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학습지는 관심 없어요...(엄마가)
3년 전에는 한창 초등학교 앞에서 하원시간이 되면 학습지 판촉 활동이 활발했다. 엄마 손을 잡고 아장아장 산책을 나온 아이에게 다정하게 인사해 주며 풍선을 쥐어주던 학습지 선생님들.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아이에게 호의적인 낯설지만 신원이 분명한 학습지 선생님들의 몇 마디에 크게 부담이 되지는 않았다. 더운 여름인데, 체험교실에 와서 한 번 아이가 볼 만한 책을 구경하고 가라는 말이 책을 좋아하는 엄마에게는 굉장히 솔깃한 제안이었고, 물정 모르는 엄마는 아이를 안고 주말에 학습지 센터에 갔다.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주말에 이런 활동을 하는구나 하며 내 아이도 함께 체험 수업도 해보고, 순순히 가는 줄 알았는데... 내향인 엄마에게 아직 설명해 줄 것이 있다며 학습지를 소개하는 시간은 살짝 곤욕스러웠다.
다양한 정보와 아이의 학습지를 고민하던 엄마라면 굉장히 좋은 시간이고 좋은 기회가 되었겠지만, 3살인 내 아이에게 학습지로 공부시킬 마음이 1도 없었던 터라, 그 선생님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만 했다. 요는 스마트한 방식으로 아이를 공부시키며 미래 사회에 걸맞은 인재로 키우기 위해 우리는 아이 학습을 위한 학습용 패드를 개발했고, 이 패드 안에 국어,영어,수학,과학에 대한 모든 정보가 있으며, 아이는 이 패드로 공부하며 영리해질 거라는..거였다. (네? 스마트기기라고요? 아... 선생님, 그럼 번짓수가 잘못된 거 같네요..)
잠시 후 요새 아이들이 이 패드로 공부하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확인시켜주겠다며 갑자기 틀어준 20분짜리 영상이 굉장히 거슬리기 시작했다. 아, 난 내 아이에게 이런 전자기기를 노출할 마음이 전혀 없는데.. 거기서부터 마음을 굳게 닫았다. 차라리 저 책장에 빼곡히 꽂혀있는 책을 다달이 받으면서 아이와 책 읽는 기회를 많이 준다면 좀 솔깃했으려나...
무튼 1시간이 좀 넘게 그곳에서 빠져나올 기회를 찾고 찾다가 칭얼거림이 심해지며 나가자는 아이의 울음에 서둘러 나왔다. 아, 그리고 1만 원의 체험 수업비도 책상에 내려놓고.
1년 동안 지금 이 패드로 공부시키지 않으면 아이는 뒤쳐진다는 학습지 브랜드의 끈질긴 제안은 계속됐다.
"아이에게 지금 스마트기기를 노출시키며 공부시킬 마음은 없어서요..."라고도 완강하게 말해봤지만, "어머니, 그건 너무 시대에 뒤떨어진 고집이에요."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네, 전 이 시대 속도에 맞춰서 달리고 싶지 않아요... 그깟 패드. 작동법도 단순해서 며칠만 해보면 누구나 뚝딱 만질 수 있게 만들었는데 뭘 또 그걸로 조기 교육을...
그 후 서점에 가도 "어머니, 아시죠? 윙*!" 하면서 다가오는 학습지 회사 직원분에게도 "네, 죄송해요, 괜찮습니다." 하고 발걸음에 속도를 낸다. 풍선을 준다 한들, 날아가는 프로펠러 장난감을 준다 한들...
아직 학습지는 안 하고 싶어요. 하고 말하고 싶지만, 그냥 괜찮습니다 네네하고 자리를 피하게 된다.
패드로 시키는 공부가 정말 진짜 공부가 될까? 아날로그를 굉장히 추구하는 엄마라서 아직 공부라고 부르기는 뭐 하지만, 지식을 배울 방법이라면 종이책과 손가락을 오므려 잡은 색연필과 연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브랜드는 스마트한 기기가 사람대신 책을 대신 읽어주는 기능을 강조하지만, 양방 소통 없는 전자기기의 일방적인 책 읽기를 아이 손에 쥐어주고 싶지 않다.
3살, 수학, 과학, 영어, 국어보다 더 소중한 걸 마음에 담아주고 싶은 나이.
4살, 자연을 한 번이라도 더 만나게 해주고 싶은 나이.
5살, 엄마 아빠의 품에서 느끼는 사랑으로 행복을 키워주고 싶은 나이.
6살, 함께 눈 맞추고 이야기하며 어디든지 걸어가며 다리힘 키워주고 싶은 나이.
7살, 학원 숙제보다는 함께 좋아하는 책을 읽고, 책 이야기로 이불속에서 속닥거리고 싶은 나이.
그렇게 키우고 싶어서 공부는 패드 학습지 말고 엄마랑 지우개로 지우고 연필로 쓰며 둘이 끙끙대며 10의 보수를 배워가는 중이다. 아직 학습지는 관심이 없어요. 패드로 하는 학습지라면 계속 관심 없어요, 엄마가...