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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loco Aug 25. 2020

‘멜로가 체질’인데 ‘한 번 다녀왔습니다’?

'멜로'와 '한 번' 사이 어디 즈음에서 하게 되는 고민

요즘 우리는, 꽤나 루틴한 주말을 보내고 있다. 우선 일요일엔 점심을 먹으면서 ‘놀면 뭐하니’를 본다. 뭔가 본방을 사수하는 것보다 여유롭게 늦잠 후 맛있는 점심과 함께 아껴둔 프로그램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토요일과 일요일 밤 8시엔 주말드라마 ‘한 번 다녀왔습니다’를 챙긴다. 어딜 돌아다니기 쉽지 않은 요즘이라 그런 것이기도 하지만, 마지막으로 본 같은 시간대의 드라마의 주인공이 방귀남 씨였으니까 정말 아주 오랜만에 보는 거다.


처음엔 안 본다고 했다. 자꾸 재미있다고 요즘 인기 많다고 하길래. 그러다 설거지를 하며 슬쩍슬쩍 눈을 돌렸는데 꽤나 유치한 게 재미있는 거다. 어느 순간 옆에 그냥 앉아있는 내가..... 심지어 요새는 서로 연기 대결도 펼친다. 차화연 님의 콧구멍 벌렁거리며 말하기 또는 김보연 님의 “내가아?” 라며 되묻기를 따라 하며. 어렸을 때 구연동화에서 어리석은 사자를, 신데렐라와 콩쥐팥쥐를 섞어놓은 이상한 연극에서 3막의 왕자 역할을 맡았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말이다.


근데 보면 볼수록 화딱지가 나는 거다. 아니, 명색이 KBS 간판 주말 드라마인데 만듦새가 이래도 되는 거야 싶을 정도여서. 신경을 안 쓰고 만들어도 너무 안 쓰고 만든 티가 나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좀 덜 하지만 그래도, ‘그림이 붙는다’는 건 TV에서 장르를 막론하고 가장 기초적인 건데. 예를 들어 등장인물1의 행동이 같은 상황인데도 장면과 다음 장면에서 달라지는 건 물론이고, 등장인물2가 말하는 모습을 뒤에서 잡고 등장인물3이 리액션 받아주는 장면에선 말하는 이의 입모양과 소리가 달라도 한참 다른 것도 매회 찾을 수 있다. 아무리 드라마 제작이 바쁘고 힘들다지만, 아무리 요즘 TV 플랫폼의 위상이 떨어졌다지만 이 정도 퀄리티의 주말 드라마라니. 그냥 최선을 다해서 만들고 있지 않다는 기분이 들어서 뭔가 내가 만드는 것도 아닌데 창피한 기분이랄까. 하아.


그즈음에 함께 보기 시작했던 드라마 때문에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 보았던 모든 사람이 재미있다고 추천했던 바로 그 드라마 ‘멜로가 체질’. 사실 처음엔 이게 왜, 라고 생각했다. 장범준과 권진아의 노래가 좋은 건 알겠는데. 1회와 2회차에서 설명은 오지게 많고 뭔가 극적이지도 않은데 감정이입이 잘 되는 것 같지도 않으면서…. 근데 3회차에서 뒤통수가 빡. 김수현 작가의 작품 이후에 말맛이 이렇게 나는 드라마는 처음이라, 거기다 어느 누구도 매력 없는 등장인물이 없고. 아니, 여자 주인공이 거실에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선 한 회차를 마무리하는 구성과 연출은 또 뭐야. 영상을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배울 것도 많았고, 그냥 시청자의 입장에선 몇 번은 울었고 그보다 더 많이 소리 내어 웃으면서 본 슈퍼초핵꿀잼드라마. 가 시청률이 1.8%였다는 사실에 놀란 건 한참 뒤였다. 그것도 최고 시청률이.


그래서 지난 주말 밤엔, 배우자에게 말했다. 내가 샤워를 하다가 곰곰이 생각해봤다고. 1.8%의 ‘멜로가 체질’이 있고 35.5%의 ‘한 번 다녀왔습니다’가 있는데 나한테 너는 뭘 만들고 싶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멜로가 체질’ 쪽이라고. 그러니까 내가 돈을 잘 벌 수 있는 운명은 못….. 까지 하다 발로 차였다. 그래. 시청률은, 돈은 중요한 거니까. 잘 만들고 안 보면 그게 다 무슨 소용이람! 아. 근데 ‘멜로가 체질’은 천만 영화 만들고 한 거라고? ‘스카이 캐슬’처럼 잘 만들고 시청률도 잘 나오는 드라마도 있는 거 아니냐고? 음. 아니, 선택지가 두 개밖에 없다면… 아니, 다시 샤워하고 나올게.


알고 있다. 이건 정답이 있는 문제라기보단 취향의, 가치관의 차이란 걸. 그래서 늘, 어렵다. 회사를 다닐 때도 그랬고 회사를 운영하면서도 그러하다. 단순히 영상을 만드는 것에 국한되는 게 아니니까. 어쩌면 돈과 관련된 모든 것이 그렇고, 지금은 돈과 관련되지 않은 무엇도 없으니까. 결국엔 그래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좋아라 하는 건 자신이 믿는 것에 흔들리지 않는 태도와 그 믿음에 최선을 다하느냐 안 하느냐 정도가 되겠다. 이 교과서 같고 어딘가 꼰대 같은 이 결론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 번 다녀왔습니다’를 보면서 꺄르르 꺄르르 웃지만 어딘가 불편한 건 감출 수가 없나 보다.


아, 그냥 뭐 ‘멜로’가 ‘체질’이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2020. 0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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