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책육아만 있는 게 아니다
41개월의 가정 보육은 돌이켜보면 엄마로서의 내 인생에서 참 감사한 시간이었다. 후회되고 미안한 시간도 많았지만 평범한 엄마에게 허락된 그 시절은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자는 것이 먹는 것보다 중요하고 씻지 못하면 견딜 수 없는 내가 이 모든 것을 포기해도 좋았다. 양가 부모님은 멀리 계시고, 아이 아빠는 바쁜 시기였다. 덕분에 온전한 독점 육아를 했다. 아이의 사랑스럽고 귀여운 순간을 눈에 담고 마음에 담았다. 하루가 다르게 커가는 아이의 모습이 신기하고 뭉클했다. 매일 특별할 수는 없었다. 육아는 현실이니까. 반복되는 일상은 자칫 무료해 보일 수도 있었지만, 매일 아이는 조금씩 열심히 자랐다.
집순이지만 아이를 위해 부지런히, 조심히 밖으로 나갔다. 마스크를 쓰고 아기띠에 아이를 품고 인적이 드문 공원으로 산책을 다녔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설명해 줬다. 유모차에서, 아기띠 안에서 아이는 동네를 눈에 담고 계절의 변화를 냄새로, 온도로 느끼며 자랐다.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면서 사람이 드문 평일에는 한강으로 자주 나갔다.
봄, 가을에는 양재 시민의 숲으로 유모차를 끌고 나갔다. 사람들이 없는 시간대에 아이아 함께 나가 벤치에 앉아 간식 타임을 가졌다. 청설모가 바로 발 앞까지 다가와 아이의 떡뻥에 눈독을 들였다. 두 돌이 지나면서 우리는 과천 서울 동물원을 자주 찾았다. 자연관찰책에서 본 동물을 직접 만난 아기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코끼이~ 코끼이~"하면서 본인이 좋아하는 동물을 먼저 찾아가서 보기도 했고, 엄마 품에 안긴 채 두 손으로 엄마 옷깃을 꼭 쥐고 호랑이를 바라보기도 했다.
세 돌이 지나면서 과천 과학관을 찾았다. 과학의 원리를 이해하기는 어려운 나이지만, 아이는 지진의 원리를 직접 손으로 경험해 보고, 코로나 바이러스와 마스크의 관계를 직관적으로 관찰했다. 색의 변화, 파도의 원리, 지진과 화산 활동을 자주 경험했다. 가정보육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스케줄이었다.
평일의 과학관, 동물원은 느긋하고 여유로웠다. 상대적으로 안전했고,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집안에서의 반복된 일상이 아이에게 안정감을 줬다면 동물원, 박물관, 과학관에서의 시간은 아이의 즐거움과 호기심이 반짝반짝 빛나는 시간이었다.
고백하자면 엄마에게도 아이와 함께 하는 외출은 고된 육아의 쉼 같은 시간이었달까..
집에서보다 시간이 훨씬 빨리 흘렀으니 말이다. 청량한 공기를 폐에 가득 채우고 맑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에너지가 다시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아이에게 과학을 설명해주고 있자면 과학 좋아하는 엄마는 은근히 신났다.
덕분에 여전히 아이는 동물원과 과학관을 좋아한다. 매번 같은 곳을 가는 것이 지루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이는 매번 새로움과 익숙함을 적절히 잘 즐기고 있다.
같은 공간에서 매년 아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앳된 아기가 이젠 어린이가 되어가고 있다. 출근길에 꺼내보는 사진첩 속에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면 그 시절 아가가 보고 싶다. '이렇게 사진으로만 봐도 보고 싶은데, 그래도 그때 우리가 함께 있었던 게 참 다행이다.' 팔불출 엄마는 오늘도 가정보육을 했던 그 시간이 그립고 짠하고 감사하다.
11월 한 달간 부쩍 큰 아이와 함께 주말마다 서울 곳곳으로 단풍 데이트를 다녔다. 2주 전 다녀온 동물원이 그리웠는지 어제 덕수궁 돌담길에서 "엄마, 나 다음 주말에는 동물원 갈래요." 하는 아이.
다음 주 동물원 데이트에 너무 춥지 않으면 좋겠다. 한 겨울에도 동물원을 가는 우리지만, 그래도 다음 주는 맘껏 동물을 만날 수 있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