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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mloco Jan 12. 2019

벤투는 답답하다. 그리고 우리도.

2019 AFC 아시안컵 vs 키르기스스탄 전 리뷰


졸전이었다. 그동안 한국 축구가 아시아권의 경기에서 흔히 대던 핑계가 아무 것도 통하지 않는 게임이었다. 잔디? 그냥 봐도 최상의 상태였다. 상대가 라인을 내려 밀집 수비를 구축해서? 키르기스스탄은 득점이, 승점이 필요한 팀이라 우리의 예상보다 많이 라인을 올려서 플레이했다. 선수들의 컨디션? 개인의 움직임만으로는 괜찮은 선수들도 많았는데? 조별리그의 어려움? 어려운건 ‘첫 경기’ 아니었나요? 골대의 불운? 골키퍼도 없는 골문에 슛을 해서 골대를 맞추는 걸 불운이라 할 수 있을까?


 ‘아시아에서만 이기는 축구를 하지 않겠다. 대한민국의 색깔을 가진 팀으로서 발전하고 승리하는 대표팀이 되겠다.’ 이번 2019 AFC 아시안컵에 출전하는 한국 대표팀이 가진 의미는 이렇다. 감독인 벤투의 의지가 그러하다는 뜻이다. 23명의 선수 선발 명단에서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김신욱과 석현준 등의 ‘장신 타겟형 스트라이커’를 뽑지 않은 것만 해도 그렇다. 아시아권에서 ‘결과’를 내기 위한다면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옵션이다. 그러나 벤투는, 지금의 대한민국 대표팀은 이전 우루과이나 칠레 등 강팀과의 평가전에서 보여줬던 대한민국 축구의 색깔을 그대로 가져가 아시안컵에서 싸우기로 결정했다. 우승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아시아와 세계 축구와의 차이에서 늘 고민하는 한국 축구의 딜레마를 무시하고, 과정에 충실한 결과를 얻어내겠다는 의지로 보였다. 세계 어느 나라와의 대결에서도 일관적인 모습을 보여주려면, 지지해야만 하는 당연하고도 옳은 결정이었다.

 

그러나, 이상하다. 세계 강팀과의 평가전에서 보여줬던 ‘대한민국 팀’으로의 모습은 사라졌다. 필리핀과 키르기스스탄이 우루과이나 칠레 수준이 아닐 텐데. 대표팀 소집하고 훈련할 수 있는 기간이 분명 더 많았을 텐데. 강팀에게 강하고 약팀에게 약한 ‘의적 대한민국’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새벽 3시까지 잠을 미루고 기다리고 기대하던 대표팀의 모습은 분명 아니었다. 그리고 이건, 손흥민이 없어서 일어나는 일도 아니다.

이들이 보여줄 대한민국의 축구는 무엇인가.


 라인 간격 유지 실패. 예상을 깨고 초반에 라인을 올린 키르기스스탄의 전방 압박에 당황한 건 그렇다고 치자. 15분 이후 경기의 흐름을 가져간 한국 대표팀에게서 종종 보였던 문제점은 ‘밸런스’였다. 벤투 축구의 핵심이라는 팀으로의 움직임, 공격-미드필더-수비 라인 운영과 각 선수간의 거리 유지는 귀신처럼 사라졌다. 그렇기 때문에 ‘빌드업’이라는 팀의 명제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양 사이드의 풀백은 공격에 참여하고, 원래 앞쪽 사이드에 위치한 선수들은 중앙으로 움직이고, 조율보다 공격 마무리에 강점을 둔 공격형 미드필더를 둔 탓에 종종 ‘홍철 – 이청용 – 황의조 – 구자철 – 황의찬 – 이용’이 최전방에 같은 라인을 형성 뒤에서 올라오는 공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이청용 선수가 간간히 내려와서 경기를 풀어주는 역할을 하긴 했지만, 앞에서만 공을 받으려고 하니 뒤에서부터 풀어나갈 수 있을 리가. 특히 수비형 미드필더 자리는 키르기스스탄 선수들에게 둘러쌓여 고생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 되었다.


 조직적 전방 압박 실패. 라인 간격이 유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약속된 움직임으로 전방에서부터 압박 하는 ‘공세적 수비’를 기대하는 건 당연히 무리다. 키르기스스탄은 분명 체격이 좋은 팀이었지만 기술이 훌륭한 팀은 아니었다. 개인 전술이나 부분 전술에서 우리나라보다 세밀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싸울 수는 있지만 풀어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팀은 아니었단 이야기다. 여기에 밀집 수비보다 올라와서 싸우는 방법을 택한 상대라면 공격적인 수비로 상대를 차단한 후 빠르게 뒷공간을 노리는 방법을 택했다면 훨씬 더 수월한 경기를 펼쳤을 것이다. 예상보다 많은 공간이 상대 진영에 있었는데 그런 상태에서 플레이를 선호하는 황의조나 황희찬이 있었고, 두려움 없이 전진 패스를 넣어줄 수 있는 황인범이나 이청용도 뛰고 있었다. 그러나 약속된 움직임으로 상대를 가둬놓고 공을 탈취하는 모습부터 나오지 않는데 무엇도 기대할 수 없었다.

세트피스는 밀집수비 파훼법인데.......


 게임 체인저(Gamg Changer)의 부재. 선수를 통해 경기를 변화시키는 방법은 세가지가 있다. 크랙이라고 하는, 개인 능력으로 게임을 지배할 수 있는 이가 있거나, 미드필드 진영에서 조율을 통해 팀의 기어를 변속할 수 있는 선수가 있거나, 후반에 교체로 들어가 흐름을 바꿔주는 유형의 선수를 보유하고 있거나. 자, 다시 어제의 경기를 떠올려보자. 우리에겐 무엇이 있었을까. 물론, 이건 ‘자원’의 문제라서 그러한 선수가 없다면 쉽게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긴 하다. 그러나 어제 한국 국가대표팀에는 게임 체인저는 물론이고 팀의 일관된 경기력을, 밸런스를 유지할 수 있게 잡아주는 선수도 보이지 않았다. 주로 그 역할을 수행했던 기성용은 햄스트링 부상이다. 빨라야 토너먼트 후반부에나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의 팀으로서 방향과 색깔을 가져 싸우고 싶다면 한 두명의 이탈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줘선 안 될 일이다. 우리보다 레벨이 낮다고 생각하는 아시아권 팀을 만나서는 더더욱.  


답답하다. 당신도. 우리도.


 카메라의 잡힌 벤투는 몇 번이고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경기를 보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경기 내용도 별로였고 선수들의 집중력도 매우 떨어져 보였다. 팀으로 싸우기보단 개개인이 각자 키르기스스탄과 대결하는 경기를 본 기분이었다. 허니문 기간이 끝났나? 대회 우승의 간절함 때문에 생긴 부담감인가? 컨디션이 정말 좋지 않은가? 여러가지 의문이 떠올랐지만 뭐,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나. 아랍에미리트에 있는 이들도 알기 힘든 문제다. 결국, 이에 대한 명쾌한 대답은 앞으로의 경기에서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내용. 과정. 대한민국 대표팀이 팀으로서 얼마나 뚜렷한 색깔과 방향성을 갖고 대회를 치르는지, 그리고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 아직은 믿고 응원해야할 때라고 생각하기에. 그게 이 대회를 지켜봐야할 이유며, 벤투 감독이 증명해야 할 대답이다.




2019. 0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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