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도 딸도 아닌 그냥 '나'로 남고 싶다면
세상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말투, 눈빛, 감정, 분위기 이런 것들을 '뉘앙스'라고 할까. 어쨌든 그런 것들을 제외하고 우리의 대화를 글로 옮겨 쓰자면 그 대화록은 평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좀 예민할 수도 있어. 나도 알아. 하지만... 여자의 말은 전혀 힘이 실리지 못했다. 이미 울음이 섞여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언제나 명백하게 잘잘못을 따질 수 없다. 그래, 이건 나의 문제 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여자는 왠지 마음이 아팠다.
추석 당일, 시댁에서 아침을 먹고 돌아온 여자의 마음은 내내 무겁기만 하다. 이 돌덩이를 얹고 다니는 듯한 불편함은 언제쯤이나 사라질까. 아마 남편과 함께 하는 동안은 내내 내려놓기 어렵겠지. 명절 당일 아침, 시댁에 가면 항상 아침을 드셨다고 해서 이날은 좀 일찍 서둘렀다. 다시 밥상을 차리는 번거로움이 죄송스러워서였다. 좀 일찍 와서 아침도 같이 먹고 하지 그랬냐. 하시는 시어머니의 목소리가 귀에 울리는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전화를 드리고 출발을 했는데, 시어머니께서는 좀 천천히 오라니깐, 하시며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으셨다. 이미 시계는 8시 반을 넘기고 있었고, 어머니와 통화 후 여자는 옷을 다 차려입은 채로 소파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온 것이었다. 안방에 새로 산 침대에는 둘재 형님과 아들 둘이 누워 장난을 치고 있었다. 여느 때 같으면 두 노부부가 아침을 일찍 해 드시고 자식들은 언제 오나 하고 기다리고 계셨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형님이 와 계셔서 마음이 여유롭고 든든했나 보다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여자는 모두가 말리는 누나가 셋 있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 그래서 위로 형님이 세분 계신데, 한 분을 제외하고는 다른 지방에 살고 계신다. 하지만 아직 아이들도 어리고 부모님과 사이도 좋아서 자주 방문해서 며칠씩 머물다 가시는 것이다. 미묘하게 형님들이 와 계시거나 형님들이 오실 예정이거나, 돌아간 직후에는 시부모님께서 여자에게 더 눈치를 주시는 것 같았다. 그럴 때면 집으로 돌아와 우스갯소리로, 형님들께 단단히 교육받으셨나 보다 하고 여자는 남편에게 말하곤 했다. 한 번은 어버이날 퇴근 후에 시댁에 갔는데 마침 아버님의 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통화 버튼을 누르니 둘째 형님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도 없이, 걔는 꽃이라도 한 송이 들고 왔다 간 거야 어떻게 된 거야, 아직? 으 응... 지금 다 와있다, 하시며 아버님은 스피커폰 버튼을 눌러서 꺼버리셨다. 여자는 이제 소식을 듣기도 전에 시댁에 형님들이 왔다 가거나 올 예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평소에 시부모님은 약간 기가 죽은 듯 쓸쓸한 분위기를 연출하시는데, 형님들의 지원을 받은 날은 확실히 차이가 있는 것이다.
시어머니께서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시면서도 아침을 준비하기 위해 주방으로 향하셨다. 그러다 자네 몸살 난다. 이제 며느리한테 다 맡겨요. 네, 어머니. 제가 할게요. 뭐부터 할까요? 이제 며느리 모드로 변신한 여자도 씩씩하게 주방으로 향했지만 이내 좌절하고 말았다. 명절 증후군이라던가. 명절 내내 음식이며, 설거지에 몸이 지치고 피곤하다는 데, 여자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그걸 여자는 좋아해야 할지 선뜻 판단이 서지 않았다. '명절증후군' 말만 들었지 그 반대의 경우는 거의 들어보지 못한 것이다. '살림에 자부심 있는 시어머님' 또한 못지않게 넘기 어려운 큰 산이었던 것이다. 며느리의 손짓 하나조차 못마땅한 시어머니는 도통 곁을 내주지 않으셨다. 음식 준비하랴 주방 정리하랴 끊임없이 싱크대에서는 물이 흐르고 가스불이 화르르 켜졌다 꺼지고 그릇과 접시가 부딪히고, 어느 때보다 시어머니가 요란스럽게 주방 일을 하시면 옆에는 그런 아내가 안쓰러운 시아버지가 안절부절 하고 계셨다. 며느리에게 맡기라는 시아버지와 눈길도 주지 않는 시어머니 사이에서 여자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울고만 싶은 심정인 것이다.
아이들은 소파에 대자로 누워 TV를 보고 저희들끼리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형님은 안방 문을 꼭 닫아 놓고 기척도 없으시고 열심히 아침상을 차리시는 시어머니 옆에 서서 대기하고 있는 여자는 마치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버린 것 같다. 어머니, 제가 전 데울까요? 어머니 제가 밥 풀까요? 어머니 제가 반찬 꺼낼까요? 어머니 제가 국 떠 놓을까요? 어머니 제가 수저 놓을까요? 그 모든 말에 내가 하마. 그렇다면, 어머니 음식은 뭘 이렇게 많이 준비하셨어요? 어머니 너무 고생하셨겠어요. 이제는 비굴모드로 전환. 그 말을 듣고 계시던 시아버지께서 너거 엄마가 음식 준비한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아느냐? 어제 좀 오지. 응? 그때 여자의 남편이 나선다. 추석 당일에 올 거라고 미리 말했잖아. 말 없는 아들이 모처럼 언성을 높이니 시어머니께서도 언성이 높아지셨다. 그래, 내가 뭐라 하더냐. 나 지금 아무 말 안 하고 있잖아. 시어머니가 아무 말도 안 하신 것 맞다. 그건 맞는 말인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아무말도 안 한다는 말로 들렸다. 여자는 점점 울고 만 싶어졌다. 넓지 않은 주방에서 내내 서 있기만 하기도 쉬운 일이 아닌 것이다. 제발 뭐라도 하게 해 주세요! 이거 다 너희들 먹이려고 하는 건데 미리미리 오면 좀 좋으냐.
제사가 없는 시댁이지만 언제나 음식은 넉넉하게 준비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음식은 형님네 가족들의 식성에 맞춰진 것이었고, 음식은 금방 해야지 맛있다는 시어머니의 지론에 따라 형님네 가족들이 오기 전에 준비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결혼 초에는 밥도 얻어먹지 못하고 돌아올 때도 많았다. 아이들과 함께 며칠씩 머물다 가시니 양이 많아질 수밖에 없고, 돌아갈 때 싸줄 반찬까지 생각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아들부부에게 이거 다 너희 주려고 해놓은 거지, 너희 주려고 사놓은 거지하시며 알 수 없는 죄책감을 자극하셨다. 그래봐야 한 끼 먹고 집에 오는 것이 다였고, 집에 돌아갈 때도 반찬 하나 선뜻 내 주지 않으셨다.
여자는 결혼하고 몇 년이 흘러도 그들의 가족이 될 수 없는 것 같은 깊은 거리감을 느꼈다. 식사를 하는 내내 음식이 무슨 맛인지도 몰랐다. 어머니 갈비 너무 맛있어요. 맛있기는 뭐가 맛있냐. 문어는 처음 해 본 거라 그런가 잘 못 썰었나 봐. 잘 안 먹네. 제가 보기에는 너무 예쁘게 잘 써신 것 같은데요. 그건 아닌 것 같다. 아... 여자는 자신의 비굴함에 저절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하지만 무엇보다 식사를 금방 끝내시고 두 분이 자리를 뜨셔서 계속 앉아서 먹고 있기도 불편했다. 하지만 음식도 남겨놓으면 그것 역시 처리하기가 번거롭다는 것도 여자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남기지 않고 다 먹자니 계속 앉아서 먹고만 있는 며느리가 얄미워 보일 것 같고, 그렇다고 빠르게 입에 다 쑤셔 넣고 있자니 가냘픈 시어머니가 보기엔 덩치 큰 며느리가 미련해 보일 것 같았다. 그래도 여자는 설거지 만이라도 꼭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허겁지겁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또 제지 당하기 전에 빨리해보겠다고 그릇을 나르고 있는데, 반찬 접시 위에 국그릇을 놓은 것이 문제였다. 하나하나 나르면 그러다 언제 다 하겠냐고 하실 것 같아 마음이 바빠진 것이다. 하지만 접시에 남은 반찬 양념이 국그릇에 묻는 바람에 여자는 또 주방에서 퇴장당해야 했다. 여자는 남편을 바라봤다. 나도 집에서는 저렇게 깔끔하게 하는 사람이지? 그렇지? 왜 시댁에만 오면 모자란 며느리가 되는 걸까? 동의를 구하는 여자의 눈빛을 남편은 알아차리지 못한 것 같았다. 요란하고 유난히 깔끔하게 설거지를 하고 있는 시어머니 옆에서 벌을 서고 있던 여자는 시아버지의 눈총까지 견딜 수밖에 없었다.
과일이라도 먹어라, 하시며 설거지를 마친 시어머니가 과일을 내어 주셨다. 어디 과수원 바닥에서 주워 온 듯한 사과 두 알과 한 면이 이미 거뭇해진 반쪽짜리 배였다. 엄마 이거 사 온 거 맞아? 어디서 주워 온 거아니야? 사과는 여기저기 상해 있어서 칼로 깎기도 쉽지 않았다. 혼자 하시니 아침상을 차리는데도, 치우는데도, 설거지를 하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과일을 받아드니 시계는 벌서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여자의 벌 서는 시간도 덩달아 늘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둘째 조카가 칭얼거렸다. 원래 아침을 늦게 먹는다며 형님은 식사 중에 나와 보지도 않으셨지만 아무래도 아이들은 배가 고픈 것 같았다. 과일을 달라고 조르니 냉장고에서 멜론이며 샤인머스켓 같은 과일이 줄줄이 나왔고, 형님은 멜론을 썰어서 방으로 가지고 들어가셨다. 그제야 여자의 앞에도 멜론이 조금 나왔다. 골아빠진 사과를 힘차게 포크로 찍고 있을 때였다. 여자는 아이들이 먹는 과일에 욕심이 난 것이 아니었다. 다만 딸과 며느리의 멀고 먼 차이를 실감할 뿐이었다.
시간은 벌써 점심 때를 지나고 있었고, 아무래도 형님과 아이들이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어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그건 여자로서는 차라리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이제 벌 다 받은 며느리는 조용히 퇴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아버지는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게 만드셨다. 친정에서 점심 먹고 이따가 애들 내려오면 다시 오거라. 벌써 출발했다더라. 그때 와서 반찬도 좀 가져가고. 집에 먹을 것도 없을 텐데.
하지만 시댁에서 저녁을 먹고 늦게 돌아온 남편은 빈손이었다. 시부모님은 결국 저녁에 나타나지 않은 며느리에게 마저 남은 벌을 줄 생각이었나 보다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그냥 저도 자식으로 좀 봐주시면 안되나요... 여자는 마음이 아팠다. 시부모님께 조차 자식이 되고픈 여자 자신이 몹시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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