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AI는 도구일 뿐이다
AI의 시대다. 분명히 지금 태어난 아이는 나의 어린 시절과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인간이라는 사실이 참 다행인 요즘이다.
로봇과 인공지능이 보편화고 있는 시대지만, 아이가 자라고 성장하고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방법은 옛날과 다르지 않다. 스스로 손을 놀려보고, 책을 읽고, 자연을 만져보고, 직접 발을 굴러보고, 맛보고, 듣고 느끼며 오감을 발달시키고 있다. 인공지능이 아이의 발달을 대신해 줄 수 있지 않으니까.
AI의 엄청난 정보 처리 능력을 보면서 위협을 느낀 아빠는 언젠가는 AI가 세상을 지배할 거라고 걱정한다. "AI도 해저터널에 있는 인터넷 선 하나 끊으면 끝일걸? 전기 끊으면 아무것도 아니잖아?"
심드렁하게 대답하는 나를 보며 "AI를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라고 말하는 남편. 글쎄.... 맞을걸?
걔도 어차피 전기랑 인터넷 선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잖아.
컴퓨터 하나 불타면 업무가 마비되고 중요한 정보들이 해커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도둑질당하는 요즘 같은 세상보다 금고 안에 소중한 것들을 잘 보관해 둔 옛날이 더 보안에 튼튼했다고 여겨지는 건 기분 탓일까..
그래서 중요한 것들은, 잃고 싶지 않은 것들은 여전히 연필로 노트에 적고 있다.
공학도들이 칠판을 빼곡히 채우며 계산하던 시절이 손바닥만 한 계산기 하나로 그 수고가 다 덜어진 것처럼.. AI도 하나의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수식과 계산 공식을 공부했기 때문에 계산기에서 어떤 식을 써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아는 것처럼.... AI도 사용하는 사람의 수준에 따라서 도구로 활용할 것인가, 무조건 의지할 것인가가 결정되는 게 아닐까. AI하나로 쉽게 결과물이 나오는 시대이면서도 AI가 만든 티가 안 나게 살짝 수정하는 방법이 나오는 걸 보면서 사람들은 쉽게 만들어진 것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는 걸 느낀다.
그래서 아이에게 AI를 도구로 맘껏 갖고 놀 수 있도록 인간만의 힘을 키우는데 신경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원에서 코딩 수업을 한다면, 집에서는 손으로 놀잇감을 만지고, 머릿속으로 상상한 레고를 조립해 본다. 계절의 변화를 냄새로 알아채고, 색으로 발견하는 기쁨을 함께 느끼고. 이른 아침의 상쾌함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서 아침 산책을 나선다. 더운 날에는 서로 이마의 땀방울을 닦아줄 줄도 알고, 아프면 이마에 손을 짚어주며 토닥여줄 줄 아는 따뜻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서 오늘도 자연으로 나간다. 혼자 고민하며 삐뚤빼뚤 쓴 편지에 감동하고, 기대하는 아이를 위해 정성껏 답장을 써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볼 수 있게 올려둔다. 여름에는 시원한 등목도 알려주고, 겨울에는 같이 붕어빵도 사 먹으면서
이런 소소한 일상에서 누리는 감정을 풍성하게 채워주고 있다. 좋아하는 노래를 같이 부르고, 힘껏 달리면서 가슴에 차오르는 신나는 기분도 아이와 나눈다. 가상 화면으로 즐기는 거 말고 진짜 바다를 만지고, 눈덩이를 굴리고, 가을 낙엽의 고운 감을 눈에 담아본다. 나무를 만져보고 꽃향기를 코로 들이키며 아이는 살아있는 인간만이 누리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채워가고 있다.
엄마의 바람은 아이가 아날로그를 풍성히 누릴 줄 아는 현대 문명인이 되는 것이다. AI가 범접할 수 없는 창의력과 매력으로 AI를 계산기처럼 사용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자연과 책 속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남편에게 이야기해 줬다.
"두고 봐, AI가 만든 것 말고 사람이 직접 만든 것, 사람이 오로지 해낸 창작물이 어마어마한 가치를 인정받게 되는 시대가 온다니까? AI 짜식, 인터넷 선 끊고 전원 버튼 끄면 힘도 못쓰는 것이. 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