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주 1일. 미안하다는 말이 하고 싶어서
미안해 그리고,
미안해. 한 주에 한 번씩 글을 쓰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 너도 크면 알게 될 텐데, 추석이라는 큰 명절이 있었거든.
미안해. 다음으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지- 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였어. 이 글을 읽는 입장에서 보면 조금, 아니 많이 이해가 안 될 수도 있겠다. 다짐 다음이 바로 미안하다는 말이라니.
나는 어렸을 때부터 당연히 결혼을 하고 자연스레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어. 할아버지는 북에서 혼자 내려와 가족을 만드셨고, 아버지는 그 가족의 장남이었으니까 나는, 알게 모르게 유교 가족 문화에 학습된 ‘장손’이었거든. 그러니까 다 큰 성인이 되고 나이가 차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물 흐르는 것처럼 이뤄져야 하는 줄 알았던 거지. 왜 그래야 하는지도 모르고 꼭 그래야 하는 건지 의심조차 하지 않고 착하고, 어른들에겐 바른 아들이자 손주였을 거야.
아이를 꼭 낳아야 하는 걸까. 결혼을 하고, 생각이 달라졌어. 인생에서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가장 큰, 중요한 선택은 결혼이라고 믿는 사람인데, 그렇게 내린 결정이 생각보다 너무 좋은 거야. 이런 말을 지겹게 들은 보람이는 우쭐할 수도 있겠지만.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어. 무엇이든. 정서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그렇게 감당할 수 없는 행복이 갑자기 찾아오니까 하지 않았던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 아, 죽는 게 무섭다. 아, 아이를 꼭 낳아야 하는 걸까. 하고.
이유가 명백했어. 아이를 낳지 않으면 누릴 수 있는 이득이. 집에서 자유로울 수도 있고 시간도 여유롭고 둘에 좀 더 집중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이 눈에 보였어. 내 스스로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을 거고, 내가 그리고 우리가 고민하고 노력해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많을 것이라는 게 자명했어. 아이를 낳기 무섭다고 했던 누나의 말을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물론 누나는 그러고 둘째까지 낳았지만) 아이 낳기를 선택하지 않은 친구 부부의 결정을 머리로 그리고 마음으로 다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어. 아빠의 가르침 덕분에 효율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 되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이를 낳는 것보다 낳지 않는 게 훨씬 더 합리적인 선택으로 보였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미안했어. 이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죽음이란 걸 가장 확실하게 무서워하기 시작했는데 그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거든. 아이를 낳는다는 게 하나의 생명을 탄생하는 행위지만 한편으로는, 또 하나의 죽음을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구나 라고. 사람은 태어나면, 죽어. 아 물론 너희 세대에는 이것도, 이 문장도 틀림없는 명제가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내가 아는 상식선에서 가장 확실한 건, 누구나 태어나면 죽는다는 거야. 그리고 태어남은, 나의 의지로 선택하는 문제가 아니지. 나와 보람이가 너무도 사랑해서 결국에 우리는 너를 만들어내게 되는 거야. 그리고 그게 너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닌데, 그럼에도 너는 결국에 죽어야 해. 언젠가는. 아 물론 내가 좀 더 먼저 죽을 테지만. 그러니까 지금 내가 너무 행복해서 이토록 무서워하는 죽음을 너는, 너의 의지도 아닌데 겪어야 하는 일이 되는 거잖아. 그게 태어나지도 않은 너를 상상만 해도 그게 너무 미안하더라고. 생각보다 많이. 무척 많이.
그로부터 여러 가지 일이 있었고 우린 너를, 만났어. 그리고 벌써 11주의 시간이 지났지. 그래서 아직도 미안하냐고 이제 그런 생각 같은 거 안 하게 되지 않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그래.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거야 아마. 미안하다는 마음을 계속 갖고 살아가게 될 거 같아. 세상은 생각보다 쉽지 않고 아마 앞으로도 더 어려울 테니까. 너는 나의 뜻대로만 되는 존재가 아니고 우리는 우당탕탕 힘든 일도 아주 행복한 일도 많이 겪으면서 지내게 될 테니까. 너는 종종 울고 자주 웃으면서 지내겠지만 산다는 건, 삶은 어느 누구에게도 쉽지 않은 것이란 것을 알게 될 테니까.
그러니까, 꼭 미안하다는 말을 먼저 하고 싶었어.
그러니까 나는, 최선을 다해 우리가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할게.
보람과 기쁨에게.
정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