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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냥뿐냥뿐 Dec 05. 2019

글 못 쓰면 안 되는 직업인데

걱정이 많은 것도 팔자

글을 쓴다는 건, 나한테 공포였다.

이 글을 시작하는 지금도 하얀 화면 위에 깜빡이는 커서를 보면 식은땀이 나면서 알 수 없는 압박감이 든다. 돈 드는 일도 아니고, 혼나는 일도 아닌데 글을 쓰는 건 참 어렵다. 하얀 바탕 위에 한 자 한 자 글을 빼곡히 채우는 사람들을 보면 경외심이 생긴다. 이런 내가 글을 잘 써야 하는 직업을 갖게 됐다. 참, 대책도 없지.


"자신이 글을 잘 쓰지 못한다고 하는 분들은 지금 다시 생각해보세요. 출판 편집자는 글을 잘 써야 합니다."

와 이게 무슨? 출판 편집자가 되겠다고 출판 학교에 지원하고 입학했는데, 첫날부터 충격적인 말을 듣게 된 것이다. 그 말이 송곳처럼 마음에 꽂혀 내내 심각하게 고민했다. 내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고, 독후감 숙제가 세상 어려워 머리를 쥐며 간신히 했기 때문에. 정말 그만둬야 하는 것인지, 시작도 하지 않고 그만둬야 하는 것인지… 비장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수업 일지에 "저는 글을 잘 쓰지 못하기 때문에 그만둬야 할 거 같습니다."라고 써서 선생님께 보냈다. 하루 만에 그만둔다고 하는 나에게 선생님은 <걱정이 많은 것도 팔자입니다>라는 제목으로 답장을 주셨다.


편집자는 글을 잘 써야 한다... 는 말은 참 좋은 말이지요. 그런 말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편집자가 글을 다 잘 써야 할 이유는 없어요. 너무 걱정하지 말길 바랍니다. (중략) 책과 원고를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다 보면 글은 자동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멋진 문장으로 치장된 글이 아니라 꼭 필요한 글, 내용을 잘 전달하는 글 내 생각을 잘 표현하는 글을 말함이지요. 추워지니 따뜻하게 입고 먹고 다니시길...^^


답장을 보고 글을 읽고 일을 하다 보면 훈련이 돼서 나도 꽤 글을 쓰는 사람이 될 거라 생각하며 편집자의 길로 들어섰다(지금 생각하면 잘못된 생각인 거 같아, 미련한 나야). 잘 쓰는 글은 무엇인지 고민하며 십 년이 지났다. 여전히 난 글을 잘 쓰지 못하는 편집자다. 다만 글 못 쓰는 사람의 글쓰기를 시작했다. 이걸 한다고 뛰어난 문장가가 되리라 생각하진 않지만 꾸준히 무언갈 해본다는 건 꽤 훌륭한 일이라 오랫동안 고민했던 글쓰기를 해보려고 한다. 글에 대한 고민을 풀어내고 이야기해볼 생각이다. 혹은 의식의 흐름대로 쓸지도 모르겠다. 못한다 잘한다 평가를 하지 않고 꾸준히 했을 때 어떤 결과물이 생길지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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