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에 사는) 엄마

33. 책육아 말고 책 읽는 엄마

by Aloha J

책으로 키울 거야!!!라고 작심하지는 않았다. 그냥, 책을 좀 좋아하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결혼 전에는 휴가 때마다 혼자 여행을 다녔다. 공항에서, 그리고 낯선 곳에서 지나치는 사람들 중에서 유독 외국인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책을 어디서나 읽고 있었다. 그 모습이 왜 그리 멋져 보이던지...


아침이면 대체로 일어나자마자 책장 앞으로 가서 책을 골라 읽는 아이. 밤새 생각한 책이라도 있는 듯, 책 한 권을 들고 와서 찬찬히 들여다본다. 한글을 뗀 어린이는 평일 아침에는 혼자 읽지만, 주말이 되면 한아름 책을 안고 엄마에게 달려온다. "엄마! 오늘은 책 읽을 수 있지?"


요즘은 그 일과가 조금 달라졌다. 요새, 레고 닌자고에 푹 빠졌다.

책장은 한번 쓰윽 훑고는 레고 블록을 담아둔 노란 상자를 열어 피규어 모아둔 작은 통을 꺼낸다. 그리고 주제가를 부르며 캐릭터 피규어를 꺼내서 한참 조물 거리며 논다. 레고 만들기에 빠졌다기보다는 피규어를 갖고 역할극하며 노는 걸 즐긴다.


아이가 조금 더 어렸을 때는 다른 캐릭터에 빠져서 (남자아이의 순서대로.. 헬로카봇, 포켓몬...) 하루 종일 캐릭터 피규어, 로봇으로 하루를 보낼 때가 많았다. 그 모습에 처음에는 충격을 받았다.

어, 이젠 책 안 읽네? 아, 저런 장난감이 더 좋은가? 어리석은 마음은 언제나 조급해지는 법인데, 그때 마음은 몹시 조급해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이가 읽는 책은 캐릭터 백과사전뿐이었다.

이게 맞는 건가.. 혼란스러울 때 잠시 숨을 돌려봤다.

'아이가 책을 읽는 걸로 뭘 해보려고 한 거야?' 아니지. 난 그냥 책을 친구 삼아주고 싶었던 것뿐인데... 언제 이렇게 욕심이 삐죽 자라났지. 유익하지 않은 내용이나 문장이 들어있다면 아예 읽히지도 않을 테지만, 책으로 자기 장난감의 특성이나 스토리를 알고 싶어 하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보니 그 또한 즐거움이 되겠구나 싶어 아이와 함께 캐릭터 백과사전을 신나게 읽었었다.


책을 친구 삼아주고 싶은 마음, 그 마음으로 다시 돌아오자 책은 어떤 목적이 되지 않았다.

칼 라르손의 <휴일의 독서>처럼 아이와 함께 책 읽는 즐거움을 누리고 싶을 뿐인데...

아이가 나중에 기차에서, 공항에서, 와이키키 비치에서, 인터라켄의 호숫가에서, 잔지바르의 해변가에서 책을 읽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게 되길 바랄 뿐.


아이가 하루에 몇 권을 읽는지가 중요하지 않아 졌다. 엄마의 책 읽기가 중요해졌다. 책을 읽는 즐거움을 누리는 요즘이다. 피규어를 갖고 노는 아이 옆에서 책을 읽고, 식사하고 나서 설거지는 잠시 미뤄둔 채 책을 펼치면 아이도 어느새 책을 갖고 와서 읽는다. 책이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아마도 아이에게 책을 친구 삼아주려면, 엄마부터 책과 좋은 사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아이 덕분에 그 예전 공항에서, 낯선 땅에서 봤던 이들처럼 책을 손에 쥐고 사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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