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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loco Jun 08. 2018

최선의 수비가 공격이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고요? 저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공격이 최선의 방어다. 축구는 득점을 해야 이길 수 있는 스포츠다. 아무리 수비를 잘해도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결과는 무승부일 뿐이다. 골을 넣어야 한다. 볼리비아와의 평가전만 봐도 알  있다. 그럴 때 나오는 말이, 이거다. 치열하게 공격하고 또 공격해서 득점을 노리는 것. 끊임없이 공격해서 아예 상대의 공격 의지를 꺾어버리는 것. 계속해서 공을 잡고 소유하며 공격해서 상대가 공격으로 전환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 그러니까, 강력한 공격으로 수비에서 받을 수 있는 부담을 줄이는 게 포인트다.


- 25년이 지났는데 또 비기다니.


그러나 모든 팀이 이러한 전략을 사용하진 않는다. 아니, 알면서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공격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건 보통 상대적으로 전력이 강한 팀이 취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일단 맞붙어서 이길 수 없는 상대를 만나면 그 팀은 기본적으로 라인을 내려서 싸울 준비를 한다. 일발장전. 역습 한 방을 노린다는 거다. 그래서 전력이 우위에 있는 상대팀은 계속 공격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그리고 그 견고한 방어를 깨기 위해 정교한 공격 전술을 가다듬는다. 팀 전체적으로나 부분 전술으로나. 사이드에서 크로스로 타겟을 노리는 형태든, 중앙의 밀집 전형을 깨기 위한 페널티 지역 바깥에서의 슛이든, ‘티키타카’ 혹은 ‘돌려치기’로든 말이다.

우리나라 축구의 괴리는 여기에서 온다. 아시아 지역예선 대부분의 팀은 우리보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아래다. 속된 말로, 우리와 다이다이로 붙어서 이길 국가가 많지 않은 거다. 그러니 내려앉은 상대를 공략하기 위한 전술이 필요한 거다. 물론 그것도 대형 스트라이커(능력이 대형인지 크기가 대형인지 모를)를 노린 (무의미한) 크로스 혹은 공격 2선부터 풀어나가는 (간결한 것도 아닌데 세밀한 것도 아닌) 빌드업이 대부분이지만. 그렇게 아시아 최종예선을 통과해서 월드컵에 진출한다고 하자(진출해왔다.). 세계무대에서 우리가 전력으로 앞설 수 있는 팀이, 팀은 다 같은 포트에 속해있다. 같은 조에서 어느 누가 와도 공격으로 최선의 방어를 할 수가 없는 거다. 그동안 그렇게 축구를 해왔는데? (심지어 그것도 이제 아시아에서 잘 안 통하기도 하지만)


- 돌려치기로 어떻게 안 되겠니?


1994년 월드컵부터 2014년 월드컵까지, 우리나라 득점 기록을 살펴보면 명확하게 알 수 있다. 6번의 월드컵, 23번의 경기를 하면서 우리나라가 기록한 득점은 총 25골이다. 경기당 1골을 정도만 기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공격으로 경기를 풀어간다고? 4년 동안 비약적인 축구 발전이 이뤄지거나 손흥민 같은 슈퍼 탤런트의 선수가 전 포지션에서 갑자기 11명씩 동시에 나오기 전엔 말도 안 되는 생각이다. 득점이 이뤄진 상황을 보면 더 확실해진다. 25번의 득점 가운데 세트피스 상황에서 직접 혹은 어시스트로 골을 기록한 게 10골. 나머지 15골 중에서 상대 수비의 실수를 파고들어, 끊어내서 득점을 기록한 게 5골. 패스 플레이, 빌드업으로 득점한 게 10골이다. 와. 25득점 중에 10골이 빌드업으로 이뤄지면 꽤 높은 비중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아니다. 그 빌드업이라고 하는 득점도 대부분 5회 미만의 패스로 성공한 골이다. 대부분이라고 썼지만, 사실 5회 이상 패스 후에 나온 골이라곤 2006년 독일 월드컵 프랑스전에서 박지성의 득점뿐이다. 그러니까, 세트피스를 제외한 15골이 다 비슷한 패턴으로 나온다는 거다. 상대의 공을 가로채든 아니면 우리의 공격 상황이든 5회 미만의 패스로 아주 빠르게 상대의 골문을 공략하는 것. 아니면, 세트피스를 아주 예리하게 가다듬는 것밖에 없다.

- 뺏고, 가서, 골을 넣어. 간단하잖아?


최선의 수비가 공격이다.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전략은 그러하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제외하고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린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을 떠올려보라. 그리스와 아르헨티나의 수비 실수를 놓치지 않았던 박지성과 이청용이 있다. 나머지는? 세트피스 득점이다. 부정할 수 없다.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방식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그리고 그 중 최고가 바로, 최선의 수비로 상대를 압박해서 공격하는 거다. 무작정 라인을 내리고 버스를 세우는 것 말고. 공격이 아니라 공격적인 수비. 3선을 최대한 일정한 간격으로 유지하면서 전방에선 압박하고 후방에선 버티는 것. 중앙에선 그 연결고리를 수행하는 것. 상대가 라인을 내려서 싸운다는 스웨덴이든 16강 전문가인 멕시코든 세계 최고 전차군단 독일이든. 일단 우리의 전략부터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부상자의 이탈이 무척 아쉽다. 권창훈은 대표팀에 뽑힐 수 있는 자원 가운데 가장 공격적인 수비를 하는 선수였다. 직접적으로 공을 노리거나 상대의 다음 패스를 불편하게 만드는 수비 말이다. 지금 23인의 대표에선 이재성과 이승우 황희찬이 그러한 수비를 잘한다. 그러나 앞선에서 그런 움직임을 한다고 공격적인 수비가 완성될 순 없다. 2선과 3선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중요하다. 특히 3선은, 위험을 감수한 앞쪽의 공격적인 수비가 뚫렸을 때 버틸 수 있어야 한다. 발밑이 좋은 건, 빌드업은 두 번째 문제다. 여기에서 김민재와 김진수의 부상이 또 아쉬워진다. 중앙과 왼쪽 측면에서 가장 잘 버텼던 선수이기 때문이다. 중앙에서 윤영선이나 오반석의 깜짝 발탁은 이러한 까닭일 터다. 그러나 왼쪽의 김민우나 홍철은 공격적 재능이 더 뛰어난 풀백이라 볼리비아 평가전에서 박주호가 예전의 자리로 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과거 곽태휘가, 멀리 최진철이나 김태영이, 더 멀리 이임생이나 최영일 같은 수비수가 끊임없이 대표팀의 주전으로 뛸 수 있었던 건 버틸 수 있어서다. 전방으로 공을 잘 뿌려줘서가 아니라. 투박함을 감수하고라도 일단 버텨야 다음 기회를 노릴 수 있으니까.  

- 버티는 거 찾아봤더니 미생 사진만 잔뜩 나왔다.


2018 러시아 월드컵 첫 번째 상대인 스웨덴과의 경기의 전략은 그래서, 간단하다. 전방 조금 더 높은 라인에서 끊임없이 압박할 것. 그리고 후방에선 상대의 카운터를 최대한 버텨낼 것. 몇 번 되지 않는 기회에서 공을 뺏고 최대한 빨리 상대의 골문으로 나아갈 것. 물론 이 모든 게 강한 체력을 요구하겠지만 어쩔 수 없다. 이탈리아도 공략하지 못한 견고한 바이킹의 벽을 우리가 돌려치기로 깰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보다 이 방법이 조금 더 확률이 높아 보이니까. 더욱이 뒷공간 없는 수비를 펼치는 상대에게 우리의 1옵션 손흥민의 플레이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니. 그렇다면 공격적인 수비로 몇 안 되는 찬스를 맞이하는 게 더 유리해 보이니까. 그리하여 앞으로 기대할 수 있는 건, 볼리비아 평가전을 엉망으로 만든 파워 프로그램으로 슈퍼 파워를 장착하는 것과 그들이 끊임없이, 간절하게 뛰어다닐 수 있는 우리의 응원 정도랄까. 언젠간 만화축구...아니 빌드업으로도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희망과 함께 말이다.


2018.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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