종 잡다구리한 것이 담긴 서랍장, 부엌의 찬장 등등. 그리고 그 거의 모든 것에서 삐죽삐죽 튀어나온, 옷이나 전선, 빗, 종이 등등.

- 정리는 나의 것. 그럼 당신의 것은?


   성격은 좋으나(사실, 이것도 팩트가 아닐 수 있다.) 성질이 지랄 맞은 나는, 제자리에 물건이 예쁘게 있는 걸 좋아한다. 색이 크기가 모양이 쓰임이 어울리게 조화롭게 있는 걸 선호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를 들면, CD도 장르별로 남자 여자 솔로 밴드를 구분해서 가지고 있었고 옷도 색깔과 질감에 따라 구별해 놓아야 직성이 풀렸다. 책상의 물건 역시, 방의 무엇 하나도 다 대체로 각각의 규칙에 따라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엄마의 청소는 늘 그 배열을 깨는 행동이었던 거다. 그게 청소를 쉽게 하려는 이합집산임을 알면서도 그렇게 화가 났던 거다. 기어코 성질을 내고야 마는 거다.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려놓아야 하니까. 사실, 그게 원래인지 뭐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안정감과 조화로움을 유지하고 싶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서랍을 보고 나는, 웃었다. 무엇하나 깔끔하게 닫혀있는 서랍 하나가 없는 걸 보고 나는, 웃었다. 삐죽 튀어나온 물건과 티셔츠 양말을 보고 웃었단 말이다. 내가. 엄마가 보면 기가 찰 모습이었겠지. 그게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 이후에도 서랍은 대체로 늘 그러한 모습을 유지했으니까. 제대로 담아내고 있으면 내가 서랍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듯이. 툭툭 튀어나온 것을 보고 있자니, 그게 오히려 당신의 규칙인가 싶기도 했다. 사실은 그냥 성격이 급해 스륵 팍 하고 닫아버리는 거였지만. 그렇게 바깥으로 나온 무언가를 보면서 잘 넣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차근차근히 닫아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웃었다. 그랬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 애미야, 서랍 닫기 힘들다. 너가 좀 닫아라.


   가지에 무슨 뜻이 있어 원래부터 ‘가지’라는 이름을 가진 게 아니지만 ‘그’가 들어가는 온갖 접속어는 분명 ‘그’를 몹시도 그리워한 어느 이가 만들어낸 말이라고, 나는 종종 상상하곤 했다. 그 리고 그 러나 그 런데 그 러니까 그 래서 그 러므로 그 리하여 같은,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다 ‘그’로 시작할 수가 있느냐 말이다.
   그리하여,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이 있는데 그게 바로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다. 앞에 말한 이유와 까닭을 아무렇지 않은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말.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과 원인이 어떤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믿으면서도 그 모두를 감춰버리는 매력적인 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나는 성격이 좋지만 성질이 지랄 맞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서랍을 마음에 들어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렇게 서랍의 규칙을 처음 확인한 날에도, 계속해서 그 상황이 반복됨을 깨달았던 날에도 어느 한번도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게 좋다는 건, 나만 아는 비밀이었다. 왜냐하면 그래서 당신과 결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니까.




     2018.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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