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실수할 수 있어. 어른도
오늘은 무얼 먹일까나~
하원 할 때마다 "오늘 저녁은 모 먹으까?" 하고 묻는 귀여운 입에 어떤 저녁으로 든든한 영양을 담아줄까 고민하는게 일상이다. 요리를 잘하냐 하면...놉. 라면 끓이는 것 하나도 왜 나는 어려운가를 고민하던 시절을 지나, 신혼여행 후 첫 날 아침. 뭘 어떻게 해야 할 지 감이 잡히지 않아 당황했던 어둑한 새벽이 생각난다. 패스트푸드는 안 먹고 싶지만, 또 음식을 제대로 할 줄은 몰랐다...요리책을 펼쳐놓으면 왜 내 주방에는 이 책에 없는 재료와 없는 소스만 보이는지..
아, 건강하게 잘 먹고 싶은데, 난 요리는 애정과 소질이 없다. 인정하니 편해졌다.
엄마는 요리를 정말 잘하시는 분이다. 식품영양학을 부전공하고 싶으셨다고 하실 정도로 (부전공이 수확이었...) 균형 잡힌 음식에 대한 애정도 요리에 대한 애정도 남다른 분이시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균형 잡힌 식단으로 자녀들을 먹이셨고, 잘 먹은 내 인생이다. 건강하고 맛있는 걸 먹고 자랐고, 덕분에 결국 건강한 음식을 선택하며 사는 어른이 되었다. 근데, 정작... 난 요리가 힘들다. 설거지는 참 좋아한다. 양념이 잔뜩 묻은 냄비와 그릇들을 뽀드득하게 닦아내는 그 과정을 즐긴다. 순서를 정해서 효율적으로 그릇 닦는 순서를 계산하고 건조대에 착착 테트리스하듯 올리는 기분, 국물이 흐른 가스레인지를 싸악 닦아내는 개운함. 물기 없이 보송하게 싱크대 상판을 정리한 후 비누로 빤 행주를 탈탈 털어 올리고 마무리된 주방의 불을 끄고 나오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다. 명절에도 1시간 넘게 혼자 싱크대 앞에서 설거지하는 건 고되지 않는데, 요리를 하는 건 곤욕일 정도로 난 요리에 애정이 없다.
아이의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요리, 아니 깨끗한 장기를 가진 이 새로운 생명에게 어떤 음식을 소개해줘야 할까 용기를 내서 이유식 만들기를 시작했다. 쌀미음부터 이유식책에 있는 그대로 0.1g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레시피를 그대로 따라 하며 아이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어주기 위해 힘을 냈다. 어른은 라면을 먹을지언정, 내 아이 이유식만큼은 제대로 해보려고 찬찬히 읽고 따라 했다. 다행히 첫날부터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허겁지겁 숟가락을 따라와 줬다. 엄마 옆에서 나물 다듬기, 야채씻기, 마늘까기 정도가 다였는데 처음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익히는 시간이었다. 4~5년의 이유식 시기가 끝나자 이젠 30분이면 가족 한 끼 정도는 뚝딱 만들게 되었다. 아빠가 먹는 매운 찌개, 아이가 먹는 맑은 탕, 반찬 2개와 밥 정도는 뚝딱. 여전히 어른의 메뉴는 다양하지 않지만, 아이를 위한 메뉴는 촘촘하게 늘려왔다.
이틀 전부터 배에 가스가 차서 불편해하는 아이와 병원에 다녀왔다. 의사 선생님은 과일과 유제품은 빼고 소화가 잘 되는 걸 먹이라고 했다. "엄마, 나 엄마가 해주는 야채죽 먹을래요!" 오늘 저녁은 야채죽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엄마표 야채죽에 소화가 잘 되는 무나물을 볶고, 고등어를 구워서 준비했다. 무나물을 볶다가 간이 좀 약한가? 해서 소금을 톡톡 두 번 두드렸다.
"음! 맛있어!" 엄지를 치켜들며 먹는 아들. 뿌듯하다. 무나물도 한 젓가락 집더니 나를 촉촉한 눈으로 바라본다.
"엄마, 엄마가 00이 사랑해서 사랑을 듬뿍 담아서 만든 음식인 건 알아. 근데 좀 짜."
헉...."짰어? 미안해, 엄마가 마지막에 소금을 넣은 게 과했나 보다. 다음엔 더 맛있게 만들어줄게."
평소였음 ‘밥이랑 먹으면 간이 맞아’ 할텐데, 배가 아픈 아이에게 오늘은 괜히 미안해졌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들은 내 볼에 작은 손을 올리고 이야기한다.
"엄마~ 괜찮아. 그럴 수 있어. 괜찮아, 괜찮아. 실수할 수 있어. 속상해하지 마."
와, 이렇게 위로를 해준다고? 이거 어디서 많이 본 거 같은데..ㅋ
내 뒤통수를 너무 다정하게 쓰다듬어주고 안아주더니 연신 괜찮다고 다독인다.
엄마 그 정도로 낙심하진 않았는데.. 껄껄껄...
"엄마 어른도 실수할 수 있지?"
"그럼! 어른도 실수해. 사람은 누구나 실수해.^^"
아이의 오늘 저녁 그 위로가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아, 아이의 말 그릇에 예쁜 말을 담아야 하는 이유가 이거구나.
아이의 세상을 따뜻하고 다정하게 채워주고 싶어지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