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주 1일. 우리 집은 외 없어

외 때문이야~ 외 때문이야~

by kimloco

삼촌을 갖고 싶었어. 기쁨아, 가족 중엔 내 마음대로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있어. 예를 들어서 아빠한테는 고모가 없어.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할아버지들은 삼 형제로 끝이었거든. 그래서 고모가 있으면 어땠을까 늘 상상하곤 했지. 근데 뭐 그건 내가 세상에 나오기 전에 이미 정해진 것들이니까. 근데 그렇다고 고모가 막 땡기진 않았어. 왜 그런지 생각해 보니 누나가 있어서 그랬나 봐. 대신 삼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 삼촌 왜, 있는 거 아니냐고? 할아버지의 동생이 두 명이나 있었는데? 근데 아빠가 태어났을 때 이미 다 삼촌들은 결혼을 해버려서 ‘작은아버지’가 되었거든. 삼촌이랑 (작은)아버지는 너무 결이 다르잖아?


대신 외삼촌이 있었어. 할머니의 남동생들. 할아버지랑 할머니가 다 첫째라서 동생들만 있었거든. 외삼촌은 둘이 있었는데 큰외삼촌은 결혼을 했고 막내외삼촌은 아직 결혼하기 전이었어. 신기하게 외삼촌은, 결혼을 해도 외삼촌이라고 부르더라고. 뭐 그래도 결혼을 한 외삼촌과 아직 노총각이었던 막내외삼촌의 느낌은 무척 달랐지. 나의 유일한 삼촌이었다고 해야 할까. 키는 186cm에 체격도 건장해서 막내외삼촌은 나를 번쩍번쩍 들어 올렸어. 아빠가 잘해주지 않는 목마도 잘 태워줬지. 그런 막내외삼촌이 서른 후반에 결혼을 했는데 그게 내가 경험한 첫 번째 결혼식이었던 거 같아. 그땐 노총각이라고 다들 걱정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별로 늙지도 않았어. 아빠 주변에 친구 후배 삼촌들은 아직도 결혼 안 한 사람들이 많거든. 뭐? 다들 알아서 가지 않겠냐고?


그렇게 좋아하는 외삼촌을 가장 빨리 떠나보냈어. 알다시피 우리 집은 무병장수 집안이었거든. 리하가 좋아하는 증조할아버지는 올해 만으로 96세야. 외증조할아버지도 아흔이 넘으셨지만 건강하시지. 그런데 외삼촌은, 교통사고였어. 아빠가 일을 시작했을 때 즈음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나의 첫 번째 결혼식이자 장례식은 모두 다 막내외삼촌의 몫이야. 막내외삼촌의 소식을 듣고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찾아가서 인사를 하다가 처음 겪는 일에 엄청 울음을 쏟아냈는데 큰외삼촌이 혼내던 기억이 나. 그렇게 울지 말라고. 다들 속상한 거 참고 있으니 울지 말라고. 그래도 너무 슬펐어. 아빠는, 한동안 참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 막내외삼촌을.


그런데도 이상하지. 그렇게 삼촌이 갖고 싶었고 그렇게 애틋한 외삼촌이 있었는데도 항상 이질감이 있었어. 왜 그럴까. 왜였을까. 고민해 보면 사실, 답은 하나고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외’ 때문이야. 아빠가 어렸을 땐 ‘간 때문이야~’라는 CM송이 인기였는데. 너한테 말해줄 수 있는 것도 ‘외 때문이야~’밖에 없어. 그 ‘외’라는 글자 하나. 그렇게 삼촌이 갖고 싶었는데도 외라는 글자 하나가 붙어서 준 거리감. 엄마의 손을 잡고 이태원에, 엄마의 엄마를 보러 갈 때면 우리 가족을 만나러 가는 건데도 남을 만나러 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그 말. 외, 가. 외가에 가서 외삼촌을 만난다니, 봐봐. 벌써 얼마나 멀어. 그냥 삼촌이면 되는데. 그게 그렇게 아빠와 할머니의 가족을 멀리하게 만든 것 같아. 생각해 보면 할머니의 가족이나 할아버지의 가족이나 아빠에게는 동일한 거리를 갖는, 같은 촌수의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랬어. 아마도 아빠는 어렸을 때 증조할머니와 증조할아버지랑 같이 지냈거든. 취직해서 혼자 나가서 살 때까지. 그러니까 친가의 가족들과 더 강하게 연결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 유치원을 다녔던 어린 시절에는 그래서, 나와 우리 편을 규정하기 좋아하는 나이엔 그래서, 마치 친가가 우리 편이고 외가가 적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도 같아. 유치하지만, 그게 사실이야.


여러 가지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 외가가 그랬다는 게 아니라, 외가라서 다른 게 마음에 들지 않았어. 외증조할아버지는 아직까지도 할아버지한테 존댓말을 쓰시거든. 아빠에게도 종종 존칭을 섞어서 말씀하실 때도 있어. 그게 어렸을 때는, 그러니까 아까 말했던 것처럼 외가가 마치 ‘적’이라고 느낄 정도로 거리감이 있었을 때는, ‘아 그래, 우리 아빠가 뛰어난 사람이니까 그런 대우를 받는 거야’라는 생각도 했었는데. 지금은 그게 딸은 시집을 보낸 거고 사위는 손님이니까 그렇게 하는 거라는 걸 알게 되었지. 왜냐하면 엄마의 가족들도 종종 아빠에게 그렇게 대할 때가 있거든. 보람이를 잘 부탁한다고. 부족한 딸을 아내로 맞이해 줘서 고맙다고. 하동의 딸을 일산으로 보냈다고. 근데 그게 아니잖아. 드라마에서 보던 그 "모자란 제 딸이지만..."으로 시작하던 대사를 실제로 듣게 될 줄이야! 그렇다고 내가 보람이를 잘 안 대해줄 건 아니지만, 보람이는 보람이 그 자체로도 충분히 멋진 사람이잖아. 멋진 기쁨이의 엄마잖아. 그렇게 보람이를 보내버리면, 우리가 멀어지잖아. 동등한 엄마와 동등한 아빠가 만나서 결혼했는데 누가 누구한테 가고 오고가 어디 있어. 그게 우리나라의 유교 문화에서 비롯된 거라는 걸 알고 있긴 하지만 지금까지 꼭 그래야 하나, 그게 너무 불편했어. 아빠의 엄마는, 기쁨이의 엄마는 누구 가족에게 종속되어 살기 위해서 키워진 사람이 아닌데. 나는 기쁨이를 그렇게 키워서 '보낼' 생각이 없는데.


그렇기 때문에, 외라는 글자 하나 때문에, 멀었어. 친가에 있을 때보다 불편했고 손님이었고 같은 항렬의 누나 동생들과 많이 가까이하지 못했어. 설날에 차례를 지내고 나온 조기를 맛있다고 아빠가 먹고 있으면 그걸 아빠의 외할아버지가 잘 먹는다며 좋아하고 같이 드시곤 했는데. 그걸 보면서 막내외삼촌이 정우만 이뻐한다고 툴툴거리곤 했거든. 그 장난이, 장난이긴 했는데 사실은 그러면 안 되는 행동이라는 걸 커서야 알았지. 정말로 특별 대우였으니까. 다른 외사촌들은 다른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있었으니까. 그걸 조금은 우쭐거리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다가 내려놓은 게 멍청이 같이 스무 살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엄마의 가족도 나의 가족인데, 나는 왜 이렇게 대접받고 있나. 나는 왜 손님이어야 하나. 나는 왜, 외사촌들과 더 가까이 지내지 못했나.


안타깝게도, 다행스럽게도, 나의 ‘외’ 사랑은 막내외삼촌이 세상을 떠난 후부터였어. 장례식장에서 서로가 가까이 기대고 의지하며,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안부를 물으며. 더 다가가야지. 더 안에 들어가야지 라는 다짐을 하게 되었지. 실은 예전부터, 뭔가 똑부러져도 정이 없는 친가 쪽보다 뭔가 어설퍼도 정이 있는 외가가 좀 더 가족 같은 분위기였거든. 그게 좋았고 그게 부러웠나 봐. 아빠의 이런 모습을 막내외삼촌이 봤으면 좀 더 좋아했을 텐데. 그래서 아직도 가끔은 아빠의 엄마가 외할아버지의 생신은 안 챙겨도 돼, 외가의 일은 엄마가 알아서 할게라고 하면, 아빠는 종종 화를 내기도 해. 언제까지 그럴 거냐고. 나는 기쁨이한테 외 라는 말을 안 할 거라고. 누나의 딸이 엄마한테 외할머니라고 생일 안 챙기면 엄마는 좋겠냐며.


그러니까 기쁨아, 우리 집엔 외 없어. 네가 아무리 물어도 외 없어. 하동할머니 하동할아버지 삼촌 숙모 일산할머니 일산할아버지 고모 등등은 있어도. 외가 붙은 가족은 하나도 없을 거야. 궁금해하지 않아도 되고 찾지 않아도 돼. 그들은 너에게 모두 동등한 거리의 가족이니까. 같은 마음의 가족이니까. 아빠는 그래서 네가 하동에 가는 것이 좀 멀어서 불편해도 엄마의 가족을 보러 가는 것을 기대하고 기다렸으면 좋겠어. 좀 더 가까이 사는 일산 할머니, 할아버지를 만나는 것만큼.


너의 가족엔 영원히 바깥(外)은 없을 거니까.


정우.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